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환 한국PCO협회장
2025년 10월 말, 경상북도 경주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21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이 회의는 대한민국의 외교 역량은 물론, 지역 균형발전과 국가 브랜드 제고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인 경주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는 대규모 국제행사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기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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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환 한국PCO협회장 |
하지만 20년 전,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당시 행사 운영의 전반을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가 도맡으며, 국내에 존재하던 수백 개의 전문 컨벤션기획사(전업 PCO)는 사실상 행사에서 배제됐다. 이는 다자간 회의 운영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국제행사 경험이 중소 PCO에 축적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초래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1,500여 개의 전업 PCO가 존재하며, 이들은 다년간 국제회의, 전시, 포럼 등 MICE 산업의 실무 최전선에서 활동해왔다. 특히 2009년 정부가 마이스(MICE)산업을 국가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지정한 이후, PCO 업계는 기획력, 운영력, 기술력을 빠르게 고도화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형 국제행사에서는 전업 PCO의 참여가 배제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는 이러한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첫째, 다자간 정상회의와 같은 고난도 행사를 경험해야만 대한민국 PCO 산업이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다. 둘째, 행사 운영의 일괄 위탁이 아닌 세부 분야별 역할 및 책임의 협업이 이루어질 경우, 중소 PCO의 전문성과 효율성은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셋째, 지역 기반 산업생태계 활성화와의 연계를 통해 행사 효과의 지역 확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PCO 참여는 지방정부에도 유의미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행사의 준비와 운영을 총괄하는 APEC 준비기획단과 관계 부처는 이제 정책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번에도 대기업 중심의 독점적 행사 운영 구조를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중소 전문기업들과 함께 대한민국 MICE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주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다. 대한민국 마이스 산업이 자생력 있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시험대이며, 실질적 '산업 육성형 행사 모델'로 전환할 수 있는 정책적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기회를 통해 중소 전업 PCO들이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결과적으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