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독일 총선이 2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주요 정당들이 일제히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가 이민 급증과 에너지 위기 등 현재 독일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심각한 문제들의 발생과 관련해 가장 책임이 크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그가 최근 회고록과 공개 발언을 통해 변명과 비판을 자초하는 주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때 '무티(mutti·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독일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그가 지난 2021년 말 정계를 은퇴한 지 3년여 만에 '기피 인물' 신세로 전락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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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로이터=뉴스핌] 이영기 기자 =12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베를린에서 연설을 앞두고 환하게 웃고 있다. 2021.07.13 007@newspim.com |
NYT는 이날 보도에서 "메르켈은 정계에서 은퇴를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투표 용지에 올라 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모든 주요 정당을 하나로 묶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유권자들의 반감을 산 메르켈에게서 벗어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독일 총선은 침체된 경제와 10년간의 이민 급증, 높은 에너지 가격, 불안한 국가 안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위협 등이 큰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이들 문제들에서 메르켈이 책임을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이다.
메르켈은 지난 2015년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오는 중동 난민에 문을 활짝 열었다. 난민 신분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무조건 받아들였다. 이를 계기로 독일에선 극우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현지 AfD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도우파인 기독민주당(CDU)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차기 총리 등극이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는 "우리는 이 나라에서 10년간 잘못된 망명 및 이주 정책의 헝클어진 잔해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메르켈은 또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고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을 대폭 확대했다.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하게 추진한 이 정책은 최근 독일 경제가 겪고 있는 침체와 에너지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독일 경제학자들은 인프라에 대한 장기간 투자 부족으로 기업들이 '경쟁력 위기'라고 부르는 상황에 대해서도, 중국과 무역·투자 관계를 심화시켜 미국과의 갈등 관계를 조성한 것에 대해서도 메르켈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켈은 작년 발간된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추진한 정책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지난 주에는 자신이 속했던 기민당이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추진하라는 국회 동의안을 처리한 것에 대해서도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NYT는 "선거 기간이 막판을 향해 가고 있는 요즘 메르켈은 모든 주요 정당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빌트지가 여론조사기관 인자(INSA)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인의 43%는 메르켈 정책이 국가에 좋지 않다고 답했고, 31%만이 좋다고 답했다.
니코 랑게 전 참모총장은 "메르켈의 책과 최근 공개 성명은 불행히도 현재의 문제에 대한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기보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에 더 가깝다"면서 "그는 예전 자신의 지지자들 대부분에게서도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NYT는 "여러 면에서 메르켈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역사적 위치에 처해 있다"면서 "그녀는 한 때 경제 호황을 감독한 덕분에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유산이 공격받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추진하고 중국과의 무역을 대폭 개방해 여론이 강하게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