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라스베가스 리조트 투자 손실 관련
세방전지 'DIL' 조항 설명 없었다, 소송
법원 "설명위반 아냐, 채권채무자간 합의 구조"
미국 DIL, 선·후순위 채권자 권리 이해 필요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추진됐던 '더 드루 라스베이거스' 복합 리조트 개발 사업 무산되면서 158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은 세방전지가 국내 증권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이번 판결로 인해 손실 회수가 사실상 어려워진 가운데 이번 사건은 국내 금융사들이 미국 대형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대규모로 참여한 첫 사례 중 하나로, 향후 해외 대체투자 구조 설계와 투자자 보호 기준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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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 증권사들 "구조 설계 문제 없어…향후 리스크 관리 강화"
지난 2019년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주요 증권사들은 이번 소송과 관련해 투자 구조의 투명성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실사 기반 구조화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미래에셋증권은 약 285억원(투자 당시 환율 기준)을 직접 투자했으며, NH투자증권과 하나증권은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메자닌 상품을 주선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일부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상품을 판매했다.
22일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회사는 약 285억원을 투자했었다. 이외 실질적 피해는 없다"며 "이미 손실이 확정돼 추가적인 회수 가능성은 낮은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손실의 주된 원인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산가치 하락에 있으므로 회사가 투자자보호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한 재판부의 판단은 사실관계와 관련 법리에 비추어 합당하다고 사료된다"며 "앞으로 보다 더 엄격한 리스크 관리를 통해 우량한 투자기회를 발굴하는 데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현재 소송 진행 중인 사안으로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하나증권 관계자는 "판매한 고객사들과 사적으로 정리했다"고 전했으며, 신한투자증권 관계자 또한 "지난 2023년 상각 처리를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 '코로나19' 여파로 디폴트…후순위 투자자 전액 손실
이 프로젝트에 국내 금융사들이 적극 참여했던 배경에는 시행사인 위트코프(Witkoff) 그룹의 이력이 작용했다. 위트코프는 과거 75건의 대형 개발사업을 진행하며 단 한 건의 디폴트(채무불이행)도 발생시킨 적 없는 안정된 사업자였다.
이에 따라 당시 관련 투자 시니어메자닌은 하나증권, 신한투자증권, JB우리캐피탈, 롯데오토리스, 펀드수익자(동양, 정보통신공제조합)이 참여했다. 주니어 메자닌에는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증권USA, 현대차증권, 펀드 수익자(동양, 정몽구 재단, 정보통신공제회, MG손보)가 참여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이 프로젝트에 자기자본을 투입한 최초의 국내 증권사로 평가받았으며, 주관사로서 실사와 구조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사업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변수에 직격탄을 맞으며 중단됐다. 관광산업이 마비된 가운데 지난 2020년 5월 위트코프는 디폴트를 선언했고, 계약에 포함된 'DIL(Deed In Lieu)' 조항을 활용해 자산 소유권을 선순위 채권자에게 이전했다.
DIL은 채무자가 담보 자산을 선순위 투자자에게 넘기고, 잔여 채무를 면제받는 구조다. 이로 인해 JP모건 등 선순위 투자자는 자산을 회수한 반면, 메자닌 등 중순위 이하 투자자들은 지분 성격의 구조로 인해 사실상 전액 손실을 입었다. 국내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의 총 투자금 3000억원이 손실 처리됐으며, 이에 대한 회수 청구권조차 남지 않았다.
당시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 DIL 조항은 생소한 리스크 요인이었고, 이에 대한 고지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일부 제기됐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는 현지 계약 구조와 법률 조항까지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필수임을 이번 사례가 여실히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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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세방전지 홈페이지 |
◆ 세방전지 "DIL 설명 없었다" VS 법원 1·2심 모두 "증권사 책임 없다"
세방전지는 이 같은 손실에 대해 주관사였던 미래에셋증권을 상대로 지난 2019년 말 소송을 제기했다. 세방전지는 "DIL 조항의 존재와 위험성을 설명받지 못했다"며 "만약 해당 내용을 알았다면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래에셋증권이 당시 "사실상 상환 위험은 없다"고 설명해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며, 부당이득금 반환을 요구했다. 핵심 쟁점은 증권사의 설명의무 범위였다.
이에 대해 당시 미래에셋증권 측은 DIL 조항은 계약서상 명시돼야만 발생하는 특약이 아닌, 미국 현지법상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채무 상환 방식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며 "설명자료에는 일반적인 손실 가능성은 고지돼 있었고, 메자닌 투자 구조 특성상 투자자들도 담보가 없는 후순위 위험을 인식했어야 했다"는 입장을 법정에서 밝혔다.
세방전지는 DIL 명확히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은 1심에서 DIL 조항은 특별 약정이 없어도 채권자와 채무자 간 사후 합의로 실행될 수 있는 구조이며, 이를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세방전지가 상품 구조와 리스크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투자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증권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법원은 미래에셋증권이 이 사업에 약 275억원의 자기자본을 직접 투자했고 해당 금액 상당의 손실을 실제로 입은 점을 언급하며, "만약 투자자를 기망할 의도가 있었다면, 스스로 거액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2심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단과 주장 내용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며 세방전지의 항소를 기각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1심과 2심 모두 같은 결론이 내려진 이상, 대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어 "DIL과 같은 사후 합의 조항에 대해 설명의무를 인정한 판례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결국 법원은 코로나라는 불가항력에 기인한 투자 실패를 고의적 기망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 '세방전지·증권사' 모두 손실…향후 과제는?
세방전지는 '더 드루' 프로젝트 관련 투자금 158억원의 실질적인 회수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해당 프로젝트에 자기자본 약 275억원을 직접 투자했고, 해당 금액을 손실로 인식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외 투자 실패 사례를 넘어, 국내 금융권 전반에 투자자 보호 및 고지 기준 재정립의 계기가 되고 있다. 각 증권사는 향후 해외 PF 딜 구조 설계 시 DIL 등 리스크 요소 고지를 표준화하고, 투자자 이해를 기반으로 한 설명 체계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제는 리스크 고지를 '과하다'고 할 만큼 철저히 해야 한다"며 "단순 판매자가 아니라 투자자와 손실을 함께 진입하는 구조라면, 더욱 신중한 설계와 안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nylee5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