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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블루스 리듬에 발효 엮으며 '뜻대로 안되는 삶'을 위무하다

기사입력 : 2025년04월27일 23:57

최종수정 : 2025년04월28일 12:02

국제갤러리 부산점서 17년 만의 개인전
극장처럼 꾸민 전시장에 거대서사-개인서사가
블루스음악에 메주는 솔솔 익고…7월20일까지

[서울=뉴스핌] 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우리 영화판에 봉준호(b.1969)가 있다면 미술판에는 작가 정연두(b.1969)가 있다. '기생충'과 '마더'를 만든 봉준호 감독처럼 작가 정연두 또한 우리의 평범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삶에 렌즈를 들이댄다. 동갑내기인 두 예술가 모두 현대인의 일상에서 작업의 소재를 발견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에 주목하며 그로부터 파생되는 예기치 않은 결을 탐구한다.

정연두는 특히 세간에서 별로 주목하지 않는 이들과 만나 대화하고, 협업하는 관계적 방법론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예술과 삶, 예술의 주체와 객체 사이를 넘나드는 '정연두식 문지방'을 창조해낸다. 이번에도 그는 감춰지거나 후미진 구석의 인간 군상들의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간절한 상황'에 촛점을 맞추고 영상과 사진, 조각과 회화 등 다양한 작품을 쏟아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국제갤러리 부산점의 정연두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의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2025.04.27 art29@newspim.com

작가 정연두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지난 4월 25일 개인전을 개막했다. 오는 7월 20일까지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정연두의 개인전은 국제갤러리에서 17년 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정연두는 영상, 사진,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면서 이질적인 대상을 접합하고, 시대의 틈을 드러내며 '새로운 감각의 짜임'을 만들어왔다.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블루스 리듬에 발효의 순간을 교차하면서 뜻대로 되지않는 현실을 살아내는 이들의 소망을 독특하게 풀어내고 있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 발을 들이면 잔잔한 블루스 음악들이 귀에 들어온다. 마치 공연장에 들어선 느낌이다. 블루스 음악의 각 파트를 연주하는 다섯 음악가들의 대형 스크린이 어두운 실내에서 빛을 발한다. 이들은 각각의 사연을 품은 느슨한 합주를 쉼없이 이어간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블루스 음악이 잔잔히 흐르며 마치 공연장에 온 듯한 국제갤러리 부산점의 정연두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 전경.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2025.04.27 art29@newspim.com

블루스 연주자들은 저마다 구획된 공간에서, 맞은 편의 영상과 사진, 조각에 응답하며 음악을 들려준다. 근래들어 시각 이미지와 음악, 목소리, 억양 등 청각적 요소의 병치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가시화되지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삶의 역동과 생기를 음악, 특히 블루스를 통해 부드럽게 제시한다. 19세기 중엽 미국 남부의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고단한 현실을 특유의 리듬과 가사로 풀어낸 블루스음악에서 그는 설명되지 않는 상황과 피치 못할 난관을 통과하는 자조적이지만 유쾌한 상상의 방식을 발견했다.

음악의 울림을 통해 표현되는 삶의 담담한 태도에 공감한 정연두는 이번에 작곡가 레이 설(Ray Soul)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블루스의 12마디 구조와 악기편성을 차용한 '피치 못할 블루스'(2025)를 만들었다. 그는 다른 장소, 다른 배경의 연주자들에게 별도의 작곡 없이 67 BPM(보통 음악은 87 BPM이다)의 느린 속도와 코드만을 제공해 연주를 요청한 뒤, 개별 곡조의 가닥을 자르고 쌓아 이를 하나의 협연으로 조율했다. 그리하여 생을 살아내는 개개인의 리드미컬한 몸짓은 전시장에서 콘트라베이스, 보컬, 색소폰, 오르간, 드럼 소리로 변환돼 한 편의 '비동시적인 협주'로 공명하기에 이른다. 따로 따로이나 하나의 하모니처럼 어우러지는 음악이 된 것.

