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사 조치로 분쟁 조정 절차 보류
조정 절차 외 피해자 구제 방안 안보여
최대 40% 피해자 아무 조치 못 받아
[서울=뉴스핌] 이석훈 기자 = "(피해자를 위해) 필요한 조치 취한 것으로 생각해달라."
지난 4일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라임펀드 재조사 관련 "천문학적 피해 입은 피해자에 대한 통상적 조치인가"라는 최승재 국민의 힘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석훈 금융증권부 기자 |
또 지난달 24일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자산운용에 대한 추가검사 내용을 발표하면서 '투자자 피해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그런데 피해자 구제를 내세운 금감원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피해자 구제책에는 피해자 의견이 반영돼야 하는데, 이번 재감사 조치는 피해자의 요구사항과 정반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신속한 피해 보상'을 말했다. 억 단위의 피해를 입은지 4년이 지났음에도 실질적 피해 보상조차 받지 못한 데에 대한 성토다.
피해자 보상에 관한 가장 최근 자료는 지난 윤주경 의원실에서 지난 3월에 배포한 '사모펀드별 분쟁조정 신청현황'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사모펀드 분쟁에 관련한 민원 총 2604건 중 아직 처리 중인 건은 1055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최대 40%의 피해자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구제를 받지 않았을 수 있다.
라임펀드 관련 분쟁조정위원회도 지난해 11월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금융감독원은 이에 대해 "지난 5월 9일에도 한 차례 열렸다"며 해명했지만 판매사나 펀드 종류 등 세부적 사항이 공개된 것은 작년 말에 열린 것이 마지막이다.
설상가상으로 금융감독당국의 재검사는 분쟁조정과 피해자 구제 절차 시기를 늦출 것으로 보인다. 현행 금융감독원 체계상 분쟁 조정과 구제 조치를 논의하려면, 해당 불공정 거래에 대한 제재가 선행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탓이다. 재검사가 진행되면서 제재 절차가 진행되는 것도 연기됐다. 재검사 결과에 따라 제재 내용과 대상이 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재검사에 들어간 건에 관해서는 제재 절차 진행이 일시 정지됐다"며 "재검사가 끝나기 전에는 제재를 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즉, 재검사로 인해 분쟁조정과 제재조차 미뤄진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라임펀드 사기 피해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햇수로 벌써 4년이 됐는데 아직 받지 못한 금액이 4억원 가까이 된다"며 "현재 이복현 금감원장님은 검사 출신이기 때문에 신속한 피해 구제를 해주실 거라 기대했는데 이제는 진짜 포기해야 하는가 싶다"고 토로했다.
당국은 이러한 사실을 감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피해자 구제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신속하고 확실한 제재 추진 외에는 실질적 피해자 보상안을 수립하지 않은 상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당국은 야권 의원의 특혜성 의혹에 대한 논쟁만 벌이고 있을 뿐 피해자 구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며 "분쟁 조정 열리지 않은 것에 대한 정쟁만 계속하니 피해자 입장에서는 절망적"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당국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재검사는 미래의 자본시장을 위해서 개선돼야 한다. 자본시장은 원칙적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먹고 성장하는 곳이다. 미래 투자자들은 소극적으로, 자본시장은 위축적으로 변할 게 뻔하다.
다행인 점은 분쟁 조정이 열리지 않은 건에 대한 직권적인 계약 취소 등 피해자 구제를 위한 선택이 남았다는 사실이다. 김 대표는 "아직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도 당국 측에서 계약 취소를 논할 수도 있다"며 한 피해자도 "아직 피해 보상과 사태 해결에 대한 당국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야말로 당국이 이러한 피해자의 기대에 '확실한 제재와 실질적 보상안'으로 응답할 때다. 이것이 진정으로 '피해자에게 필요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stpoemseo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