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스토리는 내가 짤게, 글씨는 누가 쓸래?"
1990년대 인기를 구가한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속 이 대사는 종방 20년 만에 유행어가 됐다. 극중 미달이 엄마가 가족들과 함께 미달이의 방학 숙제를 급하게 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내뱉은 말이다. '스토리를 구상하겠다'하고는 이 작업과 이어지는 글쓰기는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미루는 듯한 태도가 웃음 포인트다. "퇴근은 내가 할게, 출근을 누가할래?" "술은 내가 먹을게, 술값은 누가 낼래?" "채팅그룹은 내가 열게, 조모임은 누가 할래?" 등 명대사 패러디가 온라인에서 밈으로 확산됐다.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은 만만찮다. 문제는 작업을 한 사람에게 제대로 된 성과와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다. 돈 버는 사람 따로, 현장에서 피땀 흘리며 시간과 공들여 만든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은 따로다. 미달이 엄마의 대사를 인용해 콘텐츠 업계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돈을 내가 벌게, 콘텐츠는 누가 만들래?"격이다.
제작사의 수익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고 해도 콘텐츠 제작업계는 지식재산(IP)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제작하는 이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스토리 구상, 섭외, 촬영, 편집 등 몇 년을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제작한 콘텐츠의 수익은 배급하는 유통사에게 모두 돌아간다. 제작사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문체부 전병극 차관이이 주재한 '제2차 콘텐츠 수출대책회의'에선 콘텐츠 업계를 위한 세제 혜택을 마련하겠다고 해도 참가한 일부 제작사는 볼멘소리를 냈다. "세금을 내고 싶어도 낼 세금이 없다. 혜택 받을 세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 세계적 열풍을 모은 '오징어게임' 역시 제작사는 돈을 못 벌고 이를 유통한 넷플릭스가 돈을 버는 구조로 계약이 이뤄졌다. '오징어게임'에 약 200억~250여억원을 투자한 넷플릭스는 1조원이 넘는 수익을 가져갔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특성을 가지는 콘텐츠 분야의 투자 상황은 쉽지 않다. 넷플릭스는 수익도 손해도 모두 감수하고서 '오징어게임'을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원작자의 저작권 권리는 부족했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검정고무신' 작가 고(故) 이우영의 죽음도 그저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원작자의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현실을 고증하기 때문이다. '검정고무신'은 국내 최대 연재작이며 KBS에서도 방영된 '국민 만화'다. 이 작품 원작자는 자신의 캐릭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계약으로 소송을 하다 결국 51세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현재도 소송은 진행중이며 만화업계와 웹툰계는 더이상의 '검정고무신' 사태는 없어야 한다며 작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수습에 앞장서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은 일어나고 있다. 문체부는 콘텐츠 업계의 지식재산(IP) 보호를 위해 계약 사항에 최소 OTT와 제작사가 공동 소유라는 조건으로 계약한 콘텐츠에 투자하는 'IP펀드'를 1500억원 조성을 목표로 신규 조성했다. 또한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막기 위해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이용 허락 표준계약서를 제정하고 문화산업 공정유통 및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 제정에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해결책은 마련돼야 한다. 그것이 정부 역할이다.
국내 기업은 해외에 비해 거대 자본으로 콘텐츠 투자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국내 굴지 대기업도, 제작사들도 '한없이 작은 규모의 투자와 기업의 협력으로 이뤄진다'라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다해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이 현장에서 뛰고 있다. 최근에는 웹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를 얻고 혹은 그 반대로 2차 저작물로 제작되기도 한다. 이는 흥행 공식으로도 통하고 있다. 이에 더 많은 원작을 기반으로 한 2차 콘텐츠가 제작이 활성화 될수 있다는 것이다. 원작자도 2차 저작물도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와 제도가 단단해져야 하며 창작자도 이에 대한 정보가 충분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힘든 경제 상황에 지속적인 경제 불황에서 한국 콘텐츠업계가 거둬들인 성과는 막대하다. 코로나로 전 세계의 경제가 무너졌던 2021년 콘텐츠 산업군은 가전제품과 2차전지, 디스플레이 패널의 수출액을 뛰어넘었고 세계 경기침체 상황에서고 9.0%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계는 "반도체보다 우리가 떨어지는 게 없다. 하지만 그만큼의 대우와 성과는 없다"며 답답해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콘텐츠 산업계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인정하며 K 콘텐츠의 해외 경쟁력은 확보됐으니 수출 판로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K콘텐츠의 저작권 보호, 원작자 보호 정책이 강화되지 않으면 K콘텐츠의 미래는 없다. 이제 더이상의 죽음은 없어야 한다. 원작자의 저작권 보호 대책도 더이상 미루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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