작가는 각 연주자들이 주변과 리듬을 이어받으며 다섯 개의 개별적인 대화와 조우하도록 했다. 전시장에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손가락에 맞추어 빛을 발하는 항아리들이 나왔다. 유희적인 블루스 음악이 그 내면에 난처한 사연들을 품고 있고, 아름다운 악기 소리가 현과 마찰하는 손가락 끝을 통해 퍼져나가는 것처럼, 만화경 효과를 통해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는 항아리 속 작품 '아픈 손가락'(2025)은 음악의 이면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정연두 '피치 못할 사정들' 스틸 이미지, 2025. 4K digital video, color, signage, framed 42x73x6cm. 7min.10sec.(looped).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2025.04.27 art29@newspim.com

그 옆에는 푸근한 목소리의 보컬리스트가 자신의 사연(러시아어로 적혔다)을 들고 있는 고려인들의 몸짓에 응답하고 있다. 이들의 페이소스가 담긴 이야기를 연주자는 느릿느릿 노래한다. 이주민들의 뒤바뀐 시공간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에게 시선을 돌려 그들이 겪어온 애달픈 삶의 편린을 들려준다.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구소련 지역으로 강제 이주돼 살아온 고려인 후세대들의 인터뷰는 가사가 되어 블루스 멜로디 속에서 반복적으로 불린다. 이들의 사연은 인도네시아에서 유래하는 바틱(batik) 천 위에 러시아어로 새겨져 벽에 내걸렸다. 녹인 벌꿀집으로 기록된 디아스포라들의 이야기는 치자, 강황, 자초 등 약초로도 쓰이는 천연 염색제를 통해 천 위에 꽃봉오리처럼 아름답게 물들여졌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정연두(b.1969) '바실러스 초상' 2025 Color inkjet pigment print, framed, 63x51x4cm(fram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2025.04.27 art29@newspim.com

블루스 음악과 더불어 전시장에는 다채로운 발효의 이미지들이 펼쳐져 있다. 몇해 전부터 막걸리를 손수 담아온 작가는 쌀이 누룩의 균과 만나 이뤄지는 발효의 섭리가 요리의 영역이기 보다 신의 영역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그 신비한 세계의 리듬을 블루스 음악과 연결시켰다. 막걸리 기포가 터지는 박자에 맞춰 드럼이 연주되고, 사워도우가 되기 위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밀가루 반죽은 연주자의 색소폰 소리와 함께 흐른다.

연주자들 영상과 나란히 전시되는 '바실러스 초상'(2025)은 메주를 만들 때 콩이 이국적인 바실러스균과 만나 발효되어 피어오른 하얀 거품을 포착한 사진이다. 뽀얀 거품은 마치 인간의 얼굴 형상을 보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발효의 흔적에서 우리와 닮은 모습을 찾아낸 작가는 '다름과 닮음'이 공존하는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를 친근하고도 재기 넘치게 전환시키고 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정연두(b.1969) '은하수' 2025, Color inkjet pigment print, framed. 94x141x5cm (fram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2025.04.27 art29@newspim.com

정연두는 이번에 밀가루로 우주의 은하수도 만들었다. 미생물의 신비로운 작용이 우주의 창조로도 확장된 것이다. 오르간과 피아노가 연주되는 동안 퍼커셔니스트는 음악에 맞춰 밀가루를 흩뿌리며 우주를 연상시키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이 창조의 몸짓 곁에는 은하와 성운처럼 보이는 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이는 옆에 자리한 영상이 설명하듯) 빵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밀가루를 검은 대리석 위에 '탁'하고 털어내어 만든 이미지이다.

축수하듯 두 손을 비비고 박수치며 광활한 우주를 만들었건만 이를 이룬 물질은 알고 보면 밀가루라니 어이가 없기도 하다. 가벼움과 무거움, 장난기와 엄숙함을 뒤섞는 정연두 특유의 탄력있는 연출이 전시 전체를 밀고 당기며 균형을 잡고 있다.

