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서 민주당 합류 이유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유치원 3법 등 의정 눈길, "정치 내줄 것 줘도 핵심 얻어야"
"지도자의 덕목은 용기, 멀리 보는 혜안도 가져야"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리더의 덕목은 용기"라며, 차기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박 전 의원은 15일 오후 유튜브 채널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한번 해보겠다고 손을 들었던 사람이고 당 대표 선거에서도 움직였던 사람으로서 책임 있는 대답은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고민을 계속하겠다"고 문을 닫지 않았다.
박 전 의원은 이날 의원이나 핵심 지지세력이 약하다는 지적에 대해 보완 중이라고도 밝혔다. "지난 대통령 선거 경선, 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박용진을 지지하고 도왔던 전국의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있는 중"이라며 "정치와 미래라는 단체를 조직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의원은 이어 "같이 정치를 했던 전현직 의원들도 만나고 있다"라며 "그분들과 뜻을 같이 해서 한국 정치의 미래, 민주당의 변화를 같이 도모하고 힘을 합치려고 한다. 박용진의 단점은 극복하고 더 세력을 모아 나가는 쪽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그는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서는 "용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첫 번째는 절제의 용기, 두 번째는 손 내밀 용기이고, 세 번째는 아니라고 말할 용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기의 권력이고 권한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절제해야 한다. 두 번째는 꼴보기 싫은 사람과도 파트너가 되면 손을 내밀어야 한다"라며 "마지막은 나의 열성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것을 아니라고도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2025.01.14 dedanhi@newspim.com |
그는 청년 세대에 대해서는 "평범하지만 정직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라며 "평범하지만 힘이 크고 정직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대접받고 주인이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저도 그런 리더가 되도록 노력하고 그런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1971년 전라북도 장수 출신으로, 집성촌이 있는 장계면에서 거주하다가 부친의 근무지 이동에 따라 전주시 태평동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진북초등학교를 다니다 1979년 부친이 서울로 이동하면서 같이 서울로 온 이후 강북을 지역에서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 당시 그의 은사였던 이수호 선생이 구속된 이후 세 번의 교내 시위를 주도했고, 1990년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한 이후 1991년 대학 선배인 김귀정 씨가 시위 도중 숨지는 사건 이후 학생운동의 중심에 섰다.
전역 후에는 진보정당 건설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정치부장과 1997년 9월 국민승리21의 언론부장 등을 지냈고, 대선 이후에도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와 함께 진보정당 운동을 이어갔다. 2011년 진보대통합 논의가 확발해진 이후 야권대통합을 주장하면서 민주당에 합류했다.
이후 20대와 21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이건희 삼성회장의 차명계좌 문제와 현대자동차 문제를 지적해 리콜 결정을 이끌고 유치원 3법 등 의정 활동으로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박 전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채송무 기자, 이하 채 기자) 안녕하세요. 정치인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살펴보는 KYD 방송의 폴리티션 스토리. 저는 진행을 맡은 정치부 채송무 기자입니다. 옆에는 함께 진행을 맡아 주실 스웨덴 린넨대의 최연혁 교수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안녕하십니까.
-(채 기자) 오늘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님을 모시고 정치 역정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박 전 의원) 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채 기자) 대학교 때 고민을 바탕으로 제대 후에 진보정당 만들기 운동을 시작하셨는데, 의원께 어떤 가치가 됐을까요.
▲(박 전 의원) 처음에는 구호 외치는 것으로, 짱돌 던지는 것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것이 되게 중요한 깨달음이었거든요.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제가 백기완 후보의 선거운동을 했어요. 그런데 1%가 나온 거야. 정말 창피해 죽겠더라고요. 어떻게 1%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우리는 이렇게 좋은 말만 하는데.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느 유권자가 자신의 주권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를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의지를 해요. 누군지도 모르는데. 평상시에 촘촘하고 꾸준하게 자신들과 호흡하고 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런 세력에게 표를 주죠. 그 단순한 것을 군대 가서 깨달았다니까요. 그냥 '저 놈들은 안돼. 아유 저 나쁜 놈들'라고 욕을 하면서도 그래도 믿음이 있는 거죠.
기존의 정치세력들은 늘 보이니까. 늘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고, 거짓말을 해도 늘 같이 서로 이야기를 하니까 기존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은 있지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민중을 위하는, 민족을 위하는 척 주장하는 운동권들보다는 신뢰가 낫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좋은 것. 우리가 이야기하는 필요한 이야기를 평상시에 할 수 있으려면 정당이 필요하구나. 선거에 대응하기 위해서 뿐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함께 힘을 모아 나가려면 그런 공간과 조직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서 제대하자마자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찾아다녔어요.
