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조이고 쌓는 아시아
"비축이 비축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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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전쟁] ①쌓아야 산다…비축의 논리가 재편하는 원자재 시장>에서 이어짐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안보를 내세운 각국의 원자재 비축 논리는 식량으로도 번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발 전쟁과 미중 무역분쟁으로 곡물 교역로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각국이 자국 곡간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각국의 식량 비축 경쟁은 원자재보다 노골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대체재가 많지 않고 생존과 직결된 만큼 비축과 이를 위한 보호 조치는 공격적으로 내려진다. 한 나라의 조치가 다른 곳의 조치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은 빠르게 전개될 조짐을 보인다.
◆곡간을 다시 짓는 북유럽
연쇄의 첫 고리를 걸고 있는 곳은 북유럽 국가들이다.스웨덴은 올해 예산에 5억7500만크로나(약 6300만달러)를 배정해 이른바 '총력방위(total defence)' 전략의 일환으로 식량 비축 재건에 나섰다. 스웨덴 농업위원회에 따르면 1950년 이후 70여년 만에 최대 규모다.
스웨덴 농업위원회의 사란다 다카 비축사업 책임자는 "1995년 EU에 가입한 뒤 '유럽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 따라 2001년에는 냉전기 비축 시스템을 완전히 해체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다시 짓고 있다"고 했다. 스웨덴의 비축 대상은 곡물에 그치지 않는다. 종자와 비료까지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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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움직임은 주변국에서도 확인된다. 노르웨이는 2024년부터 냉전 이후 처음으로 비상 비축을 재건 작업을 시작했고 핀란드는 비상 곡물 보유량을 기존 6개월분에서 8.5개월분으로 확대 중이다. 독일은 기존 연간 2500만유로·10만톤 규모의 비축에 즉석식품을 추가하는 재검토에 들어갔다.
HSBC의 프레데릭 노이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스칸디나비아(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 지역) 국가들은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의 기압계"라며 "이 나라들이 식량 비축을 재건하고 있다는 것은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북유럽 국가들이 30년 만에 곡간을 다시 짓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WTO(세계무역기구) 체제는 '지역적 식량 압박이 있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사면 된다'는 신뢰를 형성했다. 하지만 그 신뢰를 세 차례의 충격이 무너뜨렸다.
첫째 충격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공급망의 취약성이 노출된 것이고 둘째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세계 밀 수출의 9%, 옥수수의 12%를 공급하던 교역로가 봉쇄됐다. 셋째는 미·중 무역전쟁이다. 무역전쟁에서 농산물이 보복 관세의 수단으로 쓰이는 등 관련 교역 자체가 정치화됐다.
◆더욱 조이는 아시아
북유럽이 안보 차원에서 비축을 재건하고 있다면 아시아에서는 안보와 함께 경제·정치적 관리 수단으로서 비축을 확대하고 있다. 규모도 훨씬 크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이다. CSIS(국제전략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쌀 비축의 약 60%, 밀의 51%, 옥수수의 69%를 보유 중이다. 쌀·밀 비축량만으로 전 국민을 1년 이상 먹일 수 있는 물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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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막대한 물량을 쥐고도 비축 예산을 되레 끌어올렸다. 중국의 작년 비축 예산은 전년 대비 6% 증가한 약 1317억위안(약 181억달러)였다. 같은 해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은 미국산 밀·옥수수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대두 업체의 수입 허가도 취소했는데 최대 공급처를 차단하고도 공급 차질을 피해갈 수 있었다.
인도는 수출 통제라는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국 물량을 틀어쥐고 쌓는다. 인도는 작년 5월부터 파보일드 쌀과 도정미에 20%의 수출세를 부과했다. 2022년 밀 수출 금지, 같은 해 쇄미 수출 금지, 2023년 비바스마티 백미 수출 금지, 2024년 10월 일부 해제, 그리고 작년의 재규제까지 인도의 수출 통제는 열고 닫기를 반복한다.
현재 인도가 보유한 곡물 비축량은 역사상 최대 규모다. 작년 12월 기준 인도 정부의 쌀 비축량은 전년보다 12% 늘어난 약 5800만톤에 달했다. 인도식량공사가 이 곡물을 조달·관리하면서 국내 가격이 오르면 비축을 방출하고 글로벌 시장이 경색되면 수출을 제한하는데 이런 형태가 반복되면서 주변 수입국의 비축을 유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는 국가물류청(Bulog)을 통해 작년 9월 기준 쌀 비축량을 약 420만톤으로 1년 전의 거의 두 배까지 늘렸다. 1967년 관련 기관 설립 이래 최대 규모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비축용 창고 100개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쌓을수록 좁아진다
농산물 비축은 경제 논리만 놓고 보면 비합리적이다. 세계 농업이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고 비축을 유지하는 비용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비축은 늘고 있다. 핀란드 국가비상공급청의 미카 일로매키 대비전문관은 "경제학자라면 비합리적으로도 볼 수 있지만 모든 나라에는 국민을 먹여야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국제미작연구소(IRRI)의 알리셔 미르자바예프 박사에 따르면 중국 규모의 곡물 비축을 유지하는 데 매입·취급·저장을 합쳐 연간 약 20억달러가 투입된다고 한다. 또 장기 보관 시 품질이 떨어져 쓸모를 잃을 위험도 있다. 중국은 2008~2016년 쌓은 대규모 옥수수 비축분을 결국 식용으로 쓰지 못하고 에탄올과 산업용으로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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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의 영향은 가격으로 전이된다. 2007~2008년 세계 곡물 가격 폭등이 이 구조의 위험을 보여준 선례다. 당시 세계 작황은 양호했지만 수출 금지와 비축 확대가 겹치면서 쌀 가격의 경우 40% 뛰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같은 패턴이 되풀이됐다.
비축 경쟁이 지속되면 곡물 가격 결정의 메커니즘은 작황이라는 전통 변수와 괴리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비축이 확대되면 생산량 중 시장에 나오는 물량 자체가 줄기 때문에 작황이 아무리 좋아도 유통량 기준으로는 빠듯해진다. 2007~2008년 당시 세계 3대 곡물(쌀·밀·옥수수)의 소비량 대비 기말재고 비율은 20%대까지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현재 곡물시장에서는 수급 압력이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OECD(국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주요 곡물에 대한 수출 제한 건수는 2024년 7월 2007년 추적 개시 이래 최고치를 찍은 뒤 작년 6월까지 약 50% 줄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식량가격지수도 지난해 12월 124.3로 2022년 3월 사상 최고치 대비 22% 낮다.
하지만 지표의 안정이 비축 경쟁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아니다. 당장 가격이 내려도 비축을 줄이겠다는 나라는 관찰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유가 있을 때 더 쌓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HSBC의 노이만 이코노미스트는 "몇몇 경제국이 식량 보호주의의 길에 들어서면 나머지 모두가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bernard02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