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서 '아리아드네의 실'이란 제목으로 개인전 개막‥ 4월13일까지
-두터운 붓질로 그린뒤 스퀴즈로 밀어낸 추상연작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신민주(Shin Min Joo) 'Pandoras Curiosity',2023, Acrylic on canvas, 65x50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2024.03.08 art29@newspim.com |
[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폭발하는 붓질과 스퀴징의 작가 신민주(Shin,Min Joo b.1969)가 서울 삼청로의 PKM갤러리(대표 박경미)에서 지난 6일 개인전을 개막했다. 오는 4월 13일까지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신민주의 개인전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흥미로운 스토리와 접목한 신작회화 19점이 출품됐다.
신민주의 PKM갤러리에서 개인전은 이번으로 네번째다. 지난 2021년 이후 작가는 3년 만에 다시 PKM갤러리에서 신작을 선보인다. 이번 개인전에 신민주는 예측불허의 과감한 붓질로 '회화의 본질'을 탐구했던 그간의 작업에서 진일보해, 더욱 자유분방하고 역동성이 살아있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종로구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개막한 신민주 개인전 '아리아드네의 실' 전시전경. Courtesy of PKM Gallery. 2024.03.08 art29@newspim.com |
신민주는 일상 속 시시각각 마주하는 감각과 이미지를 호흡하듯 체화한 뒤 이를 두터운 붓질로 그려낸다. 그리곤 스퀴지(Squeegee)로 힘차고 속도감있게 밀어내는 반복적 행위를 이어간다. 그 결과 화면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에너지가 넘실댄다. 붓터치와 스퀴징으로 '그리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는 신민주의 표현주의적 작품에는 작업 앞에 당당하고자 한 작가의 기질과 삶이 녹아들어 있다. 또한 다채로운 색채와 격렬한 스트로크는무엇보다 '활기'(vigor)를 느끼게 하며, 신민주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전시타이틀의 '아리아드네의 실'은 그리스신화 속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크레타섬의 미노스왕은 자신의 왕비가 외도로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자 화가 치밀어 미궁을 만들었다. 그리곤 그 속에 괴물을 가둬버렸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신민주(Shin Min Joo), 'Paris Apple II', 2021, Acrylic on canvas, 73x53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2024.03.08 art29@newspim.com |
인간을 먹은 이 괴물에게 크레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는 인간제물을 바쳐야 했는데,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괴물을 처치하고자 미궁으로 향한다. 크레타에 도착한 테세우스를 본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첫눈에 반했고, 왕자가 미궁에서 살아나올수 있도록 실뭉치를 건넨다. 이에 테세우스는 실타래를 풀면서 들어갔다가, 괴물을 죽인 뒤 풀린 실을 따라 무사히 빠져나온다.
테세우스가 공주가 건넨 붉은 실타래를 따라 어두운 미궁을 헤쳐나왔듯, 신민주 또한 붓과 스퀴지, 물감과 캔버스를 실타래 삼아 고독하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라는 미궁을 진격하고 있어 이같은 타이틀을 붙였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신민주(Shin Min Joo), 'Prometheus Fire', 2023, Acrylic on canvas,100x80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2024.03.08 art29@newspim.com |
전시장에서 만난 신민주는 "어린 시절 집에 있던 그리스·로마 신화집을 읽었는데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워 던져버렸다. 그런데 몇년 전 이윤기선생의 책을 다시 읽으니 너무 좋았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알파와 오메가가 거기 다 있었다"고 했다. 특히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이야기에 매료됐다고 했다. 선생은 책에서 '신화는 미궁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지는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들고 빠져나온 것처럼, 저마다의 실타래로 상상력의 빗장을 풀고 미궁의 진입과 탈출을 이어가라'고 했다.