1997년 2월에 제대를 했는데 1997년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 거에요. 그때 민주노총의 권영길 위원장을 후보로 내서 진보 정치세력이 움직이려고 한다기에 앞뒤 안 보고 같이 했죠. 그때부터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까지 힘들었고, 선거를 치렀더니 그때도 1%야. 그래서 '이게 쉽지 않구나. 그러면 이것을 기반으로 정당을 만들자'고 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권영길 그리고 저를 포함한 13명이 남았어요. 다시 시작한 것이 1997년 12월 겨울부터인데 정말 힘들었어요.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물건을 팔아야 되는 거잖아요. 권영길이라는 사람을 앞세워 노동자들에게 당 가입 원서를 받고 하는 과정이 한 3년 걸렸어요.
3년 동안 겨우 몇천 명, 일주일에 한 3만원씩 받으면서 진보정당 만드는 과정을 계속 했거든요. 3만원은 버스는 타고 와라 이거였구요. 그때 제 생활비는 벌어야 하니까 신문 배달을 새벽에 하고 아침에 나가는 거에요. 오토바이를 잘 안 몰아봤는데 겨울에 사고가 두 번 일어났어요. 한 번은 진짜 큰일날 뻔 했고, 그런데 그런 개인의 어려움과 전체 진보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런 거에요.
착한 사람들의 연대의 힘을 봤어요. 민주노동당이 1000명, 3000명, 만 명을 넘어서는 과정을 쭉 봤거든요. 1명이 당비 만원을 냈어요. 창당을 2000년 1월 31일에 했는데 그때 당원이 1만5000명 넘어섰을 때거든요. 1만5000명이 우습지만 안 그래요. 그분들이 돈 만원씩을 내면 1억5000만원인 거에요. 그것이 1년이면 15억원이 넘는 돈이 있는 거에요. 그분들이 연말이면 세액공제로 정치후원금을 정당에 또 냈어요. 한 만 명 정도가 그런 것을 해주셨거든요. 그러면 또 10억원인 거에요.
국회의원은 없지만 민주노동당은 부유세를 거둬서 무상의료와 무상 교육, 지금 대한민국에 실현해 놓고 있는 이야기를 주장하고, 처음 시작했던 정치 세력이었던 거죠. 민주당이 받아서 같이 실현하는 과정이 그로부터 10년 뒤였거든요. 되게 의미 있는 시작을 한 거죠. 1997년에 대통령 선거를 실패하고, 2000년 선거 때 실패하고 2년 뒤에 전국적으로 11명 광역 비례 의원이 들어갔어요. 2년 뒤 2004년 총선에 국회의원이 10명이나 당선되고요. 한국 정치사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거죠.
꾸준히 준비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하면 국민들은 마음을 열어주시는 과정을 같이 했던 사람은 노동자, 서민. 이런 분들이 '이런 세상이 필요해, 이런 목소리가 필요해'라고 만원씩 모아준 착한 사람들의 연대의 힘이 어마어마했죠. 노사모가 그런 것 아니겠어요. 제가 겪지는 않았지만 노사모가 없었으면 노무현 대통령은 그냥 약간 돈키호테같은 주장, 3김 정치 시대에 3김 정치 타파를 이야기하고 지역주의 정치 시절에 지역주의 타파를 이야기하는 돈키호테 정치인으로 끝났을 거에요. 지금도 우리 국민들의 가슴과 뇌리에 남아있는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노사모라고 하는 힘, 착한 사람들의 선한 연대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그야말로 독한 사람들이 독한 말을 막 내뿜잖아요. 저는 이런 독한 사람들의 독한 연대, 그런 독한 정치가 우리 국민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요. 우리 사회에도 안 좋다고 봅니다. 착한 사람들의 연대의 힘을 믿고 평범하지만 정직하고 상식적인 힘이 얼마나 센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채 기자)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실 때 동지들에게도 많은 비판을 받으셨는데, 민주당으로 옮기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박 전 의원) 세상을 단 1센티라도 바꿔보고 싶었어요. 민주노동당을 통해서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은 아니죠. 그러나 한국의 정치 현실과 선거법, 정치 제도가 그대로 있는 한 두 개의 정당 사이에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는 정도 이상의 것을 하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결단을 했어야 했어요.
