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망] 당국의 힘이 좌우하는 시장, “1,170원 바닥인식 팽배, 박스권 교전”
서울 외환시장 내 외환당국의 정책목표가 최우선으로 대두되고 있다. 환율을 움직이는 주요인인 수급상황, 인접국 통화(달러/엔 환율), 증시 등에 대한 반영은 뒷전으로 물러서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시장 자율성에 근거한 환율 움직임보다 당국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거래 의욕은 크게 떨어진 상태다. 단기적으로 환율 움직임은 당국 의지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당국 눈치만 보는 형태가 돼 버린 것.
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1.00원 오른 1,171.00원에 마감했다. 이번주 개장이후 마감가 기준으로 전날대비 상승과 하락의 엇갈린 행보를 나타냈다.
장중 고점은 1,171.80원, 저점은 1,169.90원을 가리켰다. 하루 변동폭은 1.90원으로 지난 8월 26일 1.80원이후 최소 수준이다. 18일 기준 환율은 1,170.60원으로 고시된다.
시장의 관심사는 당국의 행보를 좇아가고 있다. 당국의 의중은 1,170원의 강력한 지킴이로서 자리매김했다고 시장은 읽고 있다. 이를 부인하고 홀로서기에 나설만한 시장 참가자들은 없다. 당국은 단기적으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벽’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제반여건은 여전히 환율 하락에 기울어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달러/엔 환율은 일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이 있지만 위로 올라가면 매물 부담으로 밀리는 형국을 거듭 연출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115엔대의 재진입도 예상하고 있다.
국내 수급상황도 공급 우위다. 업체 네고물량은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역외 쪽도 호시탐탐 매도기회를 노리고 있다. 증시의 외국인은 월요일 반짝 주식순매도를 기록한 이후 다시 순매수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물론 물량 압박의 정도는 한가위 연휴이전보다 완화된 상태다.
목요일 환율은 달러/엔의 급락이 없다면 1,170원은 지지될 가능성이 크다. 위쪽으로도 물량 부담을 감안하면 오를 공간이 넓지 않다. 이래저래 좁은 박스권에서 교전을 치르는 장세가 연장될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 견고한 당국 입장, 시장 자율성에 의문부호
지난달 하순이후 당국은 차츰 입장을 강화, 1,170원을 사수하고 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8월 22일 1,169.50원까지 내려선 뒤 4주째 1,170원에 방화벽을 쌓아놓고 있는 것. 이 기간동안 1,170.00원을 종가로 기록한 거래일도 3일이나 되며 번번이 1,170원 하회 시도가 막히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같은 ‘학습 효과’로 인해 변수의 하락 유도에도 불구, 섣불리 달러매도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가위연휴 이전 외국인 주식순매수 등 매물부담에 의한 압박을 견딘 데 이어 연휴가 끝난 후에도 엔화 강세 등에 묵묵히 버티고 있다.
당국의 입장은 그럼에도 확고했다. 수요일 일부 외신 등을 타고 전해진 당국 의중은 ‘펀더멘털과 괴리된’ 환율 움직임에 대한 제동이었다. 윤여권 재정경제부 외화자금과장 명의의 발언은 일본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우리 경제는 태풍 등으로 수출이 차질을 빚고 경제성장률이 하향할 여지가 있어 원화 강세는 제한돼야 한다는 것.
수출로 경기를 지탱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환율에 하락세가 더욱 강화되면 경제 전반에 어려움이 더욱 가중된다는 논리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태풍의 피해가 있었지만 과연 펀더멘털이 시장 제반여건을 무시할만큼 나쁘냐는 것. 특히 앞서 4/4분기 경기회복을 전망하고 있는 정책성 멘트들과 달리 외환시장에서만 유독 펀더멘털이 나빠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
일부 시장 관계자는 이를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탓했다. 필요에 따라 한 쪽에서는 기대감을 가져도 좋다는 발언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엉뚱한 발언으로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수출을 살리겠다고 시장의 자율성을 무시할 때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시장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일부 지적하고 있다. 한 시장 참가자는 “말로는 시장 자율을 외치지만 정작 시장 원칙을 존중하고 있는 지 의문스럽다”며 “이런 식으로 막다가 뚫리면 봇물 터지듯 아래로 밀릴 수가 있다”고 말했다.
◆ 좁은 박스권 횡보 유효, 1,170원은 단기 바닥
그렇지만 시장 참가자들은 목요일 환율도 달러/엔의 급등락이 없다면 오늘과 비슷한 수준에서 움직일 것으로 대체로 보고 있다. 당국이 대외적 여건이나 수급 상황의 큰 변화가 없다면 현 수준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역외에서도 매도 의사를 보이고 물량이 꾸준히 있지만 당국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다면 해결 방안이 없다”며 “달러/엔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1,170~1,172원, 달러/엔이 다시 오르면 고점이 1,173~1,174원으로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외국계은행의 딜러도 “달러/엔이 밤새 115엔대로 폭삭 내려앉지 않고 NDF환율도 1,160원대 초반정도로 밀리지 않으면 당국이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라며 “1,170원을 저점으로 놓고 위로 올라도 1,172원에서는 물량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당국도 시장 참가자의 일원임을 감안하면 현재 1,170원은 단기 바닥으로 봐야 한다”며 “당국이 1,170원을 물러주면 1,160원, 1,150원까지 급격하게 밀릴 수 있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달러/엔, 일 당국 개입 의식
116엔대 초반까지 밀렸던 달러/엔 환율도 일본 외환당국을 심히 의식하고 있다. 닛케이지수의 강세가 지속되면서 하락세를 유지할 듯 움직였던 달러/엔은 115엔대 진입을 놓고 주춤했다. 닛케이지수가 장 막판 이익실현 매물로 강세를 약간 누그러뜨린 데다 일본 당국이 손을 쓸 시점이 됐다는 인식이 강화됐다.
미조구치 젬베이 일 재무성 차관과 후쿠다 야스오 일 관방장관은 구두개입을 통해 외환시장에 ‘경고’를 전파했다. 오는 주말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회담을 앞두고 아시아통화 절상 압력 등을 감안, 시장 개입이 느슨해질 것이란 전망이 있으나 그렇다고 달러/엔이 115엔대로 밀리는 것을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미 115엔대로 밀렸을 때 일본은행(BOJ)의 엔화매도 개입으로 추정되는 일련의 강한 물살을 맞닥뜨린 바 있기 때문에 이를 기억하고 있다. 섣부른 달러 매도에 나서 피를 볼 수는 없는 법. 시장 참가자들도 ‘돌다리는 물론 철교까지 두들겨’ 건널 의사다.
또 오는 20일 있을 일 자민당 총재 선거라는 정치적 이벤트가 있기 때문에 시장 개입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미 정치에 쏟아지고 있는 눈길을 감안하면 달러/엔도 정치적 영향권에 편입돼 있다는 것이다.
[뉴스핌 Newspim] 이김준수 기자 jslyd0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