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세종문화회관(사장 안호상) 서울시극단(단장 고선웅)이 올해 첫 작품으로 연극 '욘'을 선보인다. 가장 고독한 사람들이 변화를 맞이하는 내용을 담았다.
11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3층 연습실에서 연극 '욘' 장면 시연과 배우들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고선웅 단장과 배우 이남희, 정아미, 이주영, 이승우 등이 참석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연극 '욘'에 출연하는 배우 이승우, 정아미, 이남희, 이주영 [사진=세종문화회관] 2024.03.11 jyyang@newspim.com |
이날 고선웅 단장은 "선거철이지만 연극은 계속된다"면서 "재미난 이야기다 감동도 있다"고 말했다. '욘' 주요 장면 중에서는 총 4막 중 1막과 3막이 시연됐다. 8년 간의 감옥 생활과 8년 간의 칩거로 망가진 일상을 사는 가족 구성원들의 욕망과 갈등이 그려졌다.
집안의 가장인 욘(이남희)과 부인 귀닐(이주영), 귀닐의 언니 엘라(정아미), 아들 엘하르트(이승우)는 각자의 욕망을 펼쳐내고 자신의 방향으로 나아가길 요구한다. 욘과 귀닐, 엘라 모두가 엘하르트에게 갖고 있는 다른 종류의 기대감과,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엘하르트의 심경 묘사에 집중했다.
'욘'의 장면 시연이 끝난 후, 마치 한국의 여느 드라마를 보는 듯 익숙한 설정과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들과 나눴다. 욘과 귀닐, 엘라는 엘하르트를 사이에 두고 자신들이 원하는 아들, 조카의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요구한다. 엘하르트를 연기한 이승우는 "대본 처음 받았을 때부터 아버지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연극 '욘'에 출연하는 배우 이남희 [사진=세종문화회관] 2024.03.11 jyyang@newspim.com |
그는 "작품 상의 엘하르트는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인데 그 나이를 조금 벗어났다. 한참 지난 나이, 시기의 이야기임에도 작품에 들어와보니까 아직도 아버지의 아들이 맞았고 그 시기를 겪어온 추억, 상처, 흔적들이 고스란히 있었다. 그걸 끄집어내는 게 어렵지 않았고 다시 마주하는 시간이 오히려 어렵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욘 역의 이남희는 "저희 아버지가 아프셔서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92세가 되셨다. 휠체어를 몰고 가는데 거울을 보고 그런 아버지와 제 모습을 처음봤다. 아주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엘하르트와 욘이 정말 서로 앙숙같은 관계였는데 또 각자의 생각에 빠져서 서로 돌보지 못한 후회가 남는단 생각도 든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하나의 삶이고 가족이고 인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남희는 욘이 현대의 한국사회에서 시사하는 점에 대해 "광부의 아들 출신이면서 은행가이면서 사업가면서 자신의 욕망과 야심에 사로잡혀서 어떻게 생각하면 나라를 통치하려고 세계를 통치하려는 권력의 욕심 야망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라고 욘을 소개했다. 극 중에서 욘은 자신의 의도가 선했기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는 "분명 잘못됐는데 꺾이고 싶지 않은 욕망을 되뇌면서 허풍이지만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어떤 의미로 봐서는 한국 남자의 가부장적, 권력지향적 허상적 면이 이 인물에게 녹아있다고 생각된다"고 현 시대의 한국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얘기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연극 '욘'에 출연하는 배우 정아미 [사진=세종문화회관] 2024.03.11 jyyang@newspim.com |
엘라 역의 정아미는 "어떤 캐릭터를 만들 때 모델은 있지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가까이에 결혼 안한 싱글 중에 조카 좋아하는 사람 많다. 결혼 안하고 애완동물을 키운다든가. 애착의 보상 심리를 한 곳에 모으는 사람이 있다"고 엘라의 특징을 얘기했다.
그러면서도 "모델은 일반적이지만 더 영혼을 넣어 매력적으로 인물을 만들어내느냐가 제 목표다. 일반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제가 갖고 있는 모자란 듯하면서도 동정심이 가는, 유머가 좀 있는 코드가 어떨까. 그래야 애정이 좀 가지 않나. 진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귀날을 연기한 이주영은 "욘이 감옥 간 8년, 골방에 있는 8년을 함께 겪은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갇혀있는 여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엔 사회생활을 할 수 없고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 왔고 모든 재산이 압류되고 언니에 의해 기생하듯 살아가는 여자. 내 것이 하나도 없고 전혀 독립적이지 못한 상황 속에서 살아간 여자다. 그러면서도 욘과 굉장히 비슷한 지점이 있을 것 같다. 명예와 권력을 가졌던 여자기 때문에. 그래서 아들에게 그렇게 집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연극 '욘'에 출연하는 배우 이주영 [사진=세종문화회관] 2024.03.11 jyyang@newspim.com |
이어 "오늘 보여주지 않았지만 이 인물이 많은 변화를 거쳐간다. 어떻게 세상을 향해 한 발을 내딛을 수 있을까. 언니가 죽어가고 아들과 남편이 없어질 때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중심을 갖고 변화가 생경하게 다가오는 상황에서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역할의 의미를 얘기했다.
이남희는 이 작품을 "가족 간의 싸움인데 뭔가 잘못돼있는 가족의 충돌"이라고 말했다. 그는 "끝끝내 싸우고 충돌을 놓지 않는. 처절한 막장 드라마 같은 느낌이다. 입센 작가가 쓴 것과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구현될까 했는데 막상 해보니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다. 언제 어디서도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굉장히 생물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소감을 말했다.
이승우는 "엘하르트는 수식어가 많은 인물이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조카. 무엇을 해야 하는 인물, 이런 수식어를 계속 벗어나려고 한다. 그냥 현재에 존재하고 싶고 살고 싶어한다. 동시대에도 같은 문제 같다. 난 뭘 해야 하고 뭘 하고 있고 어디 있는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뭘 해야 하거나 이루어야 하는 세상이 아니고 뭘 하고 싶은지 즐길 수 있는 것이 뭔지 찾는, 그런 세상을 원하는 사람에게 울림이 있는 연극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연극 '욘'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 [사진=세종문화회관] 2024.03.11 jyyang@newspim.com |
고선웅 연출은 "연극을 연출할 때 읽고 마음이 움직여야 할 수 있다. '욘'을 읽고 마지막에 울 정도로 감동이 있었다. 희곡 자체에서도 힘이 있다. 그런 작품은 나눠야 한다. 입센 작품을 처음 해보는데 많이 짓눌려있었고 압박이 있었는데 해보니 인물이 갖고 있는 역동성이 있다. 연출적으로 많은 텍스트를 전달하면 관객들이 지칠 것 같아 각색을 거쳐보니 편안한 드라마였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고 단장은 각색 과정에서 파격적인 재창조와 같은 과정을 염두해두지 않았단 점에서 구태의연하다는 지적에도 답변했다. 그는 "연극은 본질을 쫓아서 방황하는 거지 유행을 쫓아 표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끝으로 "맨 마지막에 욘이 엘라 손을 잡고 가는데 그 부분이 정말 매력적이다. 연출하면서 꼭 그 부분을 하고 싶었다. 입센이 마지막 유언을 주는 듯한, 굉장히 감동적이고 인생이 뭔지를 얘기하는 것 같아서 4막을 꼭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관람 포인트를 얘기했다.
올 첫 연극 '욘'은 오는 29일부터 4월 21일까지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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