박용진처럼 지난 10년 동안 더 길게 보면 20년 동안 진보정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구에서, 중앙에서 열심히 한 사람이 있으면 손 들어라. 없지, 적어도 내가 열심히 한 것은 다 인정하지, 그러면 우리 평가해보자.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잘못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한계야, 그러면 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대통합하고, 진보정치세력이 자유주의 정치 세력부터 진보 정치 세력까지 다 같이 힘을 합쳐서 가는 것이 어때. 이 제안을 한 거죠.
비판도 받고 욕도 많이 먹고 같이 했던 친구들한테도 '너 왜 그러냐' 이런 소리 많이 들었지만요. 저는 성공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결심하고 계획이 있으면 하는 타입이었고요. 최대한 그 의견에 동의하는 동지들을 모아서 진보정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민주당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한국노총, 혁신과 통합, 민주당이 같이 해서 민주통합당이라는 정당을 2012년에 만들어서 총선과 대선을 치르게 된 거에요.
그때 그 결단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겠습니다만 그게 없었으면 유치원 3법이 없었을 거에요. 현대자동차라고 하는 거대그룹과 싸워서 수백만 대의 자동차 리콜을 받아내고 무상 수리 조치를 받아내는 어려운 일은 못했을 겁니다. 고발은 했겠죠. 주장을 했겠죠. 비판은 할 수 있었을지 모르죠. 또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 이건희 회장이 차명계좌 4조5000억원에 대해 세금을 안 걷고 있었던 것을 제가 찾아내 과세를 할 수 있었던 과정은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에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저는 제 과감한 전환, 결단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채 기자) 의원께서는 여러 의정 활동을 했는데 유치원 3법이 제일 대표적인 법안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 법들을 실현하면서 어떤 것을 얻었나요.
▲(박 전 의원) 이 법을 할 때 너무 놀랐어요. 이런 당연하고 작은 것 하나 바꾸려는 것에도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소득이 있으면 세금이 있고, 세금을 쓴 곳에는 투명성이 있어야 한다가 제 원칙이거든요. 이건희 회장이라고 하는 높은 분한테도 세금 내시오. 라고 하는 것도 우리 국민이 다 그러는데 돈 있고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해야 한다. 이것이 제 원칙이니까 적용을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썼어요.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낸 소중한 세금을 갖다 썼는데 나 몰라라 하고 어디에 쓰는지 아무도 감시를 안 하는 거에요.
에듀파인이라는 시스템을 당신들도 쓰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교육기관으로 혜택은 다 받으면서 의무는 안 하려고 그러는데 의무를 하라고 했더니 세상에 국회에 500명이 쫒아오셔서 거의 제 멱살을 잡고 악을 쓰고 국회를 뒤집어 엎어놓고 대단하시더만요. 그리고 길바닥에서 몇만 명이 모여서 집회를 하는데 '박용진은 빨갱이' 그런 것을 길거리에 걸어놓았더라고요. 그 분들의 저항을 뚫고 나가는 과정이 1년 4개월이 걸렸어요. 그러니까 저도 독한 놈이지. 그냥 그렇게 딱 뜨면 보통 그것으로 끝나는데 제가 국민들의 시선을 좀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제도의 변화와 시스템의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하니까 법을 바꿔야 하거든요.
1년 4개월 동안 하는데 힘들더라고요. 국회 안에서도 그분들의 이익을 지켜주려고 자유한국당 당시에는 말도 못하고 유치원 3법 발목을 잡고 필리버스터까지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과정을 뚫어내는 협업을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나는 원칙적으로 잘 지켜나가면서 누군가가 협상도 하고 타협도 만들어내고. 그것을 저와 제일 잘했던 사람 2명을 뽑으라고 하면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유은혜 장관이 정말 잘했고, 우리 조승래 간사, 지금 3선이 되셨는데 대전의 조승래 교육위원회 간사가 정말 잘했어요. 제가 흥분해서 막 하면 자제도 시키고 '박 의원 이건 내가 알아서 할게' 하면서 협상도 하고요.
결과적으로 보면 유치원 3법은 누더기 법입니다. 제가 통과시킨 법입니다만 누더기 법인 거에요. 왜. 협상하고 타협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치는 내줄 것을 내주고요. 그래도 뼈를 취해야 합니다. 작은 살점 하나씩 내주더라도 뼈를 취하고 핵심을 얻어내면 된다고 봅니다. 유치원 3법의 핵심인 회계 투명성을 정착하는 것으로 끝났어요. 그리고 나머지 우려하는 것들은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조정해서 통과시켰습니다.
