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컴퍼니 이용 거래 업체에 허위 선급금 지급
"대부분 회수·회사 합의 여지 등 고려"…구속 면해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업무상 실수 등으로 인한 손실금을 메우기 위해 허위 계약서를 만들어 회삿돈 약 97억원을 지급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대기업 직원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노호성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A(47)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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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로고[사진=뉴스핌DB] |
B회사에서 비료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던 팀장 A씨는 2014년 10월~2018년 7월 거래 상대방 업체들과 허위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으로 회사가 미화 874만2300달러(당시 한화 약 97억2770만원)를 지급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범행은 2014년 10월 중국에 있는 비료 원료 공급업체 C사와의 계약 과정에서 시작됐다. 그는 C사로부터 비료 원료를 공급받기로 협의하고 회사에 단가를 보고했으나 C사가 단가를 높여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회사에 보고하지 않고 추가로 지급할 대금을 충당하기 위해 허위의 구매계약서를 만들어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계약서에는 구입 대금 총액의 15%를 선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A씨는 업무상 과오로 인한 클레임이나 단가 차이에 따른 계약 손실금을 소위 '돌려막기'하기 위해 같은 방식으로 회사가 거래 업체들에 선급금을 송금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수수료 1~2%를 지급하고 실제 거래 업체 대신 페이퍼컴퍼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A씨 측은 재판에서 페이퍼컴퍼니에 지급된 수수료를 제외한 돈은 다시 회사나 회사의 해외 법인으로 송금됐고 물류비 등에 충당됐다며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회사는 선급금을 지급해야 할 아무런 필요가 없었고 선급금을 상대방 업체에 지급하는 이상 돈이 나중에 어떻게 사용되는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손해 또는 손해 발생의 위험이 발생한다"며 A씨에게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돼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설령 피고인이 처음부터 편취한 돈을 회사 또는 해외 법인에 반환하거나 업무 관련 운송비 지출 등에 사용하려 했다 하더라도 사기 범행으로 일단 취득한 재물 내지 재산상 이득을 사용·소비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며 "피고인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당한 액수의 부외(簿外) 자금을 조성·관리했음에도 그 지급 배경과 사용처 및 상대방 등에 관해 일관성 있는 설명과 객관적인 증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회사가 전혀 체결한 바도 없는 계약을 체결한 것처럼 다른 임직원들을 기망해 회사로 하여금 선급금 명목으로 제3자에게 돈을 송금하게 했다"며 "그 과정에서 거래관계가 없었던 회사가 동원되기도 했고 계약서가 허위로 작성되는 등 범행의 방법이 상당히 나쁘고 편취 금액이 거액이라는 점에서 범행의 결과 또한 무겁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A씨가 범행 일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점, A씨가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직접적인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는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 점, 편취금의 상당 부분이 회사 또는 회사의 해외 법인 등으로 회수됐고 나머지 금액 중 일부도 실제 회사를 위해 사용된 점 등을 양형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A씨와 회사의 관계 및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고려할 때 A씨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높지 않고 회사와의 합의 여지가 있다며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