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오는 20일 이른바 트로이카의 그리스 2차 구제금융 집행이 승인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투자전문가들은 그리스의 디폴트에 따른 파장이 어떤 형태로 전개될 것인가를 저울질하느라 분주하다.
내달 디폴트 리스크를 무사히 넘긴다 하더라도 그리스의 부채위기가 종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을 통한 부채 상환력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디폴트가 불가피하다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 디폴트 이후의 시나리오는 크게 엇갈린다. 2008년 리먼 사태보다 더 극심한 후폭풍이 몰려올 것이라는 비관론과 시장의 우려처럼 이른바 무질서한 디폴트가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동시에 제기됐다. 일부 전문가는 오히려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가 그리스는 물론이고 나머지 유로존 국가를 위한 최선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찻잔 속 태풍
그리스의 디폴트가 패닉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자신하는 이들은 유로존 지역 은행이 노출액을 줄였고, 경제 규모가 작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한다.
유로존 내에서 그리스의 GDP 비중이 1%에 불과하다는 것. 또 해외 부채가 4550억 달러로, 2008년 미국 모기지 채권인 7조 5000억 달러와 비교할 때 말 그대로 '조족지혈'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그리스의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를 둘러싼 정치적인 마찰도 지난해에 비해 크게 진정된 만큼 충격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유니크레이트의 에릭 닐슨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존한다면 궁극적으로 나머지 유로존 국가가 채무조정에 따른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며 오히려 탈퇴를 바람직한 수순으로 판단했다.
스탠포드 대학의 키스 헤네시 교수는 “그리스의 디폴트가 유럽 지역 경제에 심각한 흠집을 낼 것이라는 주장은 대부분 타당성이 결여돼 있다”고 말했다.
◆ 과소평가 했다가 ‘큰코’
반면 그리스의 디폴트에 따른 충격을 과소평가했다가는 치명적인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2008년 리먼 파산 당시 국제담당 차관보였던 닐 캐슈카리는 그리스의 디폴트 위기를 적극 봉합하지 않을 경우 유로존 전역에 확산, 커다란 충격을 강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든 채권자들과 관련 국가가 충분한 준비를 갖추기 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유도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비관론자들은 그리스 사태가 명백히 구조적 리스크를 내포한 것이며, 디폴트 리스크 확산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프랑스 은행권만 그리스 노출액 총액이 567억 달러에 이른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집계에 따르면 미국 측의 노출액이 73억 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페이덤 파이낸셜 컨설팅의 대니 게비 디렉터는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질 경우 포르투갈의 디폴트 가능성이 60%를 웃돌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아일랜드와 스페인, 이탈리아로 확산된 후 프랑스까지 벼랑 끝으로 몰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 유로/달러 10% 하락 전망, ECB 직접 지원 나서야
그리스가 디폴트를 내고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유로화가 미 달러에 대해 10%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리스크 관리 업체 선가드APT의 조사에 따르면 유로화가 그리스 디폴트로 10% 하락한 후 포르투갈의 리스크가 부상하면서 추가 하락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또 유럽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25%가량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장기저리대출을 통해 주변국 국채 수익률 방어를 측면 지원하고 있지만 디폴트가 현실화될 경우 일부 정부게 직접적인 자금 수혈에 나서야 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캐슈카리는 “ECB와 EU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대해 방화벽을 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그리스 디폴트로 시장 불안이 이들 두 국가로 확산되는 순간 리먼 사태를 다시 한 번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중앙예탁기관인 DTC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신용부도스왑(CDS)을 통해 그리스 국채 손실에 대해 헤지한 금액은 32억 달러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