-(채 기자) 의원님은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경선에서 맞붙었잖아요. 지금 조기 대선 흐름으로 가고 있어요. 다시 정치 활동을 재개하셨는데 혹시 대선 출마 의지가 있으신 건가요.
▲(박 전 의원) 물어보는 분들은 많은데 지금 제 상황에서 그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는 참 쉽지 않아요. 일단 현역 국회의원도 아니고요. 동원할 수 있는 가용 자원도 별로 없는 상태인 것도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고요. 윤석열 대통령 저 꼴 좀 보세요. 대한민국의 법 집행은 거부하고 뒤로 숨어 있으면서 국민들에게 쪽지를 보내서 지지자들에게 물리적 충돌을 선동하고 자기를 지키라고 준동시키는, 체면도 없고 양심도 없는 이런 짓들을 하잖아요. 저런 사람이 아직도 대통령 자리에 형식적으로나마 앉아있는 상황에서 대선 출마니 자기 정치 계획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정치인이고,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 내가 한번 해보겠다고 손을 들었던 사람이고요. 당 대표 선거에도 내가 한 번 해보겠다고 손 들고 움직였던 사람으로서 책임 있는 대답은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고민을 계속하겠습니다.
-(채 기자) 세력이나 핵심 지지층이 약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보완하실 생각이에요.
▲(박 전 의원) 정확한 지적이죠. 박용진의 장점과 단점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것 같아요. '박용진 사람은 참 똑똑한데, 주변에 세력이 없잖아. 계파가 없잖아' 이렇게들 이야기하시잖아요. 이재명 대표도 당 대표로서 저에게 공천을 주지 않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르지만 별로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이 상황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을 좋게 활용해보자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적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 경선, 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박용진을 지지하고 도왔던 전국의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또 힘 모으고 있는 중이고요. 정치와 미래라고 하는 단체를 조직으로 지금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이에요. 기본적으로 박용진과 뜻을 같이 했던 분들이어서 소중한 모임이지요. 아직 작기는 한데 네이버에 팬 카페도 만들어져 있더라고요. 박용진을 좋아하는 분들, 응원하려고 하시는 분들이 모여서 힘을 모아주고 계시는 것도 제가 유심히 보고 있어요. 저는 아직 가입을 안했지만 유심히 보고 있고, 행여나 악성 팬덤이 되지 않고 우리 정치에 좋은 역할을 하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저도 응원을 하려고 해요.
같이 정치를 했던 전현직 의원 분들도 만나고 있거든요. 그분들과 뜻을 같이 해서 한국 정치의 미래, 민주당의 변화를 같이 도모하고 힘을 합치고 이렇게 해나가려고 합니다. 말씀 주신 것이 박용진의 단점이면 그것은 극복하고 더 세력을 모아 나가는 쪽으로 변화시켜 나가야죠. 제가 변하지 않고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어요. 저는 그렇게 노력해 나가려고 합니다.
-(채 기자) 저서를 보면 소통과 설득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이번에도 준비를 하면서 어떤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이 있나요.
▲(박 전 의원)지도자의 핵심 덕목을 저는 용기라고 봐요. 무슨 용기냐. 제가 갖추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저도 갖춰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첫 번째는 절제를 할 용기, 두 번째는 손 내밀 용기이고, 세 번째는 아니라고 말할 용기거든요.
자기의 권력이고 자기의 권한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절제해야 해요. 그것을 절제하지 않으면 룸이 생기지를 않아요. 공간이 생겨지 않는데 무슨 타협과 소통을 하겠습니까. 두 번째는 손 내밀 용기인데 진짜 꼴 보기 싫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과도 파트너가 되면 손 내밀어야죠. '내가 뭐만 아니면 저 놈은 가만 안 뒀어'라고 이야기하더라도 "안녕하셨어요" 이렇게 해야죠.
정치인은 내가 잘 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런 자리와 기회, 권한을 주어서 대한민국이 조금이라도 좀 타협하고 균형을 만들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조정자의 역할을 하라고 준 것이니까 그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꼴 보기 싫은 사람에게도 손 매일 용기가 필요하죠.
마지막으로는 나의 열성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것을 아니라고도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해요.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넬슨 만델라가 그랬던 것 같은데 만델라는 노벨 평화상 받은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이 양반이 사실은 폭력주의자에요. 민족의 창이라고 하는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무장 단체 군사 조직을 창립하고 이끌던 총사령관이에요. 그런 사람이 감옥에서 생각이 변하고 백인 정부와 타협을 해 평화롭게 정권 교체를 이뤄내는 위대한 일을 했잖아요.
