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대치2단지 리모델링 사실상 포기… 정족수 미달로 해산총회 무산
재건축 추진 노력에도 해산 절차 난항
조합장 "대여금 나눠 내달라" vs 조합원 "그 돈 못 내"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가 리모델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합 내홍으로 진척 없는 사업에 조합원 피로도만 높아진 모습이다. 재건축을 추진하려 해 해산 절차가 만만치 않다 보니 조합원은 물론이고 강남구청 또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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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 리모델링 조합이 개최하려던 조합 총회에 조합원 대다수가 참석하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사진=독자 제공] |
◆ 리모델링만 18년째… 조합원 '부글부글'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대치2단지는 최근 리모델링 사업을 청산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달 초 조합 총회를 열어 조합 해산과 사업비 정산을 안건으로 올리려 했으나, 정족수 미달(총조합원 1405명 중 22명 투표)로 무산됐다.
준공 33년 차의 이 단지는 2008년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했다. 최고 15층 1758가구가 최고 18층 1988가구로 탈바꿈할 예정으로, 강남권 리모델링의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용적률 174%로 사업성이 나쁘지 않지만 전용면적 33~49㎡의 소형평수로만 이뤄져 평균 대지지분이 작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선택했다.
조합은 2016년 DL이앤씨·HDC현대산업개발과 시공계약을 체결했으나 5년 후 일방적으로 이를 해지했다. 이후 두 회사는 조합을 상대로 대여금 반환의 소를 제기했고, 조합이 패소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배상금은 112억원이다.
2022년 조합은 다시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수직증축은 기존 아파트 위에 수직으로 층수를 올리는 리모델링 방식이다. 수평증축 대비 늘어나는 가구 수가 많아 일반분양 수익이 최대 15%까지 늘어나지만, 엄격한 안전 기준이 적용돼 전문 기관에 1·2차 안전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
사업은 그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수직증축 공법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내리면서 본격적으로 표류하기 시작했다. 리모델링 방식 변경과 재건축으로의 선회 사이에서 사업이 답보 상태에 처하자 시공사 컨소시엄은 시공권을 반납했다. 설상가상 지난해 강남구청은 조합 측에 해산을 권고하는 공문을 보냈다. 리모델링 조합설립일부터 3년이 지나는 날까지 사업계획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 조합은 총회 의결을 거쳐 해산 여부를 결정해야 해서다.
조합원 불만은 점점 커졌다. 사업이 지연되는 사이 공사비는 물론 배상금을 다 갚는 날까지 매년 15%씩 적용되는 지연이자가 불어나면서 갚아야 할 돈이 116억원으로 늘어서다.
◆ "대여금 나눠 내자" 주장에 조합원 뿔났다… 조합 해산은 언제쯤
현재 여론은 재건축 전환으로 기울었다. 한 조합원은 "지난해부터 규제가 완화되면서 용적률을 높일 수 있게 되자 분담금이 좀 늘어나더라도 차라리 재건축을 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현재 비상대책위원회 격의 재건축준비위원회(재준위)가 조직된 상태다.
문제는 배상금과 지연이자다. 재건축 조합을 새로 설립하려면 기존 리모델링 조합을 해산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 절차다. 현행법에 한 사업지 내 리모델링과 재건축 조합이 양립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없긴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 조합은 116억원을 1500여 명의 조합원이 약 800만원씩 나눠 내는 조건으로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합원들은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조합장 A씨가 그동안 사용한 사업비 내역을 조합원에게 공개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 돈은 나눠 낼 순 없다고 맞섰다.
지난해 강남구까지 나서서 자금 사용처와 조합원 명부 등의 정보 공개를 수 차례 권고했지만 조합은 묵묵부답이었다. 이후 주택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배상금을 조합원 각 가구가 분담한다고 해도 전액을 낼 때까지 지연이자는 계속 붙을 텐데, 그러면 1000만원이 넘어가지 않겠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달 총회가 무산된 것 조합이 요구하는 배상금 분담에 반대한 조합원들이 총회 참석을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조합 파산 신청과 조합 임원의 대여금 상환으로 사업을 정리해야 한단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통상 시공사가 조합에 사업비를 빌려줄 때 사업 중단 등을 대비해 임원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우기를 요구한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 변호사는 "조합을 해산하려면 청산금부터 처리해야 하는데, 조합원끼리 분담하는 방법도 있지만 임원이 보증하면서 담보로 건 재산을 경매에 넘기는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리모델링 조합을 해산해야 재건축 조합 설립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대신 현 조합 해산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초부터 꾸준히 해산 권고 공문을 보내고 재준위가 발의한 총회도 승인하는 식으로 해산을 독려하고 있다"며 "그러나 해산을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A씨를 포함한 현 조합 임원이 대여금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해산총회는 계속 불발될 수밖에 없어서다. 아니면 리모델링 조합 해산 전 재건축 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강남구를 설득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A씨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조합 업무에 관해선 할 말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미 리모델링으로 상당 부분 사업이 진행된 단지가 아니라면 리모델링과 재건축 사이에서 소유주 간 분쟁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공사가 더 미뤄지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