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연일 업계와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75년간 동업 관계를 유지해 온 최씨 집안의 고려아연과 장씨 집안의 영풍이 '아름다운 이별'을 하지 못하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양측이 자율적으로 지분 정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하며 영풍은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MBK 파트너스와 손을 잡았고, 탄탄한 자금력을 갖춘 MBK·영풍 연합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산업부 김승현 차장 |
경영권 방어에 나선 최 회장은 아연, 납, 금·은·동을 생산하는 고려아연의 본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규정하고 '약탈적이고 적대적인 M&A'인 MBK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여론에 호소했다.
MBK·영풍은 최 회장이 회장 취임 후 전권을 쥐고 '트로이카 드라이브'라는 미명 아래 미국 등에 무리한 투자와 지인에 대한 투자 등을 하며 전횡을 휘두르고 있다는 점을 경영권 확보에 나선 명분으로 내세웠다.
양측은 지분 확보를 위해 공개매수와 대항 공개매수 등 총 6조원 규모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쩐의 전쟁'을 치렀지만 확실한 승자 없이 여전히 양측은 30~4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쩐의 전쟁' 1라운드를 치른 양측은 이제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섰다. MBK·영풍 측이 요구하고 있는 임시 주주총회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 표심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측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 주주들은 현대차, 한화, LG화학, 그리고 국민연금이다.
당초 여론은 대체로 최 회장 측에 유리했다. MBK의 과거 M&A 이력이 기존 재계의 마음에 들 리 없었고, 또 중국 매각설, 구조조정설 등이 통했다.
여기에 영풍이 운영하는 석포제련소에서의 잇단 사고들이 부각되며 재계와 정치권, 지역 여론까지 고려아연의 경영권은 현 경영진이 가져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공개매수 등을 위해 끌어다 쓴 차입금을 갚기 위해 결정한 2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결정이 여론 지형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고가로 자사주를 사들이고 저가의 유상증자를 통해 주주 돈으로 빚을 갚으려 한다'는 프레임이 먹혔기 때문이다.
악화된 주주 여론에 투자 심리까지 나빠지며 급기야 금융당국까지 '정정 신고 요구'를 통해 제동을 걸었고, 결국 최 회장은 유상증자를 철회했다.
기자회견을 자처한 최 회장은 급작스러운 유상증자 추진에 대해 공식 사과했고 또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으며 전문가 중심의 경영을 통해 투명하고 주주 친화적인 지배구조로 개혁할 것을 약속했다.
양측의 진흙탕 싸움으로 고려아연의 재무건전성은 나빠졌고, 회사의 각종 치부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또한 서로를 향한 고소, 고발이 쌓이면서 분쟁이 끝난 후에도 후유증이 있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시장은 냉정하다. 투자자들과 파트너사들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최 씨가 잡는지, 장 씨가 잡는지에 관심이 없다. 투자자들은 훌륭한 투자 수익과 배당을 보장하는 쪽을 선택하고, 파트너사들은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협업이 잘 이뤄지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양측이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며 네거티브 대결을 이어나가며 고려아연이라는 기업의 가치는 쪼그라들고 있다. '내가 못 가지면 너도 못 가져가야 한다'는 못된 심보가 아니라면 양측 모두 이제는 냉정하게 고려아연의 비전을 누가 더 잘 보일 수 있을지를 두고 주주와 투자자, 당국, 업계를 설득하는 경쟁을 해야 한다.
흔하게 쓰지만 막상 실행하기는 쉽지 않은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조언이 절실한 때다.
kim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