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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쇼크] ③'영국은 예고편' 지구촌 금융시스템 살얼음판(上)

기사입력 : 2022년10월20일 08:58

최종수정 : 2022년10월24일 07:23

채권시장 위기 '뇌관' 부상
채권 자경단 30년만에 출몰
伊·獨·美·신흥국까지 '불안'
금리 인상 후폭풍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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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영국이 처음이지만 마지막일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9월 하순 이후 영국 채권시장의 패닉과 관련, 재무 컨설팅 업체 크롤의 메건 그린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을 통해 밝힌 의견이다.

전세계 금융시장을 뿌리까지 흔들어 놓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영국 뿐 아니라 주요국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 전문가들은 전세계 채권시장이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가장 커다란 공격 위험에 노출된 상태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영국의 금융시장 혼란이 재무장관 교체와 감세안 철회 발표에 일단락 된 것으로 보이지만 잠재적인 위기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는 것.

[채권 쇼크] 글싣는 순서

1. 영국 '금리 쇼크' 일단락됐나...남은 불씨와 교훈은
2. 영국 파운드화 급락 이유와 향후 전망...투자 기회는
3. '영국은 예고편' 지구촌 금융시스템 살얼음판
4. 위기가 기회, 2023년 채권시장 '황소장' 온다
5. 日 YCC '마침표' 지구촌 채권시장 태풍의 눈

특정 국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국채 수익률이 큰 폭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포착될 때 대규모 '팔자'를 통해 수익률을 올리는 세력을 뜻하는 이른바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영국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주요국을 이미 겨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큰 틀에서 볼 때, 9월23일(현지시각) 쿼시 콰텡 영국 전 재무장관이 내놓은 소위 '미니 예산'에서 촉발된 국채 수익률 폭등과 부채연계투자(LDI, liability driven investment, 레버리지를 동원한 투자) 전략을 취한 연기금의 마진콜 사태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저금리 기조의 종료와 경기 하강 기류 등 거시경제 여건의 판도 변화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월가는 해석한다.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기축통화국들이 양적완화(QE)를 통해 20여년간 장기물 채권 수익률을 억누르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던 LDI 기법이 영국 확정급여형(DB) 연금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은 이 같은 의견에 설득력을 제공한다.

안전자산으로 통했던 영국 국채가 거래 불가능한 수위의 가격 폭락과 변동성 폭등을 연출하자 전세계 금융권은 커다란 공포감을 드러냈다.

2008년 전세계 금융위기가 미국 서브프라임(비우량) 모기지 사태에서 비롯됐다면 이번에는 저금리 시대를 무대로 탄생한 LDI가 금리 상승 리스크를 이겨내지 못하고 또 한 차례 위기를 일으킬 것이라는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 '채권 자경단' 30년만에 다시 출몰, 주요국 국채시장 위태

영국의 국채 수익률 사상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글로벌 채권시장이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필두로 각국 중앙은행이 과격한 금리인상에 나선 가운데 선진국부터 신흥국까지 부채 위기가 발생할 위험이 크게 고조됐다는 경고다.

시장 전문가들은 주요국 국채시장이 공격 받기 쉬운 상태라고 주장한다. 9월 하순 이후 영국에서 벌어진 위기 상황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대표는 최근 투자 보고서를 내고 소위 채권 자경단이 영국 뿐 아니라 미국을 공략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역시 이들의 타깃이라고 전했다.

영국 국채 및 회사채 동반 급락 [자료=블룸버그]

대규모 부채를 떠안은 국가라면 어디나 채권 자경단의 과격한 매도와 이에 따른 금리 폭등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자산운용사 투엔티포 애셋 매니지먼트의 고든 섀넌 펀드매니저도 한 목소리를 냈다. 채권 자경단이 등장했고, 각국 정부가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1980년대 채권 자경단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어낸 야데니 대표는 이번 보고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각국이 일제히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 및 통화 완화를 시행한 데 따라 1990년대 초 이후 자취를 감췄던 이들 세력이 수 십년만에 다시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FTSE100 지수 [자료=블룸버그]

1980년대 초 채권 자경단은 미국 연준이 당시 두 자릿수로 폭주하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충분한 금리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판단, 대규모 채권 매도에 나섰고 이는 국채 수익률의 가파른 상승으로 이어졌다.

