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삼성전자가 최근 10억달러 규모의 해외 회사채(글로벌 본드)를 발행한 것은 한마디로 "돈이 넘쳐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금융가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3일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SEA)은 10억달러(약 1조 1218억원) 규모의 5년만기 채권을 미국 국채수익률+80bp 금리수준(약 1.827%)에 발행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외평채(미국채+140bp 수준)보다 낮은 금리로 10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는데 성공했다.
◆ 발행금리 1.82%…예정 물량의 5배 몰려
이날 현지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에는 발행 예정액보다 5배 가량 많은 자금이 몰리면서 삼성전자 회사채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번 채권 발행에서 주간사로는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 씨티글로벌마켓증권, JP모간, 삼성증권 등 5곳이 참여했다.
또한 이에 앞서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날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이 발행한 선순위 채권에 'A'등급을 부여했다.
S&P는 이같은 평가의 배경에 대해 "삼성전자는 우수한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기반으로 강력한 수익성 및 견고한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패널, TV 및 휴대폰 등 대부분의 핵심사업에서 보유하고 있는 양호한 시장입지"를 반영한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S&P는 "전자산업은 경기변동에 민감하고 주요 제품라인에서 기술 및 가격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며 "삼성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는 긍정적 요소들을 상쇄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 삼성전자, 올연말 현금 10조 쌓일 듯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반도체 휴대폰 TV가전 등의 부문의 호조로 사상 최고의 실적이 예고되고 있고 현금도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현금흐름은 30~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금융업계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창출이 32조원대로 추산되며, 투자활동으로 인한 현금유출이 23조원, 여기에 차입으로 인한 현금유입이 4조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기초 현금은 14조원대에서 시작해 올해 말 현금보유는 25조원대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결국 올해 말까지 10조원 가까이 현금이 늘어날 전망이지만 1/4분기에만 벌써 1조원이 넘게 차입(현금 순유입)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 당분간 정부 외평채 보다 나은 대우
금융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 대략 4조1000억~4조5000억원대의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가운데 단기성 차입금은 9000억~1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기존 발행된 10억달러어치를 제외하더라도 최소한 1조원 내지 많게는 2조원 정도의 물량이 추가로 채권 등으로 발행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현재 채권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 환경이 전혀 나쁘지 않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손을 내밀어 누구의 돈을 받을 지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같은 물량은 국내에서 발행할 가능성은 낮고 대부분의 물량이 해외에서 이뤄지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또한 이미 유럽 등 선진 주요국에서도 우량기업의 회사채가 현지 국채금리보다 낮게 발행되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국가 부도 리스크보다 우량 회사가 도산할 가능성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한국의 신용디폴트스왑(CDS) 금리의 현재 수준(미국채+123bp)를 감안할 때 삼성전자의 회사채는 당분간 한국 정부가 발행한 국공채보다도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전망이다.
◆ 전문가들, 과도한 수익성 '차단' 목적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왜 이같이 막대한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을까?
이번 채권 발행은 미국 현지 금융시장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발행 수수료 등 비용만 해도 0.4~0.5% 수준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시장에서 같은 자금을 조달하는 것과 비교해 약 2배 가량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수십억원의 적지 않은 발행 비용을 떠안으면서까지 굳이 현지 채권 발행을 한 것은 일부 주주들로서는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삼성전자로서도 이같이 조달된 자금의 용처에 대해 이렇다하게 속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 현지법인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공장 증설 등을 비롯 돈이 들어갈 곳이 많다는 정도의 얘기만 들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해외시장에서 과도한 수익성을 기록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사채를 발행한 것이라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즉 과도한 실적으로 경쟁업체들의 집중 견제를 받고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채권발행 카드를 꺼냈다는 얘기다.
한 금융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가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과도한 수익성 때문"이라며 "해외에서 너무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되면 경쟁사들이나 각국 정부로부터 견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외국인 기관투자자 대상 컨퍼런스 콜을 통해 올해 투자는 반도체 부문에서 15조원 디스플레이 부분에서 6조6000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당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증설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기존 생산라인을 업그레이드하는 정도로 물량을 대부분 소화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다른 전문가는 "(삼성전자의 사채 발행은) 돈이 넘쳐나는데도 돈을 더 끌어들여야 하는 아이러니적 현상"이라며 "삼성전자의 올해 투자도 신규 투자보다는 기존 라인의 유지보수에 치중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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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