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롸 관계 쌓은 뒤 금전 갈취하는 로맨스 스캠
사람 만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 유독 취약
수용·지지해주는 범죄자들…피해사실 묵인하기도
가이드라인 없어 사후약방문
[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관계 중심형 온라인 사기인 '로맨스 스캠'에서 발달장애인을 구제할 방법이 없어 현장에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범죄자가 피해자와 지지적 관계를 맺고 있어 장애 당사자가 피해 사실을 타인에게 말하기 쉽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도 마땅한 금융교육을 마련하지 못해 범죄가 터지고 난 후 대처하는 '사후약방문'이 반복되고 있다.
9일 뉴스핌 취재에 따르면 최근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 A씨는 로맨스 스캠으로 총 5500만원의 피해를 봤다. 범죄자는 A씨에게 돈을 보내주면 만날 수 있다고 설득하며 갈취를 이어갔다고 전해졌다. A씨는 계좌에 있는 돈을 전부 입금한 후 주변에 1700만원을 빌려달라고 부탁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사가 A씨의 텔레그램 대화내용을 확인하고 범죄 피해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이 취약한 발달장애인들은 로맨스 스캠에 취약하다. 로맨스 스캠은 피해자와 신뢰 관계를 쌓은 뒤 금전을 갈취하는 사이버 범죄다. 단순히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부터 친구·연인까지 다양한 관계를 토대로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발달장애인은 직장에 다니거나 복지관을 이용하기 어려워 주위 사람들과의 소통이 쉽지 않고, 상대적으로 관계를 이용한 범죄에 걸리기 쉽다.
사회복지사 B씨는 "발달장애인 특성상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많이 탄다"며 "그래서 상대방이 믿음을 주는 순간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열어버린다"고 했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긍정을 경험하는 만큼 관계에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가족이나 기관 실무자들은 사회적 규범을 알려줘야 하는 만큼 장애인의 행동에 제약을 거는 것과는 달리, 범죄자들은 돈을 뜯어내기 전까지 수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범죄자들은 피해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말라고 귀띔하기도 한다.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는 "(발달장애인) 몇몇은 주위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카카오톡에서 기록을 지워, 피해를 확인하거나 보상받기도 어렵다"며 "실무자들이 카톡이나 문자를 지우지 말라는 교육을 할 정도"라고 했다.
이러한 피해 상황은 교육만 뒷받침된다면 예방할 수 있다. 금융 관리를 받은 발달장애인의 경우 소유의 개념이 분명히 잡혀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 보이스피싱 같은 온라인 사기에도 상대적으로 잘 대처할 수 있다.
다만 그루밍 범죄와 사기가 혼합된 범죄 특성상, 현장에서는 가이드라인 마련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는 지난해 발달장애인이 정서적 학대를 알아차리고 신고할 수 있도록 안내서를 발간했다. 하지만 조롱과 욕설, 무시 등을 동반하는 학대와 달리 로맨스 스캠은 외견상 지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세심히 살피기 전에는 다른 인간관계와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 권리구제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발달장애인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증여를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으로 볼 수 있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자유로운 인간관계를 갖고 있다고 확신하는 장애 당사자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사실상 사회복지 실무자들이 곁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방법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백정연 대표는 "정부 차원에서는 발달장애인이 체감하는 만큼 금융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며 "현재는 개별 기관에서 디지털 온라인 성범죄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고 별도로 교육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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