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드에 기록된 웨스트민스터 영국 의회의 교훈
영국 웨스트민스터 의회 민주주의의 궤적을 쫓아온 대장정을 맺는다. 우리는 18세기 피트와 폭스의 황금기부터 19세기 노예제 폐지와 곡물법 논쟁, 그리고 제국의 팽창을 둘러싼 아편 전쟁의 고뇌를 한사드(Hansard)라는 의회 역사 기록을 통해 목격했다. 앞선 시리즈를 통해 확인했듯,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제도의 설계도가 아니라 그 안을 채우는 '언어의 질'에서 기인한다.
제5편인 본고에서는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며 영국이 마주했던 거대한 국가적 위기들, 제2차 세계 대전의 절체절명 순간, 수에즈 운하의 외교적 몰락, 그리고 현대의 브렉시트 분열을 다룬다. 특히 이번 장에서는 한사드 공식 속기 체계(Fifth Series)가 구축된 1909년 이후의 기록을 바탕으로, 의회의 언어가 어떻게 국가를 하나로 묶고 때로는 분열을 치유하며 민주주의의 '면역력'을 증명해 왔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프랑스 함락과 절망의 끝에서 행한 웨스트민스터 연설
1940년 6월 4일 오후 3시 40분, 하원 회의장의 공기는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던케르크(Dunkirk)에서 33만 명의 병력을 기적적으로 철수시켰지만, 유럽 대륙은 히틀러의 발아래 놓였고 영국의 앞바다에는 독일군의 침공 함대가 집결하고 있었다.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에드워드 피츠로이(Edward FitzRoy)는 장내의 긴장을 억누르며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총리에게 발언권을 부여했다.
처칠의 연설은 프랑스 함락 후 전선에 투입되었던 영국군의 던케르크 철수 작전에서의 군사적 참패를 거대한 군사적 재앙이라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하지만 곧이어 이 비극을 구출의 기적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하며 항전의 당위성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한사드 기록에 남겨진 처칠의 연설 중 가장 위대한 대목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We shall go on to the end, we shall fight in France, we shall fight on the seas and oceans, we shall fight with growing confidence and growing strength in the air, we shall defend our Island, whatever the cost may be.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 we shall never surrender!
(우리는 끝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이며,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커지는 자신감과 힘으로 하늘에서 싸울 것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섬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며, 상륙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이며,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Loud and enthusiastic cheers - 크고 열렬한 환호)
이 연설의 진면목은 야당의 반응에 있다. 평소라면 날카로운 교차 검증(Cross-examination)으로 정부를 몰아붙였을 야당 의원들은, 국가 존망의 위기 앞에서 행한 처칠의 연설에 지지를 보냈다. 한사드 텍스트에는 평소 의장이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외치는 "Order!"라는 외침이 이 연설 동안에는 단 3회에 불과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평소 격렬한 분열을 보이던 의회가 처칠의 언어 아래 하나로 응집되었음을 보여주는 정량적 지표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에서 묘사된 것처럼, 처칠은 원고를 쥔 손을 떨면서도 "승리 (Victory)!"를 외쳤고, 플로어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사당 바닥을 발로 구르며 환호하는 소리가 기록되었다. 이는 민주주의의 언어가 어떻게 거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용기의 도구'가 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처칠의 연설은 국가 존망의 위기에 놓인 또 다른 지도자들에게 교과서가 되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13일째 되는 날인 2022년 3월 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대통령이 영국 웨스트민스터 하원에 화상으로 행한 역사적인 연설이 이루어졌다.
당시 상황은 러시아군이 키이우(Kyiv)를 포위하기 위해 진격하고 우크라이나 전역에 무차별적인 포격이 쏟아지던 절체절명의 위기 속이었다. 젤렌스키(Zelenskyy) 대통령은 영국 하원 의원들이 가득 찬 본회의장에 화상으로 등장하여, 침공 후 13일 동안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겪은 참혹한 전쟁의 기록을 날짜별로 읊조리며 서방의 결단을 촉구했다.
