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세법개정안 아쉽다, 금융세제는 반드시 도입하겠다"
[뉴스핌=이기석 기자] “애나가?” “애나다”
과천정부청사 1동 6층. 기획재정부 세제실이 위치한 이곳에서 ‘애나가’ 하는 구호가 비록 소리는 나지 않지만 마치 쩌렁쩌렁 울리는 듯 각 국과 과 사무실에 팽팽한 비장미를 전파하고 있다.
‘애나가’라는 구호의 선창은 단연 백운찬 세제실장의 입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이내 세제실 국장 이하 말단 직원들이 이에 일치된 후창으로 업무의 전열을 가다듬는다.
‘애나가’라는 구호는 정부가 지난 8일 <2012년 세법개정안>을 공표한 이후 세제실 외부까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이후 8월초까지 밤샘 작업을 불사하며 마무리된 세법개정 작업에 대한 여론의 반향이 뜨거워진 탓이다.
최근 백운찬 실장은 세법개정안 발표 이후 처음으로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세법개정안에 대한 여론의 일차적인 반응의 의식하는 발언으로 운을 뗀 뒤 “애나가”라는 구호를 던졌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애나다”로 화답을 해달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세법개정안 발표 이전이나 직후까지도 세법개정안 작업과 마무리, 그리고 새누리당과 가진 당정협의 과정에서 추가된 요구사항들을 반영하느라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만날 기회를 주지 않았던 터여서 갑작스럽게 나온 구호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애나가’는 “진짜야? 정말이야?” 하는 경상도 사투리였다. 백운찬 실장도 “‘애나가’는 일반사람들이 ‘진짜야?’, 영어로는 ‘Really?'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요” 하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게 ‘애나가’의 온전한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백 실장은 “‘애나가’의 애는 창자라는 말입니다”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애나가’라고 하면 ‘창자가 나가’ 하는 말이 됩니다, 그게 온전한 뜻입니다”라고 말했다.
‘애’는 순수 우리 옛말로 창자라는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전장에서 쓴 <난중일기>에 “한산섬 달 밝은 밤에/수루에 홀라 앉아/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茄)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는 시에서 ‘애’와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애나가?” “애나다”는 “창자가 빠져나올 정도로 죽을 힘을 다할 건가?”는 물음에 “다하겠다“는 뜻인 셈이다. 올해 세법개정 작업을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하고 세상에 공표한 이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각종 반대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비장한 각오를 표출한 구호인 셈이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전장에 임할 때 병사의 자세를 말한 “죽기로 싸우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백운찬식 구호이자 세제실 직원들의 전열정비를 위한 자기기강의 함축어인 것이다.
올해는 임진왜란이 발발된 지 꼭 4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임진왜란을 조일전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1592년 발발해 갑자년(60년)이 7번이나 지난해가 바로 올해이다.
‘애나가’라는 구호의 연원은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진주목사 김시민이 이끈 진주성 전투에서 처음 등장했던 ‘암구어’라고 한다.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 위해 조선군 내에서 아군인지를 식별하기 위해 썼던 ‘암구어’라는 것이다.
진주성 전투는 1592년 8월 진주목사로 부임한 김시민이 9월과 10월에 걸쳐 3000명의 조선군을 이끌고 의병들의 도움을 받아 3만명의 일본군을 물리친 전투로 진주대첩으로 불린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과 권율 장군이 이끈 행주대첩과 함께 임란 3대첩(壬亂三大捷)으로 꼽힌다.
※사진: 기획재정부 백운찬 세제실장이 지난 8일 <2012년 세법개정안>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백운찬 실장은 올해 금융세제를 도입한 것이 세법개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
◆ ‘애나가’ 진주대첩에서 첫 사용, “금융세제 반드시 도입 정비해야 한다“
백운찬 실장(사진)은 1956년 경상남도 하동 출신인데, 진주에서 정훈장교를 하던 시절 ‘진주대첩’과 ‘애나가’를 알게 됐다고 한다. 국민들을 왜군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조세저항을 극복하고 세법개정안을 관철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실상 올해 세법개정안의 한계는 뚜렷하다. 당초 조세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시작을 했지만 글로벌 재정위기가 심화되고 국내 경기마저 침체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막상 제대로 할 것들을 손대지 못했다. 재정건전성과 국가신용등급, 가계부채 등의 현실적 제약 속에서 손을 대려고 시도했지만 막판에 다시 손을 거두는 일도 있었다.
실제로 올해 연말로 일몰이 되는 비과세 및 감면제도 103개 중에서 불과 24건만 폐지하고 26건을 정비하는 데 그쳤다. 소득세에 대한 과표구간 조정 등을 손을 대지 못하는 바람에 정부 발표도 ‘세제개편안’이 되지 못하고 ‘세법개정안’에 머물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기조 유지 및 친기업 정책으로 기업 관련 세제를 손댈 수 없는 한계가 있기도 했지만, 비과세 감면 제도 중에서는 기업 관련 세제지원은 투자 등 내수활성화를 위해 대부분 3년이나 일몰기한을 연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세법개정안에서는 금융세제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체계를 잡고 비과세 및 감면 제도를 정비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금융종합과세의 과표를 3000만원으로 낮추고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의 대주주 주식양도차익의 과세대상을 확대했다.
100세 시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에 대비해 연금소득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화하고 퇴직소득에 대한 과세를 정상화하면서, 고액체납자에 대한 재독촉 소멸시효를 중단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차명계좌에 대한 증여추정을 명확하게 하는 등의 성과도 보였다.
아울러 농협과 수협, 신협 등 조합 등에 대한 출자금과 배당금에 대한 비과세를 36년만에 종료하고 5%의 저율분리과세를 도입하고, 장기주택마련저축의 소득공제를 종료하는 대신 재형저축을 도입하는 등의 보완책도 내왔다.
그렇지만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한 반발과 조세저항 움직임이 터져 나오고 있다. 비과세 혜택을 받았던 시절의 보호막을 연장시키려는 반발과 새로운 금융세제에 대한 반론은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9월말 국회로 넘어가면서 다시금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백운찬 실장은 “실상 올해 세법개정안에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해 맘 먹은 수준에서 1/3 정도만 반영했다”며 “그렇지만 올초 금융세제팀을 만든 취지를 살려 금융세제에 대해서만은 잘했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백 실장은 “금융세제는 사무관 시절부터 세제의 사각지대로 여기고 세제실장이 된 입장에서 제대로 체계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공무원들도 금융을 알면 세제를 모르고 세제를 알면 금융을 모르는 현실에서 양쪽의 알게된 상황에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또 백 실장은 “우리나라도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대를 맞아 그 체계에서 경쟁을 하면서 성장을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이 발달하고 규모도 커지는 만큼 금융세제에 대해 반드시 체계를 잡는 시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백운찬 실장은 행정고시 24회로 일선 세무서에서 공직을 시작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재경부 조세지출예산과장, 소득세제과장, 근로장려세제추진기획단 부단장, 부동산 실무기획단 부단장을 거쳐 기획재정부에서 관세정책관, 재산소비세제정책관을 거쳐 세제실장으로 올해 세법개정 작업을 총괄했다.
[뉴스핌 Newspim] 이기석 기자 (reuhan@newspim.com)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