신민주는 "그리스신화에는 납득이 안가는 대목이 정말 많다. 비약과 반전이 하도 얼토당토 않아 혀를 차게 된다. 또 주인공들은 어쩌면 그렇게 (청개구리처럼) 말을 안 듣는지.. 그런데 신화를 곱씹다 보면 나 자신과 내 작업을 돌아보게 된다. 신화가 얼토당토 않듯, 내 작업도 애써서 붓질한 걸 스퀴즈로 갈아엎고 그 위에 다시 붓질하는 식이다. 틀에 가둬야 하는 것이라면 화가의 길을 안 택했을 거다. 그러니 내 작업이 바로 '미궁 속 헤매기'다"라고 했다. 미술계나 미술시장에서 원하는 '참하고 이쁜 그림'과는 아랑곳 없이, 스스로의 기질과 목표대로 거침없이 밀고나가니 신화 속 '제멋대로 인물'과 다를바 없다는 고백이다.
[서울 뉴스핌] 그리스 신화 전체가 불가사해한 '미궁'이듯 화가의 작업 또한 정답이 없는 세계를 찾아나서는 것에서 유사점이 많다는 작가 신민주. [사진=이영란 기자] 2024.03.11 art29@newspim.com |
작가는 "작품을 신화에 맞춰 작업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려놓고 보니 '인류의 사랑과 지혜'가 집대성된 그리스·로마 신화의 대목들과 부합되는 면이 많았다"며 옛 신화를 오늘의 감각과 조형언어로 새롭게 조명하며, 미래를 향한 생각의 단초를 관객들에게 펼쳐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3부작인 '그날 새벽, 트로이', '그날 밤, 트로이3', '그날 밤, 트로이2' 는 트로이를 향한 아킬레우스의 격렬한 복수심과, 오디세우스의 불타는 목마를 마치 관람자의 눈 앞에 펼쳐놓은 듯 강렬하다. 솟구치는 뻘건 불길과 연기가 뿌옇게 번지듯 신민주의 힘찬 붓질과 속도감있는 스퀴징의 흔적은 화폭에 신비로운 이야기를 드리우며 관람객을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를 은유한 작품 중에는 하늘서 내리꽃히는 불도 있고, 하강하는 불도 있으며 정지된 불도 있는 등 다채롭고 색채 또한 변화무쌍하다.
프쉬케와 에코가 끝까지 거두지 못한 호기심과 사랑, 황금사과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파리스와 트로이, 그리고 테세우스와 프로메테우스가 감내한 형벌의 고통이 신민주의 격렬하고도 압도적인 추상화 속에 소용돌이 치고 있어 감상의 묘미를 더한다.
신민주는 말한다. "나의 감각을 믿고 캔버스를 마주한채 전투하듯 칠하고 스퀴징한다. 파격적이고 자유롭게. 인생에서 내가 무얼 파격적으로 갈아엎을 수 있겠는가? 오로지 작업에서만 가능하다"며 "예술철학이 뭐냐고 묻는데 솔직하게 내 기질대로 작업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예쁘게 표준화된 아름다움 말고, 어디서 본 듯한 거 말고, 나다운 것, 내가 설득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산(山)을 좋아한다는 신민주는 그러나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내 식대로 자연을 그려보자'며 그린 그림이 있다. 새 순이 돋는 나무들의 푸르름이 어우러진 '하마드리아스(나무요정)-3님프'다. 보통은 붓질로 그린 그림을 스퀴즈로 밀고, 다시 물감을 도포하는데 이 그림은 스스로 청량한 공기에 설득됐다고 한다. 여린 나뭇잎들의 속삭임이 들리듯 사랑스럽고 리드미컬해 기존 작업과 결이 다르다. 허나 신민주다운 붓의 스트로크와 개성은 저변에 깔려 있다.
신민주는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일민미술관, 금호미술관, 한원미술관 등 국내 유수의 미술관에서 단체전과 개인전을 가졌다. 한편 PKM갤러리는 '2024 화랑미술제'(4월3~7일 코엑스)에 신민주 작품으로 솔로부스를 꾸며 이번 전시와 연계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