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진솔한 그림 속 넘치는 생명력
독일 미헬슈타트시립미술관, 노은님 영구전시관 조성
[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독일을 기반으로 '원초적 생명'을 노래하는 그림을 그려온 노은님이 18일 독일에서 별세했다. 향년 76세.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노은님의 회화 '무제'. 검은 물감을 묻힌 큰 붓으로 생명과 자연을 거침없이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사진=노은님] 2022.10.19 art29@newspim.com |
전북 전주 출신인 노은님은 간호보조원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 1970년 독일 함부르크로 이주했다. 함부르크의 병원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틈틈이 그린 그림이 우연히 간호장의 눈에 들어 병원에서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이를 본 국립함부르크대학의 교수가 대학 진학을 권유해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주경야독하며 미술수업을 받던 그는 1979년 졸업과 동시에 전업화가로 데뷔했다. 간호보조원 시절 늘 '벌 받는 사람'처럼 위축된 채 신산스런 삶을 감내해야 했던 노은님은 이후 둥글둥글 막힘이 없고, 따뜻하면서도 기가 펄펄 넘치는 그림을 쏟아내듯 그렸다.
노은님은 인간을 새로, 새는 물고기로, 물고기는 나뭇잎으로 거침없이 바꿔버린다. 그의 그림에선 경계가 없고, 막힘도 없다. 검은 물감을 듬뿍 묻힌 붓으로 쓱쓱 그려낸 작품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자유로운 그림이어서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과감한 생략으로 자연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붓으로 그린 즉흥시'라는 평을 받았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노은님 '무제'. 종이에 아크릴릭 물감. [작품사진=노은님] 2022.10.19 art29@newspim.com |
독일 현대미술의 표현주의에 동양의 존재론이 버무려져 강렬하면서도 초월적인 작업을 구가했던 노은님은 책도 여러 권 펴냈다. 책에서 그는 "다 버려라/잘난 것도/자랑스러운 것도/미운 것도/좋은 것도"라며 "집착을 버릴 때 마음이 맑아진다"고 노래했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독일의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생전의 노은님 작가. [사진=작가 제공] 2022.10.19 art29@newspim.com |
1990년부터 20년간 독일 함부르크대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한 노은님은 역량있는 화가로, 교육자로 독일 미술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독일 남서부 미헬슈타트의 시립 오덴발트미술관은 지난 2019년 노은님을 기리는 영구전시관을 조성하기도 했다. 한국 작가가 해외 지자체로부터 전시관을 헌정받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크게 화제가 됐다.
노은님은 한지와 캔버스, 종이를 넘나들며 먹과 유화물감, 아크릴물감을 두루 써가며 다양한 회화와 입체작품을 선보였다. 또 스테인드글라스 작업과 설치작업도 펼쳤는데, 함부르크 알토나 성 요하니스교회에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남아있다. 강원도 원주시 오크밸리 내 교회에도 노은님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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