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re Deco' 타이틀로 내년 2월 15일까지
회화 드로잉 판화 등 대형작품 중심 45점 공개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동서를 막론하고 여성에게 덧씌워진 '여성으로써의 아름다음'을 비판하며 쇼킹할 정도로 전복적인 그림을 그려온 작가 장파(B.1981)가 국제갤러리 K1, K2에서 개인전을 연다. 지난 9일 막을 올려 2026년 2월 15일까지 이어지는 장파의 대규모 작품전은 워낙 논쟁적인 작품들이 일거에 쏟아져나와 이슈와 담론이 없이 조용히 저물어가던 연말 미술계에 폭탄을 투하한 듯 반응이 요란하다.

국내를 리딩하는 메이저 화랑인 국제갤러리가 왜 이렇게 끔찍한 작가를 두개 관에 걸쳐 전시를 여느냐는 질타에서부터 그로테스크한 작업을 통해 이름을 얻고자 하는 '노골적인 관종 작가'라는 비판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정작 작가인 장파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다. 공격과 질타를 피해가지 않되, 나는 내 식의 작업을 계속 이어가면서 이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입장이다.
국제갤러리는 여성적 그로테스크와 역사적으로 타자화된 감각들을 10여년 넘게 탐구하며 도발적인 작업을 이어온 장파의 개인전 'Gore Deco'를 개막했다. 장파는 국제갤러리 두개 관에 대작 중심으로 무려 45점의 작품을 쏟아내 이번 전시를 위해 칼을 갈다시피 했음을 보여준다.
장파(본명은 아니고 작가명이다)는 회화와 글을 통해 '그림'과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된 개념을 비판해온 작가다. 선배 작가인 이불(b.1964)이 '여전사'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데뷔초 파격적이다 못해 도발적인 퍼포먼스 작업을 구가했다면 장파는 그보다 더욱 수위가 센 회화들로 잠잠한 한국 미술계를 요동치게 하고 있다.
장파는 남성 중심의 작금의 시각언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곤 여성주의적 주체성을 회화적 어법으로 확장하며, 여성의 신체및 감각을 주체적 형상으로 재구성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국제갤러리의 그룹전과 아트페어 등을 통해 간간이 작품을 선보이긴 했으나 본격적인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인데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여성 성기라든가 유방, 인체의 내장, 해골 등이 핏빛이라고 할 수 있는 선홍색 위에 폭발하듯 표현되거나 아수자랑처럼 넘실댄다. 파격이자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전시 타이틀은 동명인 회화 연작 'Gore Deco'를 차용했다. 작가는 회화(유화가 대부분이다)를 중심으로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벽화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작심하듯 내놓았다.

장파가 내세운 타이틀 'Gore(뿔로 들이받다, 또는 선혈) Deco'는 양가적 의미를 품은 제목이다. 'Gore'는 사전적 의미와 함께 여성, 퀴어, 소수자 등 중심부에서 배제된 주체들의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상징적 폭력을 가리킨다. 'Deco'는 하찮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온 장식성과 그에 얽힌 미적·사회적 질서를 상징한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같지만 두가지 단어가 합쳐지면서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신체와 정체성이 폭력적 구조에 놓이게 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동시에, '장식'이라는 개념이 내포한 위계적 함의에도 주목한다. 작가는 "전통적 여성 이미지를 재맥락화하고, 유머와 비틀기를 활용해 기존의 시선을 전복하기 위해 그같은 제목과 명제를 달았다"고 밝혔다.
결국 서로 생경한 두개의 감각을 병치함으로써 △신체와 장식 △숭고와 혐오 △위계와 향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균열을 시각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장파는 관람객들이 회화적 전통 자체를 해체하고 부정하고 냉소하는 것에 머물기 보다는 기존 질서의 편협함을 감각적으로 수용하고 회화적 표현의 확장된 경계와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을 목도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같은 조어를 만들었다. 'Gore'와 'Deco', 두 요소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조우하는 현장이 K1과 K2 전시장 곳곳에서 발현된다.

