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 오른 2~3급 간부들이 비리 첩보 제기
尹 핵심 측근으로서 원장과의 갈등도 한 배경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이 국회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25일 전격적으로 사표를 제출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라인 최측근 인사 중 한 사람이자 국정원 핵심 실세인 조 기조실장이 취임 4개월 만에 하차했다는 점에서 무슨 말못할 사정이 있었을까 하는 점에서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공동취재사진) 2022.09.28 photo@newspim.com |
더욱이 조 실장이 상관이자 기관장인 김규현 국정원장이 아니라 대통령실 비서관에게 사표를 제출했고, 이를 보고받은 대통령이 수리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석연찮다는 반응이 국정원 안팎과 정치권에서 나온다.
대통령실과 국정원은 조 실장이 "일신상의 이유, 개인적인 사유" 때문에 사퇴했다고 밝히고 있다. 건강문제라는 구체적 설명도 있고 입원설도 흘러 나온다.
윤 대통령도 27일 출근길 도어스태핑에서 "일신상의 이유라서 공개하기는 그렇다"라며 사퇴가 조 실장의 개인적인 문제임을 강조했다.
같은 시각 국정원도 입장문을 내 이런저런 의혹 제기에 대해 선을 그었다.
하지만 사표 제출 시점과 경로 등으로 볼 때 이런 설명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부임한지 몇 달 되지 않은데다 국감 직전에 전격적으로 사표를 던진 건 뭔가 다급한 사정이 있을 것이란 측면에서다.
특히 조 실장이 사표를 내기 며칠 전부터 출근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의혹은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실과 국정원이 나서 파문 확산을 서둘러 진화하려는 모습에도 의구심이 든다.
이와 관련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는 "조 실장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에 맞춰 국정원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내부 반발에 부닥쳤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따르면 조 실장은 지난 6월 부임 이후 기조실장 산하에 기조국을 만들어 후배 검사를 책임자로 앉혔고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 내부의 각종 문제점들을 파헤치는데 주력했다.
조 실장은 특히 인사 문제에 공을 들였고, 문재인 정부에서 능력과 무관하게 정치권 줄대기로 승진했다고 의심되는 간부들을 손봐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김규현 국정원장이 26일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자리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춘택 1차장, 김 원장, 김수연 2차장. 조상준 기조실장은 국감 시작 전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해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공동취재사진) 2022.10.26 photo@newspim.com |
하지만 2~3급 국장・단장급 핵심 간부가 주축을 이룬 이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 때문에 10월초로 예상됐던 인사가 지연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앞서 1급 인사는 정부 출범 3개월 만인 8월에야 마쳤다.
이런 국면에서 조 실장이 인사를 계속 강행하려하자 살생부에 오른 4~5명의 간부들이 극력 저항하면서 내홍을 이어왔다고 한다.
급기야 불이익을 받게 된 일부 간부들이 기자회견을 통한 폭로 등 극단적 카드까지 들고 나오려는 분위기가 감지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국정원 출신 인사는 "일부에서 조 실장의 검찰 시절 행적을 문제 삼아 당시 국정원의 첩보보고에 담긴 내용을 폭로하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등 상황이 험악해졌다"고 귀띔했다.
방산업체 관련 연루설까지 나왔다고 한다. 조 실장은 서울고검 검사를 마친 2016년 4월부터 방위사업청 방위사업감독관으로 2년 정도 파견 근무한 경력이 있다.
조 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 이른바 적폐수사를 통해 징계를 가하거나 사법처리 한 간부 출신 인사들과도 불편한 관계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이명박 정부 시절 야권 인사 및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 혐의를 받고 있는 이종명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이 지난 2018년 5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18.05.30 leehs@newspim.com |
한 간부 출신 인사는 "우리 입장에선 말도 안되는 사유로 해직되거나 심지어 실형까지 받은 국정원 간부가 42명에 이른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해 명예회복을 기대했지만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교체를 체감하기 힘들었다는 토로다.
이 과정에서 인사・예산을 관장하는 조상준 실장은 이들의 복직이나 배려성 인사 조치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사법처리를 받은 사람들을 절차 없이 기용하는 건 문제"라는 언급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반발을 샀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 등이 김규현 원장과 기류를 달리하면서 갈등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 실장이 원장을 패싱하고 곧바로 대통령실에 사의를 표명한 건 이런 불편함 때문일 것이란 얘기다.
결국 조 실장은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에 알리지 않고 '형제의 연'을 맺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역한 윤석열 대통령과 직거래 하는 방식의 퇴진 절차를 거침으로써 사퇴 배경을 베일 속에 감췄고, 논란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