결국 연준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당초 계획보다 강도 높은 매파 정책을 동원해야 했고, 기준금리는 20%까지 뛰었다.

이번 영국의 상황은 40여년 전과 흡사하다. 1972년 이후 최대 규모의 감세를 포함한 '미니 예산'과 재정 확대 움직임이 가뜩이나 40년래 최고치로 뛴 인플레이션 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한편 시장 금리를 밀어 올릴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렸고, 이는 채권 투매에 방아쇠를 당겼다.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를 통해 2026년까지 430억파운드에 달하는 세금 감축을 실시하는 동시에 공공 지출을 확대해 성장을 도모한다는 영국 정부의 발표는 경기 침체 리스크를 진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영국 재정 부실에 대한 우려를 자극했기 때문.

대규모 감세와 재정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려면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고, 이는 자금 조달 비용을 끌어올리는 한편 GDP(국내총생산) 대비 99.6%에 달하는 부채가 더 큰 폭으로 늘어나면 국채 수익률 상승은 불 보듯 뻔한 수순. 채권 자경단의 영국 국채 투매는 이 같은 시나리오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여기에 LDI 전략을 취하는 연금 펀드의 마진콜 사태가 영국 국채 수익률을 사상 최고치까지 끌어올렸다.

월가는 9월23일 영국 정부가 내놓은 미니 예산이 국채시장 패닉의 표면적인 도화선으로 작용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LDI라는 데 한 목소리를 낸다.

연금의 형태는 운용 성과에 따라 연금 지급액이 결정되는 확정기여형(DC)과 수익률과 무관하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도록 돼 있는 확정급여형(DB)으로 구분되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DB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제로금리 정책과 대규모 자산 매입을 의미하는 QE가 장단기 금리를 바닥권에서 붙들어 뒀고, 포트폴리오에서 채권의 비중이 큰 연금 펀드에 불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영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장기 추이 [자료=블룸버그]

특히 사전에 약정된 연금을 투자자들에게 지급해야 DB형 상품이 저금리 여건 속에 고전했고, 이 때문에 레버리지를 동원해 수익률을 제고하는 LDI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다.

LDI 기법이 2008년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그 밖에 리걸 앤드 제너럴 그룹, 슈로더 등 대형 운용사들이 LDI 펀드를 쏟아냈고, DB형 상품을 제공하는 연금은 이를 통해 자금을 운용했다.

각종 차트를 모니터링하는 런던 트레이더의 경직된 표정 [사진=로이터 뉴스핌]

상당수의 연금은 포트폴리오를 통째로 아웃소싱했고, 인사이트 인베스트먼트 등 LDI 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들이 자금을 맡았다.

영국 투자협회에 따르면 LDI 전략을 취하는 펀드의 전체 자산 규모는 2021년 말 기준 1조6000억파운드(1조8000억달러)로 집계됐다. 10년 전에 비해 4배 급증한 수치다.

영국 국채 시장의 전체 규모가 2조3000억파운드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LDI의 비중이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2021년 말까지 LDI는 연금 펀드가 수익률을 제고해 지급 의무를 이행하는 데 실질적인 해법이 돼 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공격적인 통화완화 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자 장기물을 중심으로 국채 수익률이 사상 최저치 수준으로 후퇴했고, 이 때문에 DB형 연금 펀드의 부채는 날로 늘어났다.

저금리 기조로 인해 이자 수입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 사전에 약정된 연금을 지급하다 보니 자금 결손이 눈덩이로 불어난 것.

