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안나 기자] 최근 달러가 사상 최저치 부근까지 약화된 가운데, 달러 약세에 따른 파급효과는 미국 정부나 중앙은행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통화 약세는 사실상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근본적 해결책 마련을 위한 정치적 합의 없이는 사태가 더 악화되어 2차 경기침체를 이끌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 弱달러 주범은 美재정악화+완화정책
이미 주요 통화에 대해 연초대비 8% 가량 약화된 미국 달러화가 더욱 빠르게 절하될 경우 무역상대국들의 보호주의 역습을 당할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이 더욱 악화되고 달러 자산에 대한 신뢰까지 잃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지고 나아가 2차 경기침체로 이어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달러 약세의 근본 원인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재정문제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 정부가 2년 내 재정악화를 해결할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최고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정부에 대한 기업들의 해결책 제시 요구도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주 미국 중장비업체인 캐터필러의 한 고위관계자는 "경제강화 방안의 마련은 재정적자 통제와 장기적 경쟁력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레나 코밀레바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BBH)의 전략가는 "아직 패닉 조짐은 없지만 상황이 쉽게 바뀔 수 있다"며 "미국 경제가 취약해지고 재정적자 해결을 위한 정치권의 합의가 나오지 않을 경우 달러 매도주문이 쇄도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 외에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을 비롯한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말뿐인 强달러 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연준은 2008년 말부터 사실상 제로 수준 금리를 고수하며 인플레이션 차단을 위해 금리인상을 개시한 다른 국가들과 대비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저렴한 달러를 차입해 고수익 통화나 원유와 주식 등에 투자하는 일명 '달러 캐리-트레이드'가 부활하며 금과 은 시세는 사상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유로화도 미국 달러 대비 2008년에 기록한 사상최고치 부근인 1.50달러 근처까지 절상되고 있다.
통화 완화정책 유지에 대한 외부의 비판에 대해 연준은 "경제가 여전히 취약해 긴축모드로 전환할 수 없으며, 중앙은행의 친성장 정책이 결국은 달러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주 가진 기자회견에서 "물가안정과 최대고용 달성에 필요한 조건들을 충족하면 중기적으로 달러에 도움이 될 펀더멘털도 저절로 조성되는 셈"이라고 언급했다.
BNP파리바 뉴욕 지부인 피셔 프란시스 트리스 앤 와츠의 아드난 아칸트 외환 전문가도 "달러 강세는 단순히 금리를 높여서 될 문제가 아니며, 건실한 경제회복을 통해 긴축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하고 물가상승률을 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弱달러에 각국 심기는 불편. 美 국채수익률에 촉각
하지만 미국의 완화정책에 대해 신흥국은 별로 달갑지 않은 입장이다. 연준이 공급한 막대한 유동성이 신흥국의 고수익 자산으로 몰리면서 인플레 압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BBH의 코밀레바 전략가는 "미국이 저렴한 달러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는 셈"이라며 "보호주의 전쟁이 벌어지며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지 않을지 우려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자국 통화 강세를 막기 위해 자본유입을 제한한 신흥국들의 노력은 아직까지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 브라질의 경우 레알 가치가 달러 대비 2년래 최고치로 치솟으며 수출뿐만 아니라 전반적 경제에 미칠 파장이 염려스러운 상황이다.
유로/달러가 1.6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최고치를 경신한다면 유럽도 심기가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정건전성 회복 과제를 안고 있는 역내 부채과다국들의 부담이 더욱 늘 수 있기 때문인데, 특히 그리스의 채무조정 가능성이 강화되며 유럽계 은행들에 대한 재정적 타격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연초 1.3345달러에 거래되던 유로/달러는 1.48달러 대까지 올랐으며, 역내 재정위기만 없다면 향후 추가 상승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채권 전문지 그랜츠인터레스트레이트옵저버의 편집자 제임스 그랜트는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달러 위치에 대해 너무 태연한 것이 아니냐"며 큰 우려를 표했다.
달러 약세가 수출 촉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미국 기업들이나 증시에는 분명한 호재이다. 백악관이 고용 창출을 위해 2015년까지 수출액을 배증한다는 목표인 만큼 더욱 그렇다.
하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도 내수가 늘며 물가 상승 압력이 완화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유가를 비롯한 수입 가격이 높아지고 개인과 기업들의 차입비용이 늘어 미국의 내수나 경제성장에는 타격이 될 수 있다.
달러 약세는 아직까지는 질서 있게 이루어지고 있다. 10년물 국채수익률은 3.30%로, 관리 가능한 수준에 머물고 있어 '달러 위기'라고 간주하기는 무리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다만 낮은 수익률의 배후에 연준이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다수 투자자들은 연준이 지난해 11월부터 매달 750억달러의 국채를 매입해온 만큼, 오는 6월 프로그램이 종료될 경우 국채수익률이 다시 높아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
데이비드 우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fA-메릴린치)의 외환전략가는"미국의 경우 달러 약세의 경제적 득실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가리기는 힘들다"고 평가했다.
◆ 재정적자 감축에 대한 실질적 정치권 합의 시급
1970년대 후반 미국이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달러 자산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추락한 적이 있는데, 현재 상황은 그 당시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재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작년 연준의 2차 양적완화 실시 이후 중국을 비롯한 해외 큰손들의 미 국채 매수가 크게 줄었고, 민간 부문의 투자도 주춤해진 상태다.
세계 최대 채권 펀드인 핌코는 지난 2월 보유 중이던 2360억달러의 미 국채 전량을 매각했고, 핌코의 빌 그로스 CEO는 "채권수익률이 추가로 오르고 달러는 하락하여 미국이 결국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박탈당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놓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BofA-메릴린치의 우 전략가는 달러 약세를 반전시킬 가장 빠른 방법으로 미국 의회와 백악관이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을 꼽으며 "그렇게만 된다면 달러 매수세가 다시 늘며 유로 대비 달러가 단기 내 1.30달러대로 복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글라스 보스윅 파로스 트레이딩의 전무이사는 "미국의 정치적 교착상태가 계속되어 재정문제가 나아지지 않으면 상황은 급격히 악화될 수 있으며, 특히 수익률 급등으로 올해 말 연준이 자산매입 조치를 재개할 경우 재정부실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이처럼 사태가 계속 악화되면 S&P와 중국 런민은행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달러에 대한) 비난이 더욱 거세지며 결국 달러는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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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장안나 기자 (jaann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