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세종문화회관(사장 안호상) 서울시극단(단장 고선웅)이 오페라, 뮤지컬로 유명한 '카르멘'을 연극으로 각색해 선보인다. 정통 연극의 대사와 형식을 가져오면서도, 현대적인 감성과 해석을 더했다.
8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카르멘'의 전막시연이 진행됐다. 시연 이후 기자간담회엔 고선웅 단장과 배우 김병희, 서지우, 최나라, 강신구가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연극 '카르멘'의 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2023.09.09 jyyang@newspim.com |
이날 공개된 연극 '카르멘'은 무대 중앙에 투우장을 연상시키는 원형 구조물을 중심으로 인물들이 사건과 각자의 관계 설정을 거쳐가며 조금은 익숙한 작품을 새롭게 펼쳐냈다. 돈 호세 역의 김병희는 단단하던 군인이 카르멘을 만나 내면이 부서져가는 과정을 그려냈고, 카르멘은 가냘픈 체형임에도 중성적인 목소리와 단단한 표현으로 꺾이지 않는 캐릭터를 빚어냈다. 귀를 두드리는 열정적인 라틴풍 멜로디와 최나라, 강신구 등의 열연도 인상적이었다.
고선웅 단장은 워낙 유명한 작품을 새로이 각색, 연출하며 "이 작품을 처음에 하겠다고 맘 먹었을 때 돈 호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게 중심 감정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없었고 바람직해보이지 않아서 그걸 보여주려 했다. 카르멘은 그렇게 큰 잘못이 없었다는 마음을 관객들이 보시고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카르멘'의 기획 의도를 얘기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연극 '카르멘' 프레스콜에 참석한 고선웅 단장, 배우 김병희, 서지우, 최나라, 강신구 [사진=세종문화회관] 2023.09.09 jyyang@newspim.com |
돈 호세 역 김병희는 카르멘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붙잡을 것이라곤 카르멘 하나밖에 남지 않아 사랑이 결국 집착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연기했다. 그는 "사랑이라고 하면 상대를 아껴주고 귀히 여겨주는 거라는 의미가 있는데 돈 호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진정한 사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개인적으로 이 인물이 이엏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집중하다보면 연민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르멘을 연기한 서지우는 끝없이 자유를 갈망하고 즉흥적인 감정에 매달리지 않는 여자다. 어려운 댄스 장면부터 타이틀롤을 맡은 부담까지 짊어졌던 그는 "자유에 대해서 제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많이 알아보고 깨달으려고 노력했다. 잘 표현되고 전달되길 바랐다. 춤이 좀 어려웠다"면서 웃었다.
연극 '카르멘'은 마치 시의 한 구절같고, 노래 가사 같기도 한 비일상적인 연극 대사로 이루어져있다. 고 단장은 "원랜 뮤지컬용 대본처럼 돼있는데 연극으로 하다보면 대사로는 말로 했을 땐 맛이 없고 뮤지컬화하다고는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조금 더 경제적이면서 시처럼 낭송을 하는 것처럼 예스러운 연극의 맛도 나고 문학적인 느낌을 관객들에게 주면 고상한 느낌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연극 '카르멘'의 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2023.09.09 jyyang@newspim.com |
돈 호세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믿음을 보여준 미카엘라 역은 최나라가 연기했다. 그는 "맡은 역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는데 내가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공감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서도 "남녀를 떠나서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믿음, 변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다가가니까 지금 시대에 더 필요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고선웅 연출의 '카르멘'은 돈 호세의 어긋난 집착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유를 갈망하는 카르멘의 죄책감을 상당 부분 덜어준다. 카르멘 스토킹 피해자로 묘사한 것에 대해 그는 "2000년 즈음, 아주 옛날에 구상한 작품이다. 극단적으론 전세기적 인간이 있고 후세기적 인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변혁의 시기에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과 구속하는 사람의 충돌을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초기 기획 의도를 얘기했다.
이어 "작년에 작품을 세팅하면서 지금 세상에 다시 한 번 하기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연극이 갖고 있는 본연의 연극적인 생각이 재래연극처럼 고전이 갖고 있는 현대적 의미를 여전히 담은,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이 작품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 [사진=세종문화회관] 2023.09.09 jyyang@newspim.com |
극의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원형 무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고 단장은 "여러 장면 전환도 많고 공간 변화가 많아 고민 많이 했는데 결국은 투우장이 가장 어울린단 생각했다"면서 "이 공간 안에서 투우를 하고 때에 따라선 시계로 보이기도 하고 원심력, 구심력을 돌면서 표현할 수 있어서 힘의 관계로 풀고자 했다. 안쪽에선 투우가 벌어지고 있고 밖에선 돈 호세와 카르멘이 투우처럼 관계를 맺고 있어서 이 구상이 바람직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극단이 연극 '카르멘'을 선보이는 동시에,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종썸머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서울시오페라단도 '카르멘'을 야외 오페라로 선보인다. 고 단장은 "처음에는 중복되니까 좀 걱정됐지만 얘기를 해보니까 오페라로 또 연극은 다르게 보여주면 좋겠다 싶더라. '카르멘' 심화주간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서울시극단의 '카르멘'은 8일부터 오는 10월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