영국 의회 역사상 외국 정상이 하원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한 것은 젤렌스키(Zelenskyy)가 처음이었으며, 이는 1940년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연설에서 토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처칠(Churchill)의 언어로 현대의 비극을 고발한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We will not give up and we will not lose. We will fight until the end, at sea, in the air. We will continue fighting for our land, whatever the cost. We will fight in the forests, in the fields, on the shores, in the streets. I would like to add that we will fight on the banks of different rivers like the Dnieper. We are looking for your help, for the help of the civilized countries. We are thankful for this help and I am grateful to you, Boris.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바다에서,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우리 땅을 위해 계속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숲에서, 들판에서, 해변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우리는 드니프로(Dnieper)와 같은 강둑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도움, 문명화된 국가들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 도움에 감사하며, 보리스(Boris Johnson) 총리 당신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

복지국가의 설계와 합의 정치
1945년 7월 5일 총선을 앞두고 웨스트민스터에서는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터져 나왔다.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국민에게 무한한 헌신과 희생을 강요했다면, 승리 이후의 국가는 국민에게 어떤 삶의 질과 사회보장을 돌려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었다.
노동당의 당수 클레멘트 애틀리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전방위적 사회보장 제도를 내세우며, 전장의 병사들과 공장의 노동자들이 흘린 피의 대가는 바로 '빈곤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대결을 넘어, 국가와 국민 사이의 새로운 사회 계약을 맺는 성스러운 제안이었다.
애틀리의 발언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The nation needs a tremendous overhaul, a reconstruction plan... The war has been won by the efforts of all our people... we have to enjoy again the personal civil liberties we have, of our own free will, sacrificed to win the war. But there are certain so-called freedoms that Labour will not tolerate: freedom to exploit other people; freedom to pay poor wages; freedom to deprive the people of the means of living full, happy, healthy lives. The sacrifice of our soldiers and workers must be repaid with freedom from want and disease.
(국가는 거대한 개조와 재건 계획이 필요합니다. 이번 전쟁은 우리 모든 국민의 노력으로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자유 의지로 희생했던 개인적 자유를 다시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노동당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소위 '자유'들이 있습니다. 타인을 착취할 자유, 저임금을 지급할 자유,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충만하고 행복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단을 박탈할 자유입니다. 우리 병사들과 노동자들이 흘린 희생의 대가는 반드시 빈곤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로 보답받아야 합니다)."
이에 맞선 처칠은 전쟁 영웅으로서의 카리스마와 자유 시장의 가치를 강조하며 대응했다.
"I must tell you that a socialist policy is abhorrent to British ideas on freedom. There is to be one State, to which all are to be obedient in every act of their lives. This State, once in power, will prescribe for everyone: where they are to work, what they are to work at... A socialist state could not afford to suffer opposition... they would have to fall back on some form of Gestapo.
(저는 사회주의 정책이 영국인이 생각하는 자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모든 이가 삶의 모든 행위에서 복종해야 하는 단 하나의 국가가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이 국가가 일단 권력을 잡으면 모든 이에게 어디서 일할지, 무슨 일을 할지를 규정할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반대 세력을 용납할 여유가 없으며, 결국 일종의 게슈타포(비밀 경찰) 같은 형태에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시대의 요구는 이미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체적인 복지의 언어로 기울어 있었다. 한사드(Hansard) 기록에 따르면, 선거 전후의 복지 논쟁은 이전의 전시기 담론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야당이었던 노동당은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부의 예산안을 조목조목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했고, 의회는 단순히 권력의 장이 아닌 구체적 정책을 세부 사항을 가다듬는 거대한 공론장으로 기능했다.
당시 의회는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추상적 논쟁을 넘어 "어떻게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리는 공론장으로 작동했으며, 이는 영국 복지 국가의 틀을 놓은 근간이 되었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