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업 금지 1년 조항...법적 근거로 활용 가능
"허물어진 업계 간 경계로 유사한 사례 많아져"
[서울=뉴스핌] 조수빈 기자 = 지난 4월 정석근 전 네이버 최고전략책임자(CSO)가 SK텔레콤 글로벌·AI 테크 사업부로 간 이후 리더급 5명이 연달아 SK텔레콤 이직 의사를 밝힌 가운데 네이버가 강경 대응에 나섰다. 통신사가 인공지능(AI) 사업을 비롯한 비통신 사업에 진출하며 과거 통신업계로 한정됐던 스카우트 갈등이 IT 업계로 확대된 모습이다.
국내에서 개발된 초거대AI 모델로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를 비롯해 LG의 엑사온(EXAONE), 카카오의 카카오GPT·Karlo, KT의 믿:음, SKT의 에이닷(A.) 등이 있다.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3.04.17 biggerthanseoul@newspim.com |
22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지난 15일 SK텔레콤에 'AI 인재 스카우트를 중단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해당 내용증명에는 정 전 총괄(네이버 클로바 CIC 대표)을 SK텔레콤 미국 법인 대표로 채용한 점, 네이버 측 인공지능(AI) 전문가들을 잇따라 빼가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는 점,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이 명시됐다.
네이버는 내용증명 발송 이후 10일 내로 SK텔레콤의 답변을 요청했고 SK텔레콤 인사 담당자가 당일 만남의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측은 원만한 해결의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지만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도 고려한다고 전했다. SK텔레콤 측은 "고의적 인력 빼가기는 오해"라며 "소통을 통해 원만한 해결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SK텔레콤과 네이버 모두 현재 협의 진행 과정에 대해서는 "현 시점에서 공유하기 어렵다"며 답변을 아꼈다.
◆경업 1년 이내 금지 명시...소송 시 발목 잡을 수도
네이버가 문제 삼은 것은 업무 위임 계약서 상의 경업 금지, 부정경쟁방지법 등의 법령 위반 행위다. 네이버 측은 "정 전 총괄의 계약서에는 경업금지 1년 조항이 들어있다. 정 전 총괄 이직에 이어 리더급 5명이 SK텔레콤의 이직 제안을 받고 이동하려는 정황을 파악한 이후 더 이상의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대응을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총괄은 2021년 네이버 클로바 CIC 대표 근무 당시 초거대 AI 모델 '하이퍼클로바' 개발의 핵심 인력이었다. 올해 4월 초 SK텔레콤 아메리카 대표로 이직했고 두 달도 안 돼 본사 글로벌·AI 테크 사업부 수장이 됐기에 경업 금지 1년 계약은 어긴 상태다.
이는 지난 2013년 KT가 김철수 전 LG유플러스 고문을 영입한 과정과 유사하다. 당시 LG유플러스는 KT로 이직한 김철수 부사장에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서약서에 쓴 대로 LG유플러스 퇴직 1년 후까지 KT에 계약 체결 방법으로 노무를 제공하면 안된다"고 결정했다. 법원 소송까지 갈 경우 SK텔레콤에 불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선례로 꼽힌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업계에서 우려하는대로 AI 업계 임원 이직이 무조건적인 기술 유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동종업계 이직 조항에 대해서는 다툴 요지가 있어 보인다. 통신과 IT는 다른 영역이지만 AI라는 교집합이 생겼다. 그래서 이직자의 핵심 역량이 AI이라면 동종업계로 묶일 가능성도 있다. 이번 상황은 AI 인력의 질적·양적 부족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통신사의 비통신 사업 확장 등으로 인해 네이버와 같은 테크기업까지 동종업계로 묶이며 임원 스카우트 갈등의 파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AI 인력 영입 시 이직 관련 계약사항 검토도 강화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내용증명을 네이버가 내외부에 던지는 경고장으로 해석하고 있다. 차세대 초거대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의 출시가 7~8월으로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핵심 인력이 빠지게 되면 서비스 출시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미 네이버는 지난 인력 유출 이후 서비스 출시를 한차례 연기한 바 있다. 내부에 네이버가 이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음을 전달해 내부 인력의 추가적인 유출을 막고 외부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한 관리의 일환으로 보인다.
IT 업계에서 인력 이동은 흔한 일이지만, 네이버의 사례로 보듯 '팀 단위 이동'으로 번지는 것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을 비롯한 IT 업계에서는 팀 전체를 채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대기업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쉽진 않겠지만, 개발 담당자 한 명만 나가도 그 서비스를 바로 이어받을 수 있는 개발자 채용이 힘든 상황에서 연달아 리더급이 나간 네이버의 대응이 결코 과하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bean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