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기석 기자] 대한민국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747 공약’을 내세우며 성장 7%,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을 이루겠다고 선언한 지 5년만에 정부의 성장정책이 복지를 수용하는 쪽으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래 경제정책의 유일한 기조가 "성장일변도“였다는 점에서 "복지국가 지향”을 공식 선언한 것은 한국경제 60년사의 일대전환을 이루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4일 기획재정부의 김동연 제2차관은 <제3차 복지T/F 회의>와 관련한 브리핑에서 “정부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책을 펴나가는 데에 대해서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 국민들이 자칫 정부가 복지를 안하겠다고 한 것처럼 오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태까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정부의 입장은 “정치권의 복지공약이 재원조달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거나 “재원 방안도 없이 과도하게 복지만 얘기하고 있다”거나, “복지를 늘렸던 유럽 국가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또 박재완 장관이 지난 2월 한 강연에서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수준이 OECD 평균 19%의 절반으로 GDP의 9.7%“라며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수준이 적절하다”고 말한 것과도 크게 입장을 달리한 것이다.
더욱이 지난 2월 정부가 <복지T/F 1차 회의>에서 복지T/F를 공식 출범시키면서 운영계획을 밝힐 때에도 전체 지출 중에서 복지지출이 빨리 증가하고 있다며 복지를 지출 면에서만 봤었다. 당시 총지출은 5.3%인데 복지지출은 7.2%로 높다는 것이었고, 총지출 중 복지지출 비중도 28.5%로 높아졌다는 근거까지 제시했었다.
물론 이날도 김동연 차관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266개 복지사업의 재원을 평가한 결과 이들 사업의 재정추계 규모가 268조원에 달하며, 현실적으로 양당의 공약은 실현하기 어려우며 증세와 국채발행을 하지 않고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날 재정부 김동연 차관의 “복지국가 지향” 선언은 정부 고위당국자로서는 어느 과거 정부시절에서도 없었던 것이다. 정치적 사건으로 비춰보면 지난 1985년 평민당 유성환 의원이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고 말했다가 구속된 사건 이후 통일 논의가 급물살을 탔던 것과 같은 대전환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국제기구에서도 사회안전망 확충을 꾸준히 제기해 왔고 유럽국가들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과 달리 복지체계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출산 고령화시기로 급속 편입되는 상황에서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의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내용까지 포괄하는 것이어서 향후 정부의 행보가 주목된다.
◆ 한국 경제 60년사, 성장일변도 경제정책 지속
역사적으로 한국경제는 단독정부 수립 이후 1950년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미국의 원조로 재건이 시작되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최대의 과제였다.
1960년대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주도의 성장전략이 추진되면서 수출지원이 본격화됐다.
1970년대 들어서는 중화학공업 육성 전략이 세워지면서 금융통제를 통해 필요자금을 조달, 우선배분하면서 수출 중심 대기업 위주의 불균등 성장전략을 취하면서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후 1980년대 외채조달이 급격히 늘어나고 대외개방폭이 늘어나면서 민간주도의 경제체제를 확립하려고 시도할 때도 여전히 수출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전략이 골간을 이뤘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대기업 중심의 물량 투입식 성장전략의 한계가 드러났지만 이후 글로벌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까지도 위기극복이 더해졌지만 성장전략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처했지만 기본적인 경제정책은 이른바 ‘747 공약’으로 축약되는 것처럼 7% 성장,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등 성장이 최우선의 가치였다.
그렇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구제금융에 따른 대외 완전개방과 더불어 세계화에 급속히 편입되면서도 국내적으로는 사회복지체계가 도외시되면서 성장잠재력이 둔화되고 소득분배 악화로 사회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 처했다.
경제구조상으로는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화학공업과 경공업,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고용창출력이 곤란해졌고 소득양극화가 부의 세습으로 고착화되는 단계까지 몰렸다.
여기에 인구구조가 변화하면서 고용증가율과 저축률이 하락하고 성장률은 3% 수준까지 낮아지는 등 하락 추세에 들어섰다.
더불어 세계화의 심화와 함께 지식기반경제가 확산되면서 저숙련 근로자의 입지가 약화되고 상시구조조정에 따른 고령노동자 방출로 자영업자가 500만명까지 늘어나면서 상대적 빈곤이 심화되고 있다.
◆ 경제구조 양극화 심화, 복지체계로 성장 패러다임 대전환
이에 따라 1997년 IMF 때 국내의 경제적 난제가 외부충격에 따라 일차 해결되는 계기를 맞으면서 양적 패러다임의 한계에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년 유로존 재정위기를 겪는 와중에서 국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내적이면서 질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 상태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5년차를 맞은 2012년 4.11 국회의원 총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성장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복지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국민적 요구에 직면한 상태가 된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무상지원”이라는 구호를 통해 나타나서 정치권에서는 여당과 야당 사이에 “복지 포퓰리즘” 논란이 있었다.
그렇지만 집권 여당이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전격 간판을 달리 달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면서 내용 역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정책기조로 삼으면서 복지의 대폭적 수용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정부 역시 처음에는 정치권을 향해 대책없이 “복지 포퓰리즘”을 난발한다고 맞섰으나 현재의 경제성장과 경제구조가 심화될 경우 현재의 청년실업과 노령화에 대비해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복지 문제를 회피하기가 곤란해졌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0년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펴낸 <한국경제 60년사>에서 사공일 편찬위원장은 “우리나라는 경제개발이 시작된 1962년부터 2009년까지 경제규모가 33배 증가하는 기적적인 성공을 이뤄냈다”며 “세계 제2차대전 이후 개발도상국 중에서 경제적 성공과 정치적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사공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건국 이래 60년간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경제성장을 일구어 낸 것은 사실이지만 1990년대 초에 시작된 성장잠재력 둔화와 소득분배 악화가 2000년대까지 지속되면서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향후 한국 사회는 인구 감소와 본격적인 고령사회 진입으로 국가경제발전에 한계를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이미 제기됐으며, 핵심 생산연령인구의 감소와 결혼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국제결혼 증가와 외국 근로자의 대거 유입이 초래되면서 다문화 사회로 본격 이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양질의 교육과 보건의료서비스 수준의 고도화를 통한 인구의 자질 향상과 함께 다문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사회체계를 구축하는 데 적극 대비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급속한 경제발전과정에서 사회복지 보건 분야의 발전이 지체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수준에 걸맞는 사회복지 보건 분야의 발전이 뒤따라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경제60년사 편찬위원회는 “사회복지 보건분야의 발전은 국민소득 3만~4만달러의 국가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판단된다”며 “성장과 분배의 적절한 조화로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을 동시에 이룩하면서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김동연 차관도 “정부가 저소득층의 무상지원 등 공적부조 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고려하는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일부 도입해 나가고 있다”며 “국회와 생산적인 토론을 지속할 것이며 적정 복지까지 복지확충을 위해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향후 변화가 주목되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이기석 기자 (reuh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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