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책,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철학서
"자유는 인간의 본질에 선행한다"...인간 존재의 탐구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세기말인 1999년 '르 몽드'는 독자에게 "당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책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20세기 최고의 책' 100권을 뽑기 위해 1만7천여 명이 참여한 이 투표에서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는 13위를 차지했다. 이는 철학 저서 중 가장 높은 순위로, 프랑스 전역에 광범위한 판매망을 가진 프낙서점이 함께한 조사였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표지. [사진 = 민음사 제공] 2024.09.04 oks34@newspim.com |
1943년 장폴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를 출판했다.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극심한 분열을 겪던 시기. 사르트르는 폭탄이 아니라 글쓰기로 저항하고자 결심한다. 그는 학생 시절 연구한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딛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한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비참한 전쟁의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자유롭다고 말하는 사상이었다.
'존재와 무'는 빵처럼 팔려나갔다. 물자가 부족하던 시기였지만 허기진 사람들의 정신적 양식이 되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근엄한 철학에 던져진 폭탄이자,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오래된 길에 세운 새 이정표였다. 사르트르라는 존재에 대해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사르트르가 있었다. 사르트르는 우리들의 바깥이었다. 신선한 바람이자, 새로운 질서를 견딜 힘을 주는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사르트르는 카페에 들어오면서 지식인들의 공기를 바꿔 버리는 그런 지식인이었다."
'존재와 무'에서 탐구 대상은 고립된 인간이다. '나 대 타자'의 관계 정립에 머무는 개인.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어떻게 그토록 잔인할 수가 있는가? 인간이 스스로 칭송했던 위대함과 존엄성은 사라져 버렸는가? 인간은 이성의 주체가 아니라 비인간성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리는 존재에 불과한 것인가? '존재와 무'는 이런 질문을 파고드는 장대한 존재론이다.
사르트르 후기 사상의 대표작 '변증법적 이성 비판' 번역에 참여하고 '시선'과 '폭력'을 중심으로 사르트르를 연구해 온 한국사르트르연구회의 변광배는 5년 만에 내놓는 이번 번역본에서 철학적 이론과 문학적 서술의 정교한 번역을 위해 고심했다. 프랑스 갈리마르에서 나온 1994년 신판을 저본으로 삼아 처음으로 선보이는 완역 한국어판이다. 민음사. 값 4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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