K1 1층 메인 전시장에 들어서면 십자가 형태의 대형 캔버스와 삼각형 캔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성삼위일체와 원근법의 역사 이래 인간의 이성을 상징해온 삼각형은 역삼각 형태로 걸려있다. 영적 영역을 상징하는 십자가는 끔찍한 내장 이미지로 뒤덮인채 '여성화'되어 있다.
이로써 전시장은 핏빛 내장이 걸린 교회에 들어선 듯 기괴하다. 작가는 기존 질서를 개념적으로 해체할 뿐 아니라, 고대 건축 양식의 프리즈(frieze)를 연상시키는 실크스크린 기법의 벽화를 통해 과거 여성 재현의 이미지사(史)를 바라보는비판적 관점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여성의 몸과 정체성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사회적 폭력구조에 포획되는 예시들을 컬렉션해 이를 장식적인 틀 안에 열거한 것.
이같은 시도는 다른 회화에서도 어렵지않게 발견된다. 또 내장의 표면이나 해골 표면에 아로새겨진 '타투'라는 장식적 문양들은 회화의 재료인 물감을 한순간 육화하고, 회화 감상의 전통적 관행을 교란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된 전략이다.

K1 2층 전시장에서 장파는 해골 도상의 그로테스크함이 다채로운 색감과 충돌하며 자아내는 기이함을 선보여 하위 범주로 자리매김해온 장식의 역할을 뒤집고 있다. 캔버스 중앙의 해골 형상 보다 형형색색 화려한 색감의 배경이 더욱 부각된 그림은 회화에서 전통적으로 통용돼온 '형상과 배경의 위계'를 가차없이 무력화시킨다.
장파는 넘치는 회화적 에너지를 또다른 방식으로 전개하곤 한다. 회화의 표면에 금속하드웨어, 머리카락, 거즈, 스티커 같은 믿기지 않는 재료라든가 비천한(abject) 재료들을 장식적 요소로 과감히 도입한 것. 이로써 개념화된 색채의 이상을 방해하고, 개념과 물질 사이의 경계를 마구 해체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억압된 육체의 상흔을 장식으로 치환하고, 육체적 감수성을 회복시키면서 고통을 향유의 경험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K2 전시장에서 장파는 한발 더 나아간다. 여성의 신체가 다뤄지던 기존 방식에 반기를 든 작업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역사 속 여성재현의 이미지를 필두로, 인터넷에서 발견한 동시대 여성혐오 이미지,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의 시구 등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캔버스에 전사한 뒤 파편화된 신체, 내장, 눈과 입술 같은 '구멍'의 이미지와 병치하고 있다.
이처럼 회화 본연의 순수성과 장식성 사이의 혼종을 거침없이 오버랩시키는 작가의 시도는 냉소적 유희를 불러일으킨다. 또 시각적 위계와 질서를 한순간에 붕괴시키며 비판적 층위를 형성하기도 한다. 장파에게 여성의 '몸'은 단순히 고통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그 흔적을 발판삼아 '감각적 전복'을 도모하는 주체로 재구성된다.
그의 작품 속 상처는 응시를 요구한다. 분절된 육체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과장돼 있다. 회화 속 넘실대는 고통은 정념적 진지함에 포획되기 보다, 조롱과 유희의 형식으로 뒤틀려진 모습이다. 장파에게 '검은 웃음'은 단순한 위안 혹은 해학이 이 아닌, 제도화된 미적 감수성과 윤리적 판단을 교란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장파는 그로테스크한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 중에는 내 그림이 너무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볼 수 있겠다. 인정한다"면서 "그런데 나는 내 그림 속 여성이 끔직하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로테스크함을 뛰어넘어, 누구든 끔찍하게 아름답다고 여기게 되는 경지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게 작업의 목표"라고 밝혔다.
쿠르베의 극사실적 회화 '세상의 기원' 같은 미술사 속 주요작과 이미지사를 참조하고, 여성 신체를 둘러싼 다양한 소재를 뒤집고 해체하며 작업해온 장파의 그림은 때로는 즉흥적이며 사르카즘이 섞인 유머를 동반한 저항으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종국적으로 작가가 회화를 향해 품고 있는 뚜렷하고 끈질긴 응시와 더할나위 없는 집념만은 모든 작가를 능가할 정도인 것만은 틀림없다.
국제갤러리 K1, K2 전시실을 가득 채운 그로테스크하고 파워풀한 에너지와 끔직하다 못해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작업들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전공인 미학서적은 물론 동서양 철학서를 붙들고 살다시피 하고. 끝없는 성찰과 실험을 거침없이 전개하는 장파의 향후 행로가 벌써 궁금해진다.

작가 장파(b. 1981)는 누구?= 2006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와 미학과를 졸업하고, 2017년 동대학원 서양화과를 석사 졸업했다. 주요 개인전으로 인천아트플랫폼(2020), 두산갤러리 뉴욕(2017), 소마미술관(2016), OCI미술관(2011) 등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2024),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24), 송은(2023), 아르코미술관(2023), 서울시립미술관(2015)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현재 서울에서 거주 및 작업 중이다.
art2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