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용실적 신용점수에 반영 안 돼
[뉴스핌=노종빈 기자] 통장 잔고 내에서 결제를 원칙으로 하는 체크카드(직불형 카드)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신용평가에서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당국의 강력한 체크카드 활성화 정책 의지에도 불구, 체크카드 사용자들은 사용실적이 신용점수로 반영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소득공제 혜택 등 정부 시책만 믿고 체크카드 사용에 '올인'한 사람들이 대출 등에서는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 체크카드 올인하면 대출시 불이익, 왜?
실제로 여의도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박정아씨(가명)는 최근 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고자 서류심사를 받았지만 원하는 금액만큼 대출해주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박씨는 자신의 거래 등을 바탕으로 마이너스 통장 대출한도를 2000만원을 요구했으나 은행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신용등급이 낮다는 등의 이유로 은행 측은 박씨에 그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대출해주겠다고 밝혔다.
은행 문을 나서면서 그는 "별달리 대책은 없다"면서 "지인 등이 근무하는 다른 은행 등에 서류를 넣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체크카드 거래 실적은 신용거래 실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은행 직원의 설명을 듣고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말만 믿고 체크카드만 거의 대부분 사용했는데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황당하고,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용점수가 높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체크카드 사용실적(생활비 대부분 사용)이 신용카드 실적(연회비만 납부하고 사용안함)에 비해 월등히 많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결과론이지만 P씨와 같은 개인 고객들이 신용카드 거래를 월 20만~30만원씩이라도 했다면 신용점수가 꽤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 된다.
◆ 체크카드는 '현금성' 거래…신용점수 오르지 않아
따라서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체크카드만 사용할 경우, 현실적으로 개인의 신용평가 점수를 높이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배경은 실제로 신용평가업체들이 개인 신용평가시 체크카드 사용실적 데이터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용카드의 경우 수십년 동안 사용자 데이터가 누적돼 신용평가에 반영되고 있으나 체크카드의 경우는 활성화된 기간이 5년 남짓이어서 유효한 데이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신용평가 업계 관계자는 "체크카드 등 직불카드 관련 데이터 수집 상황이 아직은 미흡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이 나오기는 시일이 걸릴 듯하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체크카드 사용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 신용평가에서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은 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체크카드 사용 실적을 신용 점수에 반영해야 하느냐는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도 논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다른 관계자는 "신용점수는 신용거래, 즉 외상거래를 많이 할 때 올라가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반면 체크카드는 현금거래나 마찬가지인데 신용거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은행들, "신평사 문제…우린 별개"
신용평가사들의 평가를 거쳐 자체 대출 등 여신심사를 하고 있는 은행들은 이 문제에 대해 다소 입장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고객들의 체크카드 사용 실적을 대출심사에 거의 반영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한 외국계 은행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은행 관계자는 "대출심사시 평가 항목과 관련된 내용은 대외적으로 밝히기는 곤란하다"면서 "이는 내부적으로도 지점끼리도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용도가 낮아 대출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한 대응으로 은행들은 여신심사에서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사용실적을 그다지 중요하게 보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신용카드 발급 사실이 없거나 신용카드 거래 실적이 많지않은 개인 고객들의 경우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원하는 만큼의 대출을 받기 힘든 상황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체크카드 사용자들의 평가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뉴스핌의 취재 결과 또다른 시중 은행의 경우 올해부터 개인여신평가시스템 개발 중이며, 개발이 끝나면 현재는 반영하고 있지 않은 체크카드 사용 실적도 여신평가에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은행 관계자는 "현재는 체크카드 실적이 반영되지 않고 있지만 올해 중 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착수하고 있다"면서 "5년 정도의 유효한 데이터를 축적한 자료만을 신용평가에 반영토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체크카드의 경우 국제 기준인 위험 가중자산의 계산방법 등에 의거 5년 정도의 유효한 데이터를 축적한 자료만을 신용평가에 반영토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07년부터 본격 활성화 되기 시작한 체크카드는 5년이 지난 올해부터 유효한 데이터로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 당국, "심각히 고민 중"…8개월 넘게 변한 건 없어
금융당국도 체크카드 등 직불형 카드의 이용실적을 개인신용등급 산정시 반영토록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8개월이 넘도록 변한 것은 없어, 정책 우선순위에서는 다소 밀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2월 종합대책을 내놓고 "1차적으로 직불형 카드 이용 기간 및 실적을 가점요인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에는 특히 직불형 카드 이용 고객이 불량률(연체율)이 낮다는 상관관계가 통계적으로 입증되는 대로 반영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었다.
하지만 이같은 활성화 계획은 당국의 강력한 정책의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는 점은 큰 아쉬움을 주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체크카드 사용실적을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방안은 원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도를 평가하는 것은 업계 자율에 맡겨진 부분"이라며 "금융당국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용평가사들과 계속 협의는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개인 신용정보 모델의 특성 때문에 체크카드를 일시에 갑자기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는 체크카드 데이터가 유입될 경우 전체 신용평가 시스템이 왜곡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단계"라며 "전체 시스템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체크카드 사용자들에게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지속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