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비상계엄은 1948년 10월 여수·순천
[서울=뉴스핌] 박서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헌정 역사상 아홉 번째 '비상계엄'이 마무리됐다. 이로써 45년 만의 계엄령 선포가 단 6시간 만에 종결됐다.
윤 대통령은 4일 오전 4시 30분 국무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해제안을 의결했다. 앞서 국회는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자 새벽 1시 본회의를 열어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서울=뉴스핌] 양윤모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하철 탑승 시민이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2024.12.04 yym58@newspim.com |
대한민국 헌정사에 비상계엄은 총 8차례 나타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상계엄은 1948년 10월 선포됐다.
당시 여수에 주둔 중이던 조선국방경비대 14연대가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출병 명령을 거부했다는 명목으로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이는 이듬해 2월 5일까지 이어졌다.
두 번째 비상계엄 또한 이 전 대통령이 같은 해 11월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에 선포, 같은 해 말일인 12월 31일까지 지속됐다.
세번째는 1952년에 선포됐다. 앞서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 제2대 총선에서 무소속 의원들이 당선되는 등 이 전 대통령의 정치기반이 약해지며 대통령과 국회가 대립한 것이 배경이 됐다.
이에 1952년 5월25일 이른바 부산정치파동 사건을 시작으로 부산, 경남, 전남 등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일부 국회의원이 체포·연행됐다. 이 계엄령은 두 달 뒤인 7월 해제됐다.
이어 1960년 4·19 혁명을 계기로 서울시에 네 번째 계엄령이 선포됐다. 3개월 후인 7월 해제됐으나 바로 이듬해인 1961년 박정희 장군 등이 5·16 쿠데타(군사정변)를 일으키면서 전국에 계엄령을 다시 선포했다. 역사상 다섯 번째 계엄령이었으며 이는 1년을 넘겨 1962년 12월에야 종료됐다.
여섯 번째는 한일 회담 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지면서 1964년 6월 3일 선포, 일곱 번째는 1972년 박정희 정부가 10월 유신을 선포하면서 발발했다. 이 계엄령 이후 유신헌법 제정, 유신체제 강화가 이어졌다.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자 그 해 10월 18일 부산 일대에 여덟 번째 계엄령이 선포됐고 이는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로도 유지됐다.
1980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는 5월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이 계엄령을 전국에 확대했고,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1981년 1월 계엄령은 비로소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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