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이달 말 TC본더 추가 발주
한화세미텍 발주에 한미반도체 초강수
마이크론 확대, 삼성 거래 복원 가능성 주목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핵심 제조장비인 TC본더(열압착장비)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랜 기간 협력해 온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 관계에도 균열이 생겼으며, 후발주자인 한화세미텍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면서 업계 판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 AI 수요 급증에 TC본더 시장 '폭풍 성장'
29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조만간 TC본더 추가 발주를 계획하고 있다. 이번 발주 규모는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사는 기존 단독 공급업체였던 한미반도체에 더해 최근 SK하이닉스와 공급 계약을 맺은 한화세미텍까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TC본더는 D램 칩을 수직으로 적층할 때 열과 압력을 가해 접합하는 장비로, 특히 고성능 HBM 생산에 필수적이다. 때문에 HBM과 동시에 폭발적인 성장세를 지닌 시장이다. JP모건에 따르면 TC본더 시장은 2024년 약 4억6100만달러(약 6500억원)에서 2027년 15억달러(약 2조1000억원)로 3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SK하이닉스가 최근 AI 수요 확대에 대응해 HBM 생산 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만큼, TC본더 확보는 절박한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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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TC본더 발주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 [사진=AI 제공] |
◆ 한미반도체, 독점 깨지자 가격 인상·CS 유료화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는 지난 2017년부터 HBM용 TC본더를 공동 개발하며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왔고,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독점 공급하면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SK하이닉스가 리스크 분산을 위한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한화세미텍에 420억원 규모의 TC본더 공급 계약을 발주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한미반도체는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TC본더 가격을 한화세미텍 제품 수준으로 25~30% 인상했으며, 무상 제공하던 유지보수(CS) 서비스도 유상으로 전환했다. 기존 SK하이닉스 생산라인에 상주하던 한미반도체 인력도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법적 분쟁 중인 한화세미텍을 신규 공급사로 선택한 점도 갈등을 심화시켰다. 한미반도체는 2021년 한화세미텍으로 이직한 전 직원을 상대로 부정경쟁행위금지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승소했다.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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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SK하이닉스 이천 본사의 모습. kji01@newspim.com |
◆ 협력 기조 유지하겠다는 SK하이닉스…발주 배분이 관건
SK하이닉스는 한미반도체, 한화세미텍 모두와 협력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한미반도체의 초강수로 협상 구도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이달 말 TC본더 발주를 어떤 방식으로 배분하느냐에 따라 향후 관계의 향배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와의 관계 변화에 대비해 해외 고객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론과의 협력을 확대하면서 SK하이닉스 이탈에 대비하고 있으며, 실제 매출 비중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한미반도체의 올 1분기 매출 가운데 마이크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90%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한미반도체와 삼성전자의 거래 재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2011년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와 특허 침해 소송을 벌인 이후 약 10년간 삼성전자와 거래가 끊겼지만 최근 삼성전기 등 일부 삼성 계열사에 장비를 공급하면서 관계 복원의 실마리를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kji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