[뉴스핌=홍승훈 기자] 올초 삼성증권이 홍콩에서 사실상 철수하고 빠져나온 뒤 그 곳에 남아 있던 여타 국내증권사 홍콩법인들이 삼성 이탈에 따른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현지 로컬인력 영입을 해야하는 홍콩법인들로선 '아니면 말고'식 삼성의 단기 해외 전략으로 해외 전문가 영입이 한층 어려워졌다는 반응이다. 외국계IB들의 한국계 증권사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최근 홍콩에서 만난 국내사 한 관계자는 "홍콩에서 일하려면 로컬 인력들을 뽑아 로컬 영업을 해야하는데 올초 삼성 철수로 인해 2~3년 하다가 안되면 접는다는 인식이 외국계IB들 사이에 있더라"며 "남아있는 국내사들로선 당분간 여진이 미칠 것"이라고 전해왔다.
앞서 지난 2009년 삼성증권은 아시아 톱IB를 선언하고 홍콩법인을 키우기 시작했다. 10여명에 불과했던 인력은 단기간내 100여명 이상으로 늘어났고, 한국물 외에 홍콩물을 직접 세일즈하는 등 로컬시장 공략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홍콩 현지의 고급 인력도 대거 수혈했다. 당시 홍콩내 글로벌IB들의 삼성의 공격경영에 대한 관심도는 상당했다.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을 뒤에 둔 삼성증권에 대한 네임밸류가 급부상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성증권은 이듬해인 2010년, 2011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10년에는 450여억원, 2011년에는 600여억원 이상 적자가 발생하자 삼성은 기존 전략을 틀어 사실상 홍콩 영업을 포기했다. 100여명을 웃돌던 홍콩법인 인력은 이내 20여명으로 확 쪼그라들었고 100만불 이상 거액연봉을 주고 영입했던 홍콩내 리서치 인력들도 내보냈다. 삼성은 또 싱가포르 영업인가 신청건도 올초 심사도중 철회하며 싱가포르내 신뢰를 잃었다. 해외사업 축소전략이라는 그룹 차원의 판단이 작용했다.
물론 이는 삼성만의 현상은 아니었다. 시장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올해 HSBC와 CS, 다이와증권 등 유수의 글로벌IB들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다만 오랜 홍콩내 영업활동과 브랜드네임을 갖는 글로벌IB들과는 달리 입지가 상대적으로 약한 국내 증권사들은 다르다. 더욱이 삼성 철수로 인한 여진을 감당해야 하는 곳은 그곳에 있던 여타 국내사들.
홍콩법인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삼성증권의 철수에 따른 이미지 후폭풍이 좀 있다"며 "'2~3년 하다 안되면 접더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웬만해선 한국계 증권사로 오려는 이가 없을 정도"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물론 삼성증권이 기존 전략을 급선회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 것은 삼성으로선 잘한 선택일 수 있다. 인력의 80%를 빼고도 여전히 지금까지 적자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기존 전략을 고수했다면 올해같은 시장환경 속에서 과거 적자규모 이상의 손실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삼성 홍콩법인은 지난 1/4분기(4~6월)와 2/4분기(7~9월) 여전히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홍콩 현지 관계자들도 "삼성이 그대로 전략을 고수했으면 올해 상당한 손실이 났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홍콩내 외국계IB에서 한국계로 사람이 이직하는 이유는 주로 두 가지로 요약된다. 국내사에서 연봉을 파격적으로 주거나 전직장에서 실수를 해 나와야하는 상황인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가운데 제대로 된 로컬 전문가를 데려오기 위해 한국계 증권사 법인장들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유를 전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최근 삼성 등의 갑작스런 사업철수로 인해 '한국계는 오래 다닐 직장이 아니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글로벌IB들이 한데 모여 그만큼 기회가 많기도 하지만 경쟁도 치열한 홍콩시장. 내노라할 만한 글로벌IB들이 박 터지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한번 나가고 보자는 식, 그리고 안되면 바로 접는 해외전략이 빚은 현상이 아닐까싶다.
국내 대형 증권사 한 고위관계자는 "해외에서 영업을 하기 위해선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현지화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장기전략을 펴는 것은 필수"라며 "다들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누가 나가서 조금이라도 잘 되는 것처럼 보이면 너도 나도 나가는 쏠림현상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