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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의 통화전쟁]⑤'탈 달러' 현상에 편승한 위안화 파고들기

기사입력 : 2023년09월29일 08:00

최종수정 : 2023년10월03일 11:35

이철환 금융연구원 비상임 연구위원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기축통화로 역할해 온 미국 달러화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다. G2로 성장한 중국의 위안화가 급부상했고, 암호화폐가 기존 통화의 대체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이철환 금융연구원 비상임 연구위원의 기고 연재를 통해 통화전쟁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한다.  

이철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전쟁이 심화하고, 또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이후 강달러 혹은 '킹달러(King dollar)'현상이 이어지자 '탈(脫)달러(de-dollarization)' 현상이 고조되고 있다. 반면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중국 위안화가 그 빈자리를 빠르게 파고들면서 위안화의 부상과 국제화가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탈달러의 기폭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이후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로부터 강력한 금융제재 조치를 받으면서 비롯되었다. 이후 다수의 국가, 특히 반미성향의 국가들은 이런 상황이 자신들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탈달러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되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탈달러 현상은 비단 반미성향의 국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해진다. 미국이 팬데믹 기간 동안 늘어난 과잉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2022년부터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해오는 과정에서 빚어진 강달러 현상이 탈달러 현상과 위안화 부상을 더욱 부추기는 형국이다.

[격랑의 통화전쟁] 글싣는 순서

1. 미국 경제력과 달러패권의 위상
2.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와 부채한도 증액
3. 반복되는 금융위기
4. 중국경제력 확대와 위안화 상승
5. '탈달러' 현상에 편승한 위안화 파고들기
6. 유로화, 존재감 약한 2위 기축통화
7. 아베노믹스의 명암
8. 암호화폐의 기축통화 가능성과 미래
9. 달러패권의 시대는 저무는가
10. 위안화가 달러를 넘어서기 어려운 이유

강달러가 신흥개도국들의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무역수지 적자와 외환보유고 감소를 초래하게 되었다. 또 높은 금리를 찾아 그동안 유입되었던 핫머니들이 다시 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자본이탈 현상도 벌어졌다. 이에 달러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위안화를 대체통화로 선호하는 국가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미국 최우방국인 이스라엘마저도 2022년부터 외환보유고 중 미국 달러의 비중을 줄이고 중국 위안화를 최초로 편입하였다.

탈달러 현상과 위안화 몸값을 높인 결정적 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미국은 러시아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국제지급결제망인 SWIFT(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에서 배제해버렸다. 그 후유증으로 러시아 은행에서 예금 인출이 몰리고, 달러화 환전이 많아지면서 루블화의 가치는 폭락했다. 사실 러시아는 300개 넘는 은행이 SWIFT에 가입해 있고, 미국 다음으로 SWIFT 결제 건수가 많은 나라이다.

SWIFT로 불리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는 금융기관이 서로 정보교환을 통해 안전하게 금융거래와 결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도의 보안을 갖춘 전산망이다. SWIFT는 1973년 서방 10개국의 은행이 국경 간 결제와 청산을 위해 설립한 민간 조직으로, 본사는 벨기에에 있다.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1만 1천여 개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결제망이다.

그런데 이 SWIFT가 강력한 경제제재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SWIFT 배제는 세계 금융시장과 무역거래에서 차단된다는 의미인데, 이는 국가 간 금융이 막히면 무역거래 자금결제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란도 2012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중앙은행을 비롯해 주요 은행이 SWIFT에서 차단되어 석유 수출대금을 받지 못하고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등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미국은 SWIFT 자료를 바탕으로 불법 자금세탁 등을 이유로 계좌를 동결하거나 달러 자산을 압류할 수 있다. 또 핵무기 개발이나 테러 지원 등의 혐의를 받는 국가를 제재하면서 그 자산을 동결하기도 한다.

서방국가의 금융제재에 반발한 러시아는 미국 달러와 유로화에서의 탈피를 감행하고 있다. 대신 중국 위안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 또한 상대적으로 저렴한 러시아산 에너지를 도입하면서 일부를 달러 대신 위안화와 루블로 결제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 통계에 따르면 전쟁 이전만 해도 러시아 수출대금에서 0.4%에 불과하던 위안화 결제 비중이 2022년에는 16%로 증가했다. 반면, 50%를 초과했던 달러화 결제 비중은 30%대로 축소되었다. 아울러 수입 결제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4%에서 23%로 대폭 치솟았다.