블루스와 발효라는 뚱딴지 같은 요소를 연결한 것에 대해 작가는 "두가지 모두 치유를 품고 있어서"라고 답했다. 블루스 음악이 흑인들의 신산스런 삶을 위무하듯, 발효 또한 느릿느릿한 그 변환이 생명을 주니 고개가 끄떡여진다. 결국 정연두는 세계의 불가해한 작동 앞에서 거대한 서사와 미세한 서사를 병치하고 유머와 염원을 뒤섞으며 삶의 신비를 향한 애정어린 태도를 보여준다. 우연과 운명, 불가항력적인 삶의 희비극을 통과하는 이들의 곡진한 리듬은 전시라는 무대 위, 서로 응답하고 조우하는 음악과 이미지의 관계 속에서 한 편의 진솔한 하모니를 들려주고 있다. 전시는 7월 20일까지. 무료관람

[서울=뉴스핌]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오는 7월 20일까지 개인전을 갖는 작가 정연두. [사진=이영란 미술전문기자] 2025.04.27 art29@newspim.com

◆정연두 작가는?=서울대학교 조소과와 영국 골드스미스칼리지(석사)를 졸업하고, 퍼포먼스에 기반한 사진, 영상, 설치 등 미디어 작업에 주력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2007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전시를 가졌고, 국립현대미술관(2023), 울산시립미술관(2022), 미국 웨스트팜비치 노턴미술관(2017), 아트선재센터(2017), 프랑스 비트리 쉬르 센 맥발 미술관(MAC VAL)(2015), 일본 아트타워 미토(2014), 플라토미술관(2014), 중국 상하이 K11아트스페이스(2013)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2025년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2024년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전, 2021년 광주비엔날레,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등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도쿄도현대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시애틀미술관, 맥발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내년에 미국 매사추세츠의 피바디엑세스 뮤지엄에서 개인전 일정이 잡혀 있다.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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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세협상, 명백한 중국의 승리"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미중 관세협상에 대해 중국내에서는 미국에 대항해 '승리'를 거뒀다며 고무된 분위기다. 중국의 매체들은 13일 일제히 미중관세협상 결과를 보도하고 나섰다. 관영매체들은 '승리했다'는 표현을 자제하고 있지만, 협상이 성공적이었다는 논조를 유지했다. 중국의 SNS상에서는 미국에 대항해 중국이 승리했다는 반응 일색이다.  12일 미중 양국의 협상단은 스위스 제네바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은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율을 145%에서 30%로, 중국은 미국에 대한 관세율을 125%에서 10%로 낮추기로 했다.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추가적인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5년전인 2020년 1월 타결됐던 미중 관세협상 결과와는 차이가 크다. 당시 중국은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 구매할 것을 약속했고, 강도 높은 지재권 보호 , 금융 서비스 시장 개방, 환율 투명성 강화 등을 보장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관세를 일부 인하했다. 하지만 이번 미중 관세협상에서는 양국이 모두 동등하게 115%의 관세를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중국의 미국산 물품 구매나 시장개방에 대한 약속은 없었다. 양보 일변도였던 5년전과 달리 이번 미중 관세협상은 공평하고 평등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매체 블룸버그는 "이번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를 얻었고, 미국은 끝내 양보했다"며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강대강 전술이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중국 매체 관찰자망은 "양국의 제네바 경제·무역 회담 공동성명 발표는 중국이 무역 전쟁에서 거둔 중대한 승리이자 중국이 투쟁을 견지한 결과"라며 "미국의 무역 괴롭힘에 맞서 항쟁할 용기가 조금도 없는 국가들과 비교하면 이번 승리의 무게가 더 무겁다"고 논평했다. 광다(光大)증권은 13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국제 무역 투쟁에서 패권을 두려워하지 않고 굳건하게 맞선 결과 단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은 가장 먼저 미국에 대등한 보복성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국내적 국제적으로 대응조치를 내놓았다"고 덧붙였다. 자오상(招商)증권은 "중국은 미국과 공평하고 평등한 협상을 진행했으며,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호평했다. 이어 "중국은 우호적인 국가들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중국 경제의 대미 의존도를 낮췄고, 기술 진보와 군사력 확충 등이 이뤄졌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같은 성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여론이 지나치게 고무되는 것을 경계하는 논설기사도 나왔다. 신화사는 '중미 경제무역 회담이 세계 경제 압박을 낮추고 신뢰를 증진시켰다'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양국의 대화 재개는 기쁜 일이지만, 양국간의 의견 차이 해소는 복잡하고 어려우며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오성홍기와 미국 성조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ys1744@newspim.com 2025-05-1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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