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국회·정당

속보

더보기

[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하) 법정에 갇힌 민주주의를 살리려면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상편>에 이어

제도를 세우는 말, 무너뜨리는 말

그러나 정치는 본디 말로 문제를 푸는 예술이다. 영국 웨스트민스터의 전통은 그 어떤 순간에도 토론과 설득의 형식을 유지한다. 격렬한 야유 속에서도 의장은 "Order"를 외치고, 의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문다. 의원들은 상대를 향한 인신공격 대신 논리와 유머로 승부한다. '내각을 저격할 수는 있어도 예절을 저버려선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오랜 금언이다.

영국 하원, 웨스트민스터의 회의장에서는 말이 곧 정치이며, 말의 절제가 곧 권위다. 전통적으로 상대 의원을 가리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존경하는 ○○ 지역 의원(the honourable member for ○○)"이라 호명한다. 이는 인신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자, 품격 있는 토론 문화의 기반이다.

예를 들어,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야당의 반대와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나는 반대의원들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그 걱정을 잘못된 해법으로 풀고 있을 뿐이다"라며 날카로운 비판을 품격 있게 포장했다. 이는 상대의 진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정책적 입장을 분명히 하는 모범적 태도였다.

또한, 2019년 브렉시트 토론 중 노동당의 힐러리 벤 의원은 정부안을 비판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의 제안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에 우리는 정직하고 차분하게 답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쟁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어조는 비판을 넘어서 설득을 시도하는 '책임 있는 말의 사용'의 한 전형이다.

웨스트민스터에서는 감정이 격해질 때일수록, 말은 더 명료해지고 어법은 더 정제된다. '내각을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예절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격언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정치를 정치답게 만드는 핵심 원리다.

독일 연방하원에서는 장관 한 명이 하루 종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질문이 쏟아지고, 스웨덴 리크스다겐에서는 질문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흐르면 의장이 나서 토론의 수위를 조정한다. 미국 의회에서는 수백 페이지의 법안을 놓고 밤새 '필리버스터'가 이어지지만, 그 속에서도 정책의 정합성과 헌법 정신이 중심축으로 작동한다.

이들 정치 무대는 뜨거운 논쟁이 있는 곳이지, 말의 전쟁터는 아니다. 그곳의 말은 제도를 세우는 도구이며, 시민의 신뢰를 쌓는 벽돌이다. 반면, 한국의 국회는 '정쟁형 극장'에 가깝다. 고성은 웨스트민스터의 야유보다 거칠고, 손가락질은 독일 하원의 질문보다 더 직접적이며, 자료 대신 막말이 오가고, 숫자보다 낙인이 앞선다. 웨스트민스터에서는 언어로 품격을 다지고, 우리는 언어로 체면을 깬다. 스웨덴에서는 '정중한 긴장'이 흐르고, 한국에서는 '무례한 긴박감'이 휩쓴다.

정권 탈환의 언어, 전투가 된 정치

정치는 설득의 예술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인의 말은 설득이 아니라 소란이고, 설명이 아니라 선전이며, 연대가 아니라 증오의 호출이다. 오로지 정권 탈환이라는 전쟁의 언어가 정치인의 말을 지배하고, 모든 발언은 협치의 제안이 아니라 전투의 선언으로 기능한다. 상대를 동료가 아닌 적국의 장수로 간주하는 태도 속에서, 말은 논리보다 적개심으로, 합의보다 격돌로 흐른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에서처럼 말은 잘 사용하면 제도와 법을 튼튼히 하는 토대가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말은 곧 헌법을 망가뜨리고 국헌질서를 파괴하는 도구가 된다. 말이 세우는 나라는 민주주의이고, 말이 무너뜨리는 나라는 무정부다. 우리는 이제 말의 품격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치의 말은 국민을 향한 것인가, 정적을 겨눈 것인가. 설득이 사라진 정치는 공포를 부르고, 혐오가 채운 언어는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다시, 말로 시작해야 한다

정치는 말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숨기지 않는 말, 진솔한 말, 거짓 없는 말, 상대를 인정하는 말, 때로는 스스로의 과오를 고백하는 말이어야 한다. 후려치고 끌어내리는 말이 아니라, 손을 내밀고 함께 걷는 말이어야 한다. 말은 흩어지는 바람이 아니라 머무는 숨이어야 한다. 말이 살면, 정치는 살고, 정치는 살아야 국민의 삶도 숨을 쉴 수 있다.