다양한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금리 하락 리스크를 헤지하는 한편 레버리지를 동원해 수익률을 제고하는 LDI가 연금 운용의 해법으로 부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미국 연준을 필두로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불거졌다. 저금리 여건에 레버리지를 동원, 수익률을 내는 구조의 LDI가 20여년만에 처음으로 금리 상승이라는 난관을 만나자 파열음을 낸 것.

금리가 오르면서 채권 가격이 떨어지자 상당수의 LDI 상품들은 레버리지 거래의 증거금을 늘려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고, 현금 확보를 위해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앞다퉈 매도하기 시작했다.

채권 자경단의 공격적인 매도에 영국 국채 가격이 속락하자 LDI 기법을 채택했던 DB형 연금 펀드 업계에 마진콜이 봇물을 이뤘고, 현금 확보가 다급해진 펀드매니저들이 국채 투매에 나서면서 수익률이 더욱 치솟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채권시장의 한 트레이더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투매가 벌어졌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채권 매입에 나섰던 영국 중앙은행은 금융시스템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콰텡 전 재무장관을 경질한 뒤 새롭게 기용한 제러미 헌트 신임 재무장관이 감세안을 대부분 철회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채권시장의 불안감은 완전히 진화되지 않았다.

블루베이 애셋 매니지먼트의 마크 다우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은 영국 정부의 감세안 일부 철회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JP모간의 앨런 몽크 이코노미스트는 "중장기적인 재정 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채권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달러화 · 파운드화 · 위안화 · 엔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저금리 시대에 부채 규모가 위험 수위까지 늘어난 가운데 금리 상승과 경기 침체 리스크, 재정 부실 등 굵직한 악재가 맞물린 것은 비단 영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매파 통화 정책에 따른 후폭풍이 주요국 곳곳에서 불거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영국은 시작일 뿐' 이탈리아·독일·미국···안전지대 없다

월가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과 미국 채권시장 역시 폭풍 전야라는 데 한 목소리를 낸다.

2023년 지구촌 경제에 침체가 닥치면 각국 정부가 감세와 재정 확대 등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설 여지가 높고, 이 경우 영국과 흡사한 채권시장 패닉이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크롤의 메건 그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이 금리인상과 양적긴축(QT)을 지속하는 상황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및 에너지 위기로 인해 선진국 정부가 재정 확대 압박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독일이 지난 9월 기업과 가계에 공급되는 가스 가격 급등을 차단하기 위해 2024년까지 2000억유로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당시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에너지 보조금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독일 소비자물가지수(CPI)는 70년래 최고치로 뛰었고, 독일 국채 수익률도 크게 치솟았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9월 독일 CPI는 연율 기준 10.0% 폭등했다. 8월 7.9% 올랐던 물가가 또 한 차례 수위를 높인 것. 9월 수치는 월가의 예상치인 9.4%를 크게 상회한 결과다.

2022년 초까지만 해도 이른바 '서브 제로' 영역에 머물렀던 독일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0월중순 2.3% 선까지 상승, 11년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독일 국채의 디폴트 리스크를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2020년 4월 이후 최고치까지 뛰었다.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등락폭 팬데믹 사태 이후 최대 [자료=블룸버그]

린드너 재무장관이 영국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지만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독일보다 우려되는 것은 이탈리아다. 부채가 한계 수위까지 늘어난 가운데 극우 세력이 집권한 이탈리아가 채권 자경단의 다음 타깃이 될 여지가 높다는 데 월가는 한 목소리를 낸다.

이탈리아 정부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3월 말 기준 명목 GDP 대비 공공 부채 규모는 152.6%로 파악됐다.

독일 대비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수익률 스프레드 [자료=블룸버그]

수치는 2021년 3월말 159.6%에서 하락했지만 전분기 150.8%에서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또 이탈리아의 부채 규모는 유로존 19개 회원국들 가운데 2위에 해당한다.