그 위대한 일을 하는 과정 내내 자기 지지자들, 자기 자식 같은 그룹의 리더들이 배신자라고 욕하고 떠나고 심지어 와이프하고도 결별하고 이런 엄청 힘든 일을 겪더라고요. 물론 제가 만델라처럼 돈독한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언제든 지지자들에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멀리 보는 혜안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때 만델라가 '그래 우리 같이 싸워서 우리 힘으로 권력을 세워보자.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다' 했으면 남아프리카 내전으로 200만 명이 죽었을 거라는 것 아니에요? 그런 비참한 상황을 막아낸 지도자의 용기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채 기자)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KYD 방송은 청년에게 희망을 주자는 의미인데요. 청년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박 전 의원) 얼마나 좋으십니까? 박용진의 20살이나 여러분의 20살이나 불안함도 있고 희망도 있고 에너지도 넘칠 시간이잖아요. 저는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불안함이 에너지원이 되기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러분들에게 저도 기성세대니까 한 가지 약속을 드린다면 평범하지만 정직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게요.
그런 세상이 만들어져야지 튀고 혜택 받은 사람들과 우리와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 그리고 상식적이지 않고 세상을 정말 험악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성공하는 세상이 아니라 정말 평범하지만 힘이 크고, 정직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대접받고 주인이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그런 리더가 되도록 노력을 하고 그런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할게요.
같이 힘 합쳐서요. 지금 이 난리판에 대한민국이 한 10년 정도 뒤로 후퇴한 느낌이잖아요. 여러분과 우리 정직한 사람들, 상식적인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대한민국을 글로벌 빅 5에 다시 올려놓고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보자고요. 대한민국의 피크는 아직 멀었어요. 피크를 치고 내려간다고 생각하는 분들 많을 텐데 여러분이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피크는 아직 멀었습니다. 같이 힘 모아서 해나갔으면 좋겠고요. 저도 좀 많이 응원해 주십시오. 저도 여러분 응원하겠습니다.
-(최 교수) 주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용기 있는 정치인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국민을 위해 백인과 함께 타협하면서 용서하고. 용서 부분이 빠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용서와 포용,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토론하면서 설득하는 과정이 아직까지 없는 부분들에 대해 저는 이런 부분들을 우리의 정치적 자산으로 대한민국의 변화에 많은 역할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 전 의원) 저도 말은 이렇게 했지만 늘 흔들리거든요. 나침판이 흔들리듯 계속 흔들리고 하루는 비겁하게 살았다가 하루는 정신 차렸다가 이렇게 하지 않겠어요. 그것이 변화의 과정일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번 공천 탈락 과정과 지금까지 다시 사색하는 과정에서 저의 단점으로 채 기자가 지적해준 것처럼 주변에 세력이 없어요. 이 부분 극복해 가야죠. 그리고 또 하나는 민주당 지지층과 일종의 불화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과의 불화. 이재명 대표를 지지한다고 박용진과 불화를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인데, 물론 저와 이재명 대표가 계속 경쟁하고 부딪혀 왔기 때문에 그렇겠습니다만, 박용진에 대한 오해, 흑색선전 이런 것들에 그 분들이 '맞아, 박용진 나쁜 놈이야'라고 오해하도록 저도 혹시 잘못한 것은 없나 계속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저는 봐요. 지지자들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 그들의 갖고 있는 오해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 그분들에게 더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도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옳아. 나는 맞아, 내가 잘 났어' 이 이야기만 계속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내가 하는 일은 다 옳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길 갈 거야'라고 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틀린 자세라고 보거든요.
적극적인 민주당의 지지층들이 박용진에게 갖고 있는 불신과 불화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겠다. 그분들에게 더 웃고 더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그분들이 저를 피하면 더 다가가해보려고 해요. 혹시 이 프로그램을 보고 계시는 분들은 이재명 대표를 좋아하는 분도 계시고 민주당의 적극 지지층인데 박용진에게는 좀 갸우뚱하고 계신분들 계시면 앞으로 저와 친하게 지내요.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채 기자) 지금까지 박용진 전 의원님 모시고 여러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박 전 의원님께서는 저희 방송을 통해서도 새로운 시대의 리더가 되겠다는 입장을 말씀하셨는데요. 지금까지 의정 활동이나 여러 부분에서 보였던 소신 있는 모습이나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의 미래와 문화에 큰 발전을 이루는 박 전 의원이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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