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처리에 최고위원 "李 협치 쇼 들러리"반발
尹 1심선고 1주일 앞두고 李와 사진 부담 해석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청와대 오찬 회담을 취소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자신이 요구해 성사된 157일 만의 회담을 불과 한 시간 남겨 놓고 스스로 깬 것이다. 소통과 협치의 상징적 자리가 하루 만에 여야의 극한 대치로 바뀐 것이다.
물론 빌미를 준 것은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청와대 회담이 성사된 직후인 지난 11일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과 대법관 수를 현재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사법부 압박을 재개한 것이다.
그럼에도 장 대표는 12일 아침까지만 해도 회담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민생의 어려움을 이 대통령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국민의힘의 비전과 대안도 내놓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청와대 회담을 통해 제1야당 대표의 존재감을 부각, 한동훈 전 대표 제명 파동에서 벗어나 중도층 공략의 계기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 '최고위원 일제히 강력 반발' 수용 모양새
이런 구상은 최고위원회의에서 틀어졌다. 최고위원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신동욱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4심제 국가'로 만드는 법안을 어젯밤 일방적으로 처리했다"며 "대표가 연출극에 들러리 서지 말기를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불참을 촉구했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과 장 대표를 민주당과 이 대통령의 오점을 덮는 용도로 사용치 않길 바란다"고 가세했고, 양향자·조광한 최고위원도 "계산된 오찬"이라며 재고를 요청했다. 여권의 '협치 쇼'에 들러리를 서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결국 이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장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손으로 등 뒤에 칼을 숨기고 한 손으론 악수를 청하는 것에 대해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전날 밤 국회 법사위에서 대법관 증원법과 재판소원법의 강행 처리를 불참 이유로 들었다. 장 대표는 "대통령과 오찬이 잡히면 반드시 그 전날에 무도한 일들이 겹친다"며 "청와대에서 법사위에서 강행 처리할 것을 몰랐다면 정 대표에게 묻겠다. 이번 오찬 회동이 잡힌 다음에 이런 악법을 통과시킨 것도 대통령을 의도적으로 곤경에 빠뜨리려는 것인가. 정 대표는 진정 이 대통령의 엑스맨인가"라고 따졌다.
장 대표는 "이러고도 제1야당 대표와 오찬을 하자고 한 것은 밥상에 모래알로 지은 밥을 내놓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며 "민생을 논하자고 하면서 모래알로 지은 밥을 씹어 먹으러 청와대에 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 李대통령 협치 행보에 들러리 서는 결과 우려
장 대표는 민주당의 사법부 옥죄기를 불참 이유로 꼽았지만 속내는 다소 복잡한 것 같다. 법안 일방 처리가 문제라면 회담에 참석해 강력히 항의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회담 의제가 정해지지 않은 터였다. 더욱이 장 대표는 법조인 출신이라 법안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질 수 있었다. 여론전 측면에서 회담 보이콧보다 더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것이 직접적인 빌미가 됐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화해의 자리'에 들러리를 세운 거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청와대 측과 정 대표 측이 최근 1인1표제에 이어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을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지난 11일에야 지방선거 전 합당 논의 중단에 합의하면서 갈등을 봉합했다. 오찬 회담이 갈등 후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첫 만남이다.
장 대표의 언급에서 비슷한 기류를 읽을 수 있다. 장 대표는 불참 결정 직전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얻을 게 없는 회담에 대한 부담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수 있다. 민생의 어려움을 전하는 것 말고는 달리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민의힘이 강력히 요구하는 항소 포기 특검과 통일교 특검 등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면 이 대통령은 회담을 통해 협치와 국민 통합을 부각할 수 있다. 협치와 통합의 화두를 선점함으로써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 이 대통령 지지율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 대통령의 협치 행보에 들러리를 서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 청와대 회담 불발…되레 정국 경색 기폭제
일각에서는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19일로 예정돼 있다. 윤 전 대통령 선고를 1주일 앞두고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과 사진을 찍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강경 보수층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극우 인사 전한길 씨는 지난 11일 "윤석열 전 대통령 선고를 일주일 남겨 놓고, 청와대를 찾아 간다고?"라며 "지난번에 계엄을 사과하더니 이 타이밍에"라고 회담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번 회담 무산으로 정국 급랭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민주당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 작태에 경악한다"며 "국민의힘의 무례함으로 무산된 청와대 오찬이다. 정말 어이없다"고 했다.
한민수 의원도 페이스북에 "영수회담마저 정치 공세 수단으로 여기는 국힘당을 국정의 파트너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홍익표 정무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회동은 국정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며 "국회 상황과 연계해 대통령과 약속된 일정을 취소한 점은 유감"이라고 했다.
적어도 한동안 청와대 여야 대표 회담은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야가 극단적인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협치와 민생 협력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청와대 회담이 되레 정국을 꽁꽁 얼어붙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
leejc@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