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기석 기자] 국내 소비자물가가 19개월만에 2%대로 떨어진 가운데 생산자물가도 2년만에 2%대로 하락했다.
생산자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전이된다는 점에서 생산자물가의 하향안정세는 소비자물가의 2%대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소강상태로 들어서면서 국제금융시장이 안정감을 되찾은 가운데 국내 물가가 2%대로 낮아짐에 따라 민간소비의 회복 가능성과 더불어 정책당국의 운신폭도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 생산자물가도 2% 하향, 국내 물가 2%대 지속 가능성
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생산자물가는 전년동월비 2.8% 상승, 지난 2010년 3월 2.6% 상승한 이래 24개월만에 최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월비로는 0.6% 올랐다.
농림수산품이 전년동월비 3.1%에 그쳤고 공산품도 3.1% 올랐다. 반면 서비스 물가가 1.3%에 그치면서 2%대 상승률에 그쳤다.
한은 관계자는 “국제유가와 원자재가격이 전년동월에 비해 상승폭이 둔화된 데다 기저효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둔화됐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통계청이 지난 1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도 전년동월비 2.6% 상승, 지난 2010년 8월 이후 19개월만에 2%대로 낮아진 바 있다.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가 모두 2%대로 하락하기는 했으나 지난해 고공행진을 했던 탓에 전년대비 상승률이 낮아지는, 이른바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국제유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생산량 확충과 선진국들의 비축유 방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어 물가전망을 낙관적으로만 할 수도 없는 상태이기도하다.
더욱이 국제유가 급등세에 따라 국내 도입원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나 기대인플레이션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 국내 정책당국 운신폭 확대될 듯
그렇지만 국내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가 모두 2%대로 하락하면서 정부나 통화정책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정책을 펴나갈 수 있는 입지가 확대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국제적으로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스페인 등의 일부 불안요인이 있지만 자체 유럽안정기금 확대와 더불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 아래 일단 큰 고비는 넘긴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글로벌 경기는 미국의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한동안 기대감을 높였지만 3월 비농업부문 신규일자리가 시장의 예상보다 절반 가량 낮은 12만개 수준으로 나오면서 찬물을 끼얹은 상태이다.
이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이 안정감을 되찾으면서 국내외에서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집중했던 힘을 덜 수 있게 되면서 자국 내 실물 경제의 회복에 좀더 신경을 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경기는 수출증가율이 올들어 석달 중에서 1, 3월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내수 역시 좋지 않은 상태이다. 건설투자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월세를 비롯한 주택시장은 여전히 암흑기이고 설비투자 역시 다시 주춤거리고 있다.
국내 소매판매 역시 조금 오르는 듯한 모습이지만 내수업체들의 경기판단은 극히 취약한 상태이고 자영업자들을 포함한 가계의 소비여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는 게 중론이다.
통상 국내 물가가 하락하면 비용을 지출하는 가계나 기업 등 경제주체의 입장에서는 지출되는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구매력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 물가가 하락한 만큼 민간 소비가 늘어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NH농협증권의 김종수 이코노미스트는 “물가안정은 국내 가계의 구매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올해에는 민간소비가 확대되면서 경기회복세를 기대할 만한 긍정적인 요소가 생겨나고 있다”며 “올해 성장률에 대한 상향 조정을 유도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 물가 하락 양면성 있다: 소득 및 소비 확대 제약
그렇지만 올해 물가의 특성이 대체로 지난해 물가가 급등한 데 따라 물가가 올랐어도 지표상 낮아지는, 이른바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한 탓에 실제로 느끼는 체감물가나 장바구니물가는 크게 높은 상태이다.
특히 국제유가가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120달러를 웃돌고 국내 휘발류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훌쩍 넘은 상태이다. 여기에 축산물을 제외하고 농산물 등이 여전히 오르면서 서민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의 소득 축소와 더불어 소비 여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이다.
더욱이 국내 가계부채가 900조원에 달하는 상태여서 의식주 교통운수 관련 비용상승, 가계부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 전월세 가격과 교육비 상승 등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지갑상태가 등가죽이 배에 붙을 정도까지 곤궁한 상태로 몰려 있는 상태이다.
반면 물가가 2%대로 하락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좋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물가 상승률이 낮아질 경우 소비여력을 높여주는 측면이 있지만, 사는 입장에서 낮은 가격수준은 파는 입장에서는 낮은 소득수준이 되기 때문에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다.
지난 3월중 소비자물가가 2.6%대로 떨어진 것은 국제유가와 농산물값은 올랐지만 축산물 가격이 급락한 상황에서 서비스 부문에서 개인 및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상승률이 낮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부 대형마트와 SSM 등의 가격인하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서비스 부문에서 가격상승이 억제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는 뒤집어 보면 500만명이 넘는 자영업자나 소규모 중소서비스업체들이 판매가격을 높이지 못한 것으로 이들의 경우 소득증가가 거의 없었으며 그마저도 내수침체 때문에 판매가 크게 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만약 이렇게 국내 물가는 낮아지는 상황에서 소득 개선이나 소비 여력이 확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수취약성이 지속된다면, 물가하락 속에 경기침체, 이른바 ‘스테그네이션’(Stagnation)의 국면으로 경제가 가라앉는다는 얘기가 된다.
기획재정부의 주형환 차관보는 “물가가 2%대로 낮아진 것은 국민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그렇지만 물가하락은 소득증가를 막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경기흐름 등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기석 기자 (reuh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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