가뜩이나 금리 상승에 따른 후폭풍이 우려되는 상황에 파시스트의 후예로 통하는 이탈리아형제들(Fdl)을 축으로 한 우파 연합이 총선에서 상하원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둔 데 대해 시장 전문가들은 커다란 경계감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의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유럽 주요국들 사이에서도 높은 축에 속하는 데다 재정 여력이 지극히 제한돼 유럽중앙은행(ECB)의 시장 개입에도 이미 이탈리아의 채권시장에 적신호가 포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최근 4.7% 선에서 거래됐다. 불과 1년 전 1%를 밑돌았던 수익률이 단기간에 네 배 이상 폭등한 셈이다.

특히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이탈리아 극우 정부의 재정에 관해 경고의 목소리를 낸 데 따라 10월 첫 주 국채 수익률이 2020년 팬데믹 사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치솟았다.

무디스는 이탈리아의 총선 이후 내놓은 보고서에서 우파 연합의 집권에 따라 정책 리스크가 크게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 연합이 이탈리아의 대대적인 국가 재건 프로젝트인 국가 회복-복원 계획(National Recovery and Resilience Plan)을 일부 수정할 움직임을 보일 경우 가뜩이나 고물가와 에너지 위기 상황에 투자를 더욱 위축시켜 거시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무디스는 강조했다.

이탈리아의 중장기 성장률 전망이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무디스는 밝혔다.

블룸버그는 이탈리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가운데 ECB의 파비오 파네타 정책위원이 차기 재무장관으로 발탁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 비관론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자 무솔리니'로 통하는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신임 총재는 장애인, 보육, 연금, 여성 관련 대규모 복지를 약속한 바 있다.

월가는 2018년 이탈리아가 예산안을 놓고 유럽집행위원회(EC)와 마찰을 빚다가 채권시장에 투매를 불러일으켰던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완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 시장 애널리스트는 미국 금융 매체 마켓 인사이더와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이탈리아 채권시장 향방을 놓고 크게 긴장하는 표정"이라며 "극우 정부의 정책 행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그는 "공동통화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정부가 EU로부터의 자금줄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 불투명하다"며 "총선 이후 국채 수익률 스프레드가 가파르게 뛰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의 미니 예산 발표가 채권시장에 커다란 혼란을 일으킨 이후 유럽 시스템 리스크 위원회(ESRB)는 유럽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에 심각한 리스크가 자리잡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로존 금융시스템의 모니터링과 위험 사전 차단의 의무를 가진 ESRB는 2010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리스크를 공식 경고해 투자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수장을 맡은 ESRB는 30개 국가의 정책자와 감독 당국에 금융권의 자본 확충을 포함해 잠재적인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영국 채권시장 혼란이 논의의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물가 폭등과 에너지 위기, 주요국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후폭풍, 주택시장 하강 기류까지 잠재적인 리스크가 상당수라고 ESRB는 주장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ECB 역시 영국 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자산 매입에 나서야 하는 상황을 맞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채권 자경단의 채권 투매가 영국에 이어 이탈리아와 그 밖에 유럽 주요국을 강타할 수 있다는 경고다.

주요 외신은 ECB에 대차대조표 축소 시행을 미룰 것을 종용하는 목소리가 투자자들 사이에 점차 크게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에서 벌어졌던 국채 수익률 및 변동성 동반 폭등이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다른 지역에서도 발생할 여지가 높다는 지적이다.

RBC 캐피탈 마켓은 투자 보고서를 내고 "영국 채권시장 혼란이 유럽 금융시장 안정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며 "ECB 정책자들이 사태를 가볍게 여기면 낭패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금융권이 재무건전성을 크게 강화한 데 반해 유럽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유동성이 풍부한 것으로 평가 받는 영국 채권시장이 극심한 혼란에 빠진 것은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단면으로 풀이된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야데니 대표는 채권 자경단이 이미 미국 모기지 채권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higrace5@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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