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중국 문화

속보

더보기

톈스커(田世科), 바늘과 실로 아름다움을 수놓다

기사입력 : 2022년12월15일 16:22

최종수정 : 2022년12월15일 16:22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서울=뉴스핌] 홍우리 기자 = 오색실을 꿴 바늘이 천 위를 바삐 오가자 진짜와 다름 없는 나뭇잎 하나가 생겼다. 작업대에 앉은 톈스커(田世科)는 돋보기를 걸친 뒤 능숙한 손놀림으로 바늘에 실을 꿰고는 '부귀풍미도(富貴豐美圖)' 작업에 열중했다.

작업대 한켠에 놓인 도안에는 이 '노수(魯繡, 산둥 지역 대표 자수 방식.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자수 방식이자 중국 '8대 명수名繡' 중 하나)' 작품 창작을 '개시'한 시간이 기록돼 있다. '2018년 4월.' 4년이 훨씬 지났지만 완성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노수 작품은 완성까지 수 년이 걸리곤 한다." 톈스커의 말이다.

웨이하이(威海)시 원덩(文登)구에 위치한 산둥 윈샹(蕓祥)자수공예품유한회사(이하 윈샹자수)의 부사장인 톈스커는 '노수 전승자'로, 산둥성 공예 미술대가, 전국 기술 명인, 국가급 기능 대가 등 많은 수식어를 갖고 있다. 그의 이름에서 딴 작업실 명칭 '톈스커 기능 대가 작업실'은 국가인적자원 및 사회보장부의 승인을 받은 것이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노수 병풍이 눈에 들어온다. 폭 1m, <춘의앙란(春意盎然)>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는 까치 두 마리와 나비 세 마리, 수두룩하게 핀 꽃이 전부다. 문외한의 눈에야 '아름답다'는 느낌뿐이지만 전문가에게는 소중한 보물이다.

"'춘의앙란'은 2014년 중국 공예미술 백화상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그 해 작품 두 점을 만들었는데, 다른 한 점은 베이징의 한 수집가가 38만 위안을 주고 사갔다."

자세히 들여다 본 '춘의앙란' 속 꽃잎은 결이 선명하고 사실적이었다.

"이것은 양면수 작품이다. 천 앞 뒤 양면에 수를 놓은 것이다. 나는 노수의 한 가지 방식인 '조평수(雕平繡)' 기법과 양면수 기법을 결합해 특허를 받았다."

톈스커는 머리카락 굵기의 실 한 가닥을 32가닥으로 가른 뒤 그 중 몇 가닥만 가지고 수를 놓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꽃잎을 수 놓을 때는 3~5단계의 색 변화를 표현해야 하므로 각기 다른 색의 실을 사용한다.

'8대 명수' 중 하나인 노수는 현재까지 20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원덩 기법이 노수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된 것은 '중서합벽(中西合璧, 중국과 서양의 장점을 취하여 합하다)' 덕분이다.

1894년, 영국 선교자 제임스 마물란이 옌타이(烟臺)에 교회 학교를 설립하자 학생들은 이곳에서 공부하며 일했다. 당시 학생들이 자수 공예에 쓰던 기법인 '추수'는 '아이리시 레이스'라고 불리는 서양식 자수 기법에서 유래해 자오둥(膠東) 지역에 전해진 것이었다. 노수 예술인들은 이를 정리해 '추(抽) 수(繡) 편(編) 쇄(鎖) 륵(勒) 도(挑) 보(補) 조(雕)' 등의 기법을 만들었고, 원덩 노수는 이를 통해 해외에서까지 명성을 갖게 됐다.

1988년, 미술과를 졸업한 톈스커는 원덩 자수품 공장의 디자이너가 됐다. 원덩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10여년 간 '중국 공예 가정용 방직품의 도시'로 유명세를 떨쳤다. 당시 원덩 소재 공예 및 방직 기업은 200여 개에 이르렀으며, 이곳 기업들이 만든 공예품은 중국 전국 각지는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60여 개 국가(지역)으로 팔렸다.

"당시 기업 수익률이 20%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회사를 차렸다."

선후배와 제자들이 창업을 하는 동안에도 톈스커는 오로지 한 길만 걸었다. 그가 좋아한 것이라곤 노수 작품을 창작하는 것뿐이었다.

최근 10여년 간 해외 주문이 감소하고 생산 원가가 상승하면서 장기간 수출에 의존했던 방직 산업이 큰 충격을 받았다. 윈샹자수는 해외 수출에서 중국 국내 예술품 및 관광 기념품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어떻게 전통 노수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톈스커의 끊임없는 고민은 마침내 '보답'을 받았다. <영화부귀(榮華富貴)>, <매란죽국(梅蘭竹菊)>이 각각 2012년, 2016년에 중국 공예미술 백화상 금상을 수상했고, <하당청운(荷塘清韻)>이 2017년 중국 산둥 공예미술박람회 금상을, <노풍신수(魯風新繡)>가 2019년 10대 방직 혁신 무형문화유산 창조 제품을 차지했다. 화려한 수상 경력은 톈스커의 고행승에 버금가는 노력과 성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매란죽국>의 대나무는 그가 쑤저우(蘇州)에 출장 갔을 때 우연히 봤던 것을 재연한 것이다. 쑤저우 공과대학의 대나무 숲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그 자태를 마음에 새겼었다.

그러나 작품 하나를 구상하는 데 '양구삼년득(兩句三年得, 두 구절을 삼 년만에 얻음)'일 때가 훨씬 더 많다. <하당청운> 속 연못은 원덩에서 10여 km 떨어진 곳에 있는 연못으로, 톈스커는 이 연못을 20번도 넘게 찾았었다.

"연꽃은 하루에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오늘과 내일도 다르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연꽃 한 송이를 찾기 위해 매일 연못에 쪼그리고 앉아 관찰했다."

<영화부귀>는 윈샹자수의 노수 박물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작품 완성까지 걸린 시간만 2년, 남다른 정성을 쏟아부었던 작품에 톈스커는 자부심을 느낀다.

"양면수 작품이지만 양면의 색채가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바늘 자국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고, 양면의 색채가 뚜렷하고 자연스럽고 완벽하다."

공장 생산라인은 '초'를 단위로 움직이지만 톈스커의 노수 작품 창작은 '해(年)'를 단위로 한다.

"노수 작품을 만드는 데 작가는 지혜를 모으고 심혈을 기울인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작품에는 작가의 감정과 생각도 담겨 있어 모방이나 복제가 불가능하다."

공예품에 실용적 가치와 예술적 소장 가치를 모두 담아냄으로써 노수 기법을 계속해서 전승해 나가는 것이 톈스커의 바람이다.

노수 전승자로서 다수 대학의 무형문화유산 지도교수, 객좌교수 등 직책도 맡고 있는 톈스커는 강연에서 노수와 함께 걸어온 자신의 예술 인생을 이야기한다.

"캠퍼스에서 후대에게 노수를 알리고 그들이 전통 문화를 사랑하도록 이끌 것이다."

국가급 기술대가이자 산둥 공예미술대가 톈스커(田世科)와 그의 노수(魯繡) 공예품 [사진=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원덩(文登) 제공]

 

국가급 기술대가이자 산둥 공예미술대가인 톈스커가 노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사진=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원덩(文登) 제공]

 

노수 공예도 산업화하고 있다. [사진=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원덩(文登) 제공]

 

'중서합벽(中西合璧)'의 노수 작품 [사진=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원덩(文登) 제공]

hongwoori84@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사진
'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