말로 설득하는 정치, 선택의 품격

대통령 선거는 국민 앞에 선택을 강요하는 절차가 아니다. 선택을 위한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선택은 단지 목소리가 큰 이들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책임을 함께 나누고, 어떤 말로 미래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물어야 한다. 국민은 격을 되찾은 정치를 애타게 원한다.

대통령 선거는 단지 한 사람을 선택하는 절차가 아니라,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선택이다. 그것은 오늘의 만족이 아니라 내일의 비전을 향한 응답이며, 현재의 지지를 넘어 미래 세대—우리 자녀들의 삶을 위한 책임 있는 고백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더욱 합당한 것인지 깊이 듣고, 세계를 보고, 역사를 기억하며, 스스로 묻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법원, 홍콩ELS 불완전판매 인정 안 해 [서울=뉴스핌] 정광연·박민경 기자 = 2조원 규모의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과징금을 둘러싼 금융당국의 2차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를 앞두고, 민사소송에서는 은행 등 판매사가 잇따라 승소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전체 투자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재투자자'에 대해서도 은행 책임을 폭넓게 인정한 금융당국과 달리, 법원은 원금 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투자가 이뤄졌다고 판단하면서 투자자 책임을 명확히 했다. 향후 과징금 부과를 둘러싼 법적 공방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8일 뉴스핌이 확보한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민사부는 지난 16일 홍콩ELS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인 투자자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해당 소송은 투자자가 은행을 상대로 1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사건으로, 개인 소송으로는 청구 금액이 크고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를 인정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2026.01.28 peterbreak22@newspim.com 원고 측은 ▲ 은행이 해당 상품의 원금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 ▲은행이 자율배상을 진행한 것은 법적 과실(불완전판매)을 인정한 것이라는 점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위험투자(원금손실)를 원치 않은 고객에서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권유했다는 점 등을 주장하며 은행측의 손실 배상을 요구했다. 법원은 해당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투자자의 과거 투자 이력이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원고는 이 사건 상품 가입 이전까지 12차례 ELS 상품에 가입했고, 주가연계펀드(ELF)에도 2차례 투자한 경험이 있다"며 "원금 손실 가능성을 알지 못했고 은행이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이 주목받는 이유는 홍콩ELS 가입자 대부분이 재투자자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과 증권사를 통해 홍콩ELS에 투자한 전체 고객 중 최초 투자자는 8.6%에 불과하며, 나머지 90.8%는 과거 ELS 관련 상품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 고객이다. 은행권은 그동안 ELS 상품의 구조상 과거 투자 경험이 있다면 원금 손실 가능성을 몰랐다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고 주장해 왔다. 주가 연계 구조를 이해하고 수익과 손실을 경험한 뒤 재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2026.01.28 peterbreak22@newspim.com 반면 금융감독원은 과거 투자 경험이 있는 고객에게도 원금 손실의 30~65%를 자율배상하도록 하고, 투자 경험이 많을수록 2~10%포인트를 차감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은행권이 자율배상안에 강한 불만을 제기한 배경이다. 법원의 판단은 이번 판결에 그치지 않고 유사한 ELS 관련 분쟁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7민사부는 지난해 9월 금융사와 투자자 간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투자자가 여러 차례 ELS 상품에 가입했고, 스스로 하락 한계가격(낙인 배리어) 등을 언급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금융사가 투자자를 기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투자자 패소 판결을 내렸다. 같은 해 11월 ELS 특정금전신탁 투자금 반환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원고가 2016년 이후 동일·유사한 구조와 위험 등급의 ELS 상품에 19차례 가입한 이력이 있다"며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오는 29일 열리는 2차 제재심을 앞두고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농협은행 등 은행권은 2조원에 달하는 과징금 규모를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행법상 과징금은 최대 75%까지 감면이 가능하며, 은행들은 이미 1조3000억원 규모의 자율배상을 진행했다. 과징금이 확정될 경우 재무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만큼, 기대만큼 감면이 이뤄지지 않으면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잇따른 법원 판결이 제재심은 물론, 이후 금융당국과 은행 간 법적 공방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제재심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며 "법원 판결 역시 최종심은 아니기 때문에 참고 자료로 보고 있다. 과징금 감면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peterbreak22@newspim.compmk1459@newspim.com 2026-01-28 11:18
사진
트럼프, 한국산 車 상호관세 다시 25%로 [인천=뉴스핌] 류기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국회의 입법 절차 지연을 이유로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다시 인상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27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2026.01.27 ryuchan0925@newspim.com   2026-01-27 13:19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