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지난해 8년 만에 최악의 연간 낙폭을 기록했던 달러화가 올해도 여전히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8일(현지시각) 야후 파이낸스는 백악관이 '강달러'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투자자들은 이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지난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미국은 항상 강달러 정책을 유지해왔다"며 "강달러 정책이란 올바른 경제 기초체력을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건전한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자금은 자연스럽게 유입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최근 단기 반등에도 불구하고 달러지수는 연초 대비 약 1% 하락한 상태다. 이는 지난해 기록한 9% 하락에 이은 추가 약세로, 달러의 회복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됐음을 시사한다.
골드만삭스 외환 전략가들은 최근 보고서에서 "정책 불확실성이 일시적 충격을 넘어 지속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며 "달러가 이미 잃은 수준을 되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연초 투자자들이 기대했던 경기 사이클을 지지하는 정책 환경은 연쇄적인 관세 위협으로 무너졌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관세를 처음 발표한 직후, 글로벌 안전자산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달러는 며칠 만에 5% 넘게 급락했다. 거의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달러는 이 손실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 달러 패권 흔드는 정책 불확실성… '분산 거래' 재점화
달러는 수십 년간 세계 기축통화로 기능하며, 미국이 누려온 특권적 지위를 상징해 왔다. 또 위기 국면마다 달러와 달러 표시 자산은 투자자들에게 최후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맥쿼리은행의 글로벌·외환 전략가 티에리 위즈만은 "달러의 지위는 미국이 안보 보장자이자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수호자로서 수행해 온 역할에 기반해 있다"며 "지난 1년간의 사건들은 달러에서 벗어난 자산 재배분과 대안 탐색의 씨앗을 키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후임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가 이끌 연준 체제하에서의 통화정책 변화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통화정책 매파로 알려진 워시의 지명 소식에도 달러 반등은 제한적이었다. 이는 새 연준이 공격적인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시장의 해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NBC뉴스 인터뷰에서 "워시가 금리 인상을 원했다면 연준 의장으로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현재 금리는 지나치게 높고, 연준이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밝혔다.
달러는 여전히 국제 금융 시스템의 중심축이다. 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와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은 유로화, 스위스프랑, 금 등으로 헤지 수단을 분산시키고 있다.
특히 이러한 불확실성의 상당 부분이 미 행정부 정책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위즈만은 "달러 분산 투자 거래는 중·장기적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지정학적 변화와 미국 정책 불확실성이 촉발하는 달러 약세 국면은 통상 1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물자산 강세도 달러 약세 흐름을 반영하는데, 금은 2025년 한 해 동안 60% 넘게 급등했으며, 은·백금 등 귀금속과 구리·철강 등 산업 금속 역시 강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삭소은행의 올레 한센은 "실물자산 수요 재점화의 핵심 촉매는 달러 약세"라며 "미국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이미 취약한 달러 환경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로화, 파운드화, 스위스프랑은 물론 브라질 헤알화, 멕시코 페소화 등 신흥국 통화도 최근 달러 대비 강세를 보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이를 즉각적인 달러 가치 훼손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면서도, 단순한 경기 순환을 넘어선 초기 구조적 변화의 신호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 연준 국제금융 담당 국장이었던 스티븐 케이민은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현재로서는 달러를 대체할 글로벌 통화는 없다"면서도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달러 지배력 약화의 세계가 이제는 중·장기적으로 충분히 그려질 수 있는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