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 24곳, '청년보좌역' 도입
계엄·탄핵 정국 거치며 업무 '차질'
"부처내 협조 안되고 도움도 없어"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지난달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 장·차관님들이 국회에 불려 다니면서 업무가 거의 올스톱됐습니다. 새로운 정책을 발굴·추진하는 일보다는 기존의 업무를 보완하는 수준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정권 초 청년들이 청년정책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24개 장관급 기관에 청년보좌역(만 19~34세) 제도를 신설했습니다. 이들은 장관과 직접 소통하며 부처의 정책 결정에 있어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그런데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청년보좌역들이 속앓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보좌해야 할 장관은 졸지에 '내란 공범' 혐의를 받으며 조사를 받느라 여념이 없고, 관가는 한껏 움츠리고 있습니다.
국무회의를 비롯한 주요 국정현안회의는 모두 서울에서 개최됩니다. 장관을 직접 보좌해야 하는 청년보좌역이지만, 세종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날이 더 많습니다.
한 청년보좌역은 "계엄 이후 장관님 얼굴을 못 본 지도 한 달도 더 넘었다"며 "계엄 이전까지 진행했던 업무는 잠자고 있는 상태"라고 토로했습니다.
장관 공백으로 빈손만 쳐다보는 청년보좌역은 새로운 정책을 발굴하는 것도, 장관 보좌 외 업무를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들은 정부 부처에서 청년보좌역을 대하는 태도는 얼음장처럼 차갑다고 지적합니다.
청년보좌역 김민정(가명) 씨는 "청년보좌역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다 보니 곁을 내주지 않는 분들이 있다. 언젠가는 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비교적 간단한 업무만 던져주는 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 부처에서 청년보좌역의 존재감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정부 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부처는 아직도 수직적인 위계 서열이 존재한다. 청년보좌역이 장관을 보좌하는 직위에 있어도 보고 체계는 갖춰야 하는데 종종 이를 무시하고 장관에게 직보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은 불편해지지 않겠냐"고 귀띔했습니다.
부처 특성상 청년 정책을 하지 않았던 곳이면 청년보좌역의 적응도가 낮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청년보좌역 박현민(가명) 씨는 "제가 있는 부처는 인구, 출산, 고용 등 청년의 시각을 반영할 수 있는 정책이 전무했다"며 "기존 업무에 청년 시각을 반영한다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청년보좌역 권상민(가명) 씨도 "초기에 청년보좌역이 5급으로 신설된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부처 내부 눈초리가 따가웠다"며 "폐쇄적인 공직문화에서 청년보좌역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약간의 '텃세'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반면 청년보좌역에 만족한다는 청년들도 적진 않습니다. 청년보좌역 이민아(가명) 씨는 "초반에는 부처와 저 모두 어려움을 겪은 건 사실"이라며 "그러나 우리 부모님 세대인 간부진들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했고,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이뤄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청년보좌역의 중요함을 아는 부처에서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청년보좌역들의 책임감이 상당히 높다"며 "청년보좌역이 끝나면 우리 부로 데려오고 싶을 정도"라고 흐뭇해했습니다.
청년보좌역 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됐습니다. 9곳으로 시작해 이제는 24곳까지 확대됐습니다.
청년보좌역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반대로 나뉘는 이유가 뭔지 되새겨볼 시점입니다. '청년보좌역' 제도가 앞으로도 실효성 있게 운용되기 위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plu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