또 2023년 2월 모스크바 외환거래소의 위안화 거래량이 약 1조 4,800억 루블(약 25조 원)로, 위안화 비중이 달러를 제치고 1위로 부상했다. 위안화 거래량은 전월 대비 30% 이상 증가하며 러시아 외환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육박했으며 달러는 약 38%, 유로화는 21.2%를 기록했다. 2022년 2월 러시아 외환 거래에서 달러 비중이 87.6%, 유로화 11.9%를 차지했던 반면, 위안화는 0.32%에 불과했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러시아는 위안화 자산투자도 늘릴 계획이다. 2022년 말 러시아 재정부가 제정한 자산배분 방안에 따르면 러시아 국부펀드(National Wealth Fund)는 달러 표시 자산에 투자하는 대신 위안화 자산 투자한도를 종전 30%에서 60%로 늘렸다. 아울러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3월 중-러 정상회담 직후 "러시아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와의 결제에서도 위안화 사용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위안화의 영향력은 남미대륙에서 한층 더 확대하는 모습이다. 남미 최대의 경제 대국인 브라질이 위안화 사용을 공식화하면서 그 영향력은 더 커지고 있다. 중국은 14년 연속 브라질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2022년 양국 교역액은 1,505억 달러에 달했다. 2023년 4월 룰라(Lula) 브라질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에 맞춰 양국은 기존 달러 대신 위안화와 브라질 헤알화(BRL, Real)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상하이 신개발은행에서 "왜 우리는 자국 통화로 무역할 수 없는가? 달러가 세계무역을 지배하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국과 브라질의 탈달러 밀착을 보여주는 상징적 연설이었다. 두 나라는 양국 간 교역과 금융거래에서 달러 대신 위안화와 헤알화를 이용하고, 달러 결제망인 'SWIFT' 대신 중국이 만든 금융결제망 'CIPS'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아르헨티나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보유 달러 고갈에 직면한 아르헨티나 정부가 위기극복 방안으로 중국산 수입품 결제에 위안화를 활용하기로 했다. 아르헨티나는 2022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자국 통화 페소(peso)화 가치가 폭락하였다. 이에 국민들은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사들였고, 주력상품인 농산품 수출까지 줄면서 보유 외환보유고가 급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아르헨티나는 그 조건으로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한 일정 수준의 외환보유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런데 중국 수입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면 보유 달러화의 고갈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효과를 낸다. 중국과의 교역에 위안화 활용 결정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조치이다. 이외의 중남미 국가 중 칠레는 2012년부터, 볼리비아는 2018년부터, 쿠바는 2022년 12월 1일부터 무역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고 있다.

아시아 대륙에서도 위안화 사용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우선, 인구가 많은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이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2022년 9월부터 위안화 무역결제를 허용하고 있다. 또 러시아와 방글라데시에서 건설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합의했다. 파키스탄도 중국과 FTA를 체결한 이후 2023년 1월부터 위안화 무역결제를 허용했다.

동남아에서는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위안화 무역결제를 허용하고 있다. 태국은 2013년부터 중국과의 무역에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고 있으며, 2021년 1월에는 '위안-바트(Bath)' 통화 스와프 협정도 갱신했다. 베트남은 2015년부터, 인도네시아는 2016년부터, 말레이시아는 2017년부터 중국과의 무역에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3년부터 위안화 무역결제를 허용하고 있다.

중동 국가에서도 탈달러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중동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반면, 중동 국가들과의 각종 경제 협력을 앞세운 중국의 영향력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틈을 파고들면서 기존의 원유거래 결제 달러 독점 공식을 균열시키고 있다. 대신 양국은 위안화 거래를 늘려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는 '페트로 위안'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한편, 중국도 탈달러(de-dollarization)의 한 방편으로 미국 국채 보유량을 계속해서 축소하고 있다. 중국은 3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 중에서 상당 부분을 미국 국채를 비롯한 달러 자산으로 운용하고 있다. 실제 수년 전까지 중국은 세계 1위의 미국 국채 보유국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2019년부터 꾸준히 미국 국채 보유액을 줄이고 있다. 이유는 대만 문제, 기술 전쟁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데서 비롯되었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후 미국으로부터 당한 금융규제는 치명적인 반면교사가 되었다.

중국 보유 미국 국채 규모는 2010년 6월에 1조 달러를 돌파한 이후 10년 넘게 1조 달러를 웃돌았다. 2013년 11월에는 최고치 1조 3,167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2022년 4월에 1조 달러 선을 깨뜨린 이후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2022년 한해에만 1,732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2023년 3월의 중국 보유 미국 국채 규모는 최고점보다 약 4,500억 달러가 줄어든 8,693억 달러였다. 이는 외환보유고 3조 1,839억 달러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참고로 2023년 3월 기준 미국 국채 최대 보유국 순위는 1위 일본 1조 877억 달러, 2위 중국 8,693억 달러, 3위 영국 7,140억 달러, 4위 벨기에 3,365억 달러, 5위 룩셈부르크 3,286억 달러 순이다. 우리나라는 1,140억 달러로 18위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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