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번 작품을 보신 분들이 '내 이야기 같다'라는 말을 해주시는데, 그 말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너무 현실 같아서 공감이 된다고 하시는데 씁쓸했죠."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잔혹한 인턴'이 경력단절이 된 직장인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번 작품에서 배우 라미란이 직장과 단절된 지 7년 만에 인턴으로 복직한 40대 경력단절녀(경단녀) 고해라를 연기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배우 라미란 [사진=티빙] 2023.09.08 alice09@newspim.com |
"이번 작품을 하면서 경력단절에 공감을 많이 했어요. 배우라는 직업 역시 작품이 없을 때는 백수니까요. 저 역시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2년간의 공백이 있었어요. 다시 일을 하고 싶은데 하루 종일 아기만 봐야 하고. 당시에는 무대 공연을 하고 있었을 시기였는데 '누가 날 불러줄까?' 싶더라고요. 일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죠. 연기라는 걸 죽을 때까지 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가면 아예 못하겠구나 싶어서 두렵기도 했고요. 일을 하니까 안정이 되더라고요(웃음)."
작품 속 라미란이 맡은 고해라는 '독종 워커홀릭'으로 최고의 MD로 승승장구한다. 그렇기에 회사에서 제안하는 '임신포기각서', '육아 및 출산휴가 거부' 등 부당대우에 수긍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잔혹했던 고해라는 7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직장에 뛰어들고, 인턴으로 돌아오게 된 그는 과거와 180도 다른 모습으로 비춰진다.
"7년 전후로 해라가 많이 달라지죠. 이 부분에 대해 감독님과 작가님과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했어요. 7년 전에 해라와 지금의 해라는 일에 대한 열정은 같아요. 상황이 바뀐 것뿐이죠. 당시 해라는 각서를 쓰고도 승진하고 싶을 만큼 일에 간절했던 거였다고 생각해요. 나쁜 사람이 라서가 아니라, 정말 똑같이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집과 아이를 핑계로 일을 못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거죠. 해라는 애가 다치고 아파도 일을 우선으로 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었던 거고요. 해라가 육아를 하고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껍데기가 많이 벗겨졌다고 생각해요."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배우 라미란 [사진=티빙] 2023.09.08 alice09@newspim.com |
7년이 지났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일에 대한 욕심'이다.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전 회사 동기 최지원(엄지원)으로부터 인턴직을 제안 받는다. 그러다 출산과 육아 휴직을 앞둔 팀원이 퇴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지원의 은밀한 제안을 수락하기도 한다. 이를 성공하면 '과장'으로 승진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껍데기를 벗은 고해라는 이내 죄책감에 휩싸인다.
"해라에게 변하지 않는 게 바로 자존심, 자존감이더라고요. 그래서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할 때,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인물 같았어요. 예전에는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는 것이 정의였지만, 지금의 해라는 인생의 풍파를 겪고 삶의 가치관도 부드러워지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된 거죠."
총 12부작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 각 회차에는 부제가 있다. 1회의 부제는 '잔혹한 인턴의 시발'이며, 4회는 '경력단절의 시발'이다. 각 회차가 '~시발'로 끝나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 감독님한테 부제를 제안했어요. 초안을 받았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해라가 나오니까 너무 숨이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죠. 작품에 금소정(김혜화) 과장, 박승주(박경리) 주임, 이문정(이채은) 대리 이야기가 나오는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부제들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던 거죠. 초등학교 아이를 둔 워킹맘 금 소장의 이야기, 출산을 앞둔 이 대리, MZ세대 박 주임, 만년 과장 제섭(김인권)까지요. 그런 이야기를 다채롭게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또 부제만 들어도 작품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웃음). 그래서 제안을 했던 거죠."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배우 라미란 [사진=티빙] 2023.09.08 alice09@newspim.com |
워킹맘이라면,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잔혹한 인턴'에 나온다. 출산과 육아로 휴직을 하는 사람들의 몫까지 채워야 하는 직원들, 긴 공백 동안 자리를 비워야 하는 워킹맘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불안까지. 그렇기에 이번 작품은 많은 연령대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너무 '내 이야기 같다'라는 말이 슬프더라고요. 좋은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시면 좋을 텐데, 이건 너무 현실 같아서 공감이 된다는 말을 듣고 너무 씁쓸했어요. 작품의 재미를 떠나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됐으면 좋겠더라고요. 공감된다는 말이 씁쓸했지만, 보시는 분들이 그래도 '잔혹한 인턴'을 통해 조금은 힘이 됐겠구나 싶어서 좋기도 했어요."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로 매체 연기에 데뷔한 라미란은 이후 쉴 틈 없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 그리고 OTT를 넘나들며 매 작품을 통해 새로운 매력을 하나씩 선보이고 있다.
"시나리오나 대본을 봐도 아직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하하. 개인적으로 흥미를 못 느낀 작품이 잘 된 경우도 있었고, 흥미가 있었는데 잘 안 된 적도 있고요. 그래서 '내가 보는 눈이 없구나' 했죠(웃음). 개인적으로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재미인 것 같아요. 여성의 경력단절, 각종 사상은 아무 상관없어요.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큰 포부도, 주제의식도 없어요. 그저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 그게 전부입니다."
alice0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