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동훈기자]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송모씨(42)는 최근 말로만 듣던 전세난의 실체를 피부로 느꼈다. 올해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첫째 아이를 위해 그동안 살던 분당에서 잠실로 이사하려던 송씨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전세를 들기 위해 미리 전세주택을 탐색해봤던 지난 10월 4억2000만~4억3000만원 선이던 잠실 재건축 신규 아파트 30평형대의 전세가는 불과 석달만에 4억6000만원으로 3000만~4000만원 가량 껑충 뛰었기 때문.
그나마 전세난이 심각하다는 언론의 보도가 가중되자 집주인들이 전세가를 올리거나, 아니면 월세로 돌릴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송씨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약 500만원 가량의 월 급여를 받는 송씨 입장에선 200만원이 되는 월세를 내면서 두 아이를 키우고, 본가와 처가의 용돈도 주는 현재와 같은 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송씨는 다시 분당에서 전세집을 알아보고 있다.
1년 넘게 이어지는 전세난으로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서민 생활과 직접 맞닿아 있는 만큼 전세가 상승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정부차원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물론 전세난 이슈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IMF 이후 본격적인 집값 상승이 일어난 2000년대 이후에도 2~3년마다 도래할 정도로 전세난은 이제 상습적인 사회적인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이에 따라 전세난의 근본 원인에 대한 고찰없이 대증요법적 접근 만으로는 전세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와 시장의 주장이다.
◆ 상습적 전세난 근본 원인은 저금리
최근 나타나고 있는 전세난의 심각성은 전세가격을 매매가격에 비교하는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에서 잘 나타난다. 지난해 1월 52.3%선이던 수도권 지역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올 1월 57.1%로 1년새 5%p가 뛰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전반적인 시장 안정세와 부동산 거품 소멸에 따라 매매가는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전세가만 오르는 것으로 분석해볼 수 있다.
특히 수도권을 제외한 비수도권 지방도시의 전세가 비율 상승폭은 더욱 뚜렷하다. 부동산 정보업체에 따르면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광역시들의 매매 대비 전세가 비율은 70% 선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전세난의 근본 이유에 대해 정부는 주택 수요-공급 구조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지난 13일 서민물가안정대책에서 전월세 안정대책을 발표한 부동산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와 주택건설업계에서는 아파트 공급 부족과 매매시장 부진에 따라 매매 수요의 전세수요 이동을 주요 요인으로 보고 있다. 즉 매매시장의 불안전성이 전세가 오름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주택거래가 어려워짐에 따라 주택 소유자들이 주택 매매로 인한 자본 수익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면서 임대수익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전세난의 원인"이라며 "매매시장이 정상화 돼 자본수익에 대한 희망이 다시 생기면 임대차 시장도 정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주택 보급률이 100%에 육박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기적으로 전세난이 도래하는 것은 매매시장의 불안정성 때문만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주택보급률 100%시대인 만큼 입지에 따라 매매가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집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전세난으로 이어질 개연성은 크게 낮아지게 된다"며 "특히 업계가 최근의 주택 매매시장을 '불안정'이라고 규정한다면 주택 매매가가 급등하던 2000년대 초반은 매매시장이 '안정'적이라 볼 수 있는데, 전세난은 2002년, 2006년에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고질적인 전세난의 근본 원인은 2000년대 이후 정착되고 있는 '저금리 시대'에서 근본원인을 찾아야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저금리, 국내 주택 임대차 시장 틀 바꾸다
실제 한번에 집값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돈을 보증금으로 주고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집을 임차해서 사용하는 전세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 방식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전세 방식이 기반은 무엇보다 '고금리'에서 비롯됐다.
과거 70~80년대 고속성장기의 우리나라의 금리는 10%를 넘어서 월 1%대에 이르렀다. 즉 1억원을 은행에 맡기면 매달 100만원 씩을 이자로 받아 챙길 수가 있었던 시대라 전세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연 16%의 초고금리가 형성됐던 IMF 시대가 마감되고 2002년 이후 6%이하의 기준금리가 조성되면서 전세제도가 자리잡을 환경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1억원짜리 전세를 내면 매달 100만원 가량의 임대소득을 거둘 수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임대소득이 절반으로 줄어버린 셈이다.
더욱이 지난 70~80년대와 같은 고금리 시대는 더이상 나타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저금리로 인한 주택 임대차 시장의 변동도 예측되고 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전세난 자체는 저금리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현재의 전세 중심 주택임대차 시장의 월세 중심으로의 변화는 저금리가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시세차익보다 임대수익을 노리는 집주인들이 많아지면서 주택 임대차 시장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저금리 시대는 지난 2002년부터 본격화됐다. 다만 2006년까지는 집값 급등이 이루어졌던 시기였던 만큼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간접 레버리지 효과'를 얻는 행위가 빈번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이 같은 투자자들이 대거 사라져 임대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로 주택 투자 양상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박 팀장은 "지금의 전세난은 저금리로 인한 주택 임대차 시장의 변화가 이어지는 과도기"라며 "전세를 놓을 경우 임대수익은 은행 금리와 동일한 4%선 이하가 될 수 밖에 없지만 월세 형식으로 바꾼다면 연 7% 가량의 수익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저금리시대가 이어지고 전세난까지 발생하는 등 주택 임대차 시장이 공급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월세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임차인을 구하는 주택 중 전세는 60%에도 못미치고 있고, 40% 이상이 월세 매물"이라며 "그나마 전세도 전세보증금을 떨어뜨리고 나머지 부분을 월세로 받는 반전세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시장 전문가는 "정부가 최근 권장하고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도 따지고 보면 월세 상품인 만큼 월세 중심의 임대차 시장 변화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며 "다만 임차인들의 전세 선호가 여전히 높은데다 강남, 목동 등 인기지역을 제외한 곳은 임차인 중심 시장으로 바뀌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전세시장도 그리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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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이동훈 기자 (dong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