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논란 이어지며 평가 꾸준히 하락세…인적쇄신 '불가피'
석 달간 5명 사의 표명…정원도 채운 적 없어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상징 중 하나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존폐 위기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지난해 숱한 논란을 낳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온 공수처가 최근 검사들의 연이은 사의 표명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공수처 수사1부 소속 이승규·김일로 검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6월에는 최석규 부장검사와 문형석·김승현 검사가 사의를 표명했고, 이 가운데 문 검사와 김 검사는 사직 처리됐다.
법조계 안팎에선 공수처 검사들의 추가 이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가뜩이나 출범 이후 정원을 채워본 적이 없는 공수처가 또다시 인력난에 허덕이며 수사기관의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서울=뉴스핌] 김민지 기자 =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경제부처 대상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자리해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9.05 photo@newspim.com |
◆ 공수처, 수사력 부재…"지휘부 인선부터 문제"
공수처에 대한 우려는 사실 출범 초기부터 제기됐다. 통상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사건은 복잡한 구조로 돼 있어 특수수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데, 수사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김진욱 공수처장에 이어 판사 출신인 여운국 차장이 지휘부에 앉으면서 수사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차장 인선 전까지만 해도 검찰을 떠난 '특수통' 출신들의 공수처 합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강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판사 출신 차장과 특수수사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인선이 이어지면서 기관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줄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좋지 않은 조건임에도 당시 재야에 수사 경험이 풍부하고 공수처 합류를 고민하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꽤 있었지만 첫 단추인 지휘부 인선에 실패한 것이 큰 문제"라며 "물적쇄신도 중요하지만 결단력 있는 인적쇄신 없인 애초 공수처에 기대했던 역할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공수처는 출범 이후 꾸준히 논란을 만들어내며 기관 평가도 내리막을 타고 있다. 공수처는 '1호 사건'으로 기소권이 없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부정 채용 의혹' 사건을 선택해 많은 의문을 자아냈고, 이후 모 기자 가족의 통신조회까지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찰 논란까지 더해졌다.
무엇보다 공수처가 수사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조 교육감 사건을 제외하면 공수처가 출범 이후 기소한 사건은 '스폰서 검사 사건'과 '고발 사주 사건' 등 단 2건이다.
특히 고발 사주 사건 수사 과정에선 핵심 인물인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에 대한 체포·구속영장을 3번이나 기각당하면서 자존심을 구기는 한편 수사력 부재를 직접 증명하기도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출범 전까지만 해도 주위에 수사 경험을 쌓고 싶어 공수처 지원을 고려하는 변호사들이 꽤 있었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공수처의 수사력 부재 문제에 더해 기관 이미지까지 안 좋아지면서 생각을 접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공수처에 합류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여운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차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7.29 photo@newspim.com |
◆ 공수처법 개정 시급…정치권 관심 없어 '난항'
수사력보다 더 큰 문제는 공수처가 자체적으로 문제점을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25명밖에 되지 않는 공수처의 정원, 검사 출신이 정원의 절반을 넘지 못하는 점, 수사 대상과 기소 가능 대상의 불균형 문제 등이 공수처법에 근거하고 있는데 개정 가능성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당시 검찰 견제를 목적으로 급하게 만들어진 공수처가 수사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효용가치가 떨어졌다"며 "공수처는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데, 정권이 바뀐 현재 야당이 공수처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다. 사실상 버린 카드"라고 지적했다.
공수처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는 것은 현 정부·여당도 마찬가지다. 소위 '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현 법무부와 검찰 수장에 앉아있고, 이미 전 정권과 야당 대표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수처는 지난해 '윤수처'라고 불릴 정도로 당시 후보자였던 윤 대통령 수사에 집중해 미움을 산 상황이다. 김 처장의 임기가 끝나면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혀 검찰과는 다른 '칼'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검찰총장까지 지낸 윤 대통령 입장에선 굳이 정치적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선이다.
결국 국회가 관심을 두는 것이 공수처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지만 공수처는 이미 정치권의 관심 대상에서 멀어진 상황이다. 이에 법조계 안팎에선 공수처가 구성원 이탈이라는 현재 위기라도 타개하기 위해선 사건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는 대통령부터 감사원·국세청 소속 3급 이상 공무원 등 7000명이 넘지만, 기소가 가능 대상자는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으로 제한돼 있다.
이같은 불균형 문제는 지난해 조 교육감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공수처는 지난해 9월 조 교육 사건을 수사한 뒤 사건을 검찰에 넘기며 기소를 '요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해당 사건을 넘겨받은 지 3개월 뒤인 12월이 돼서야 조 교육감을 기소했다. 사실상 검찰이 자체 수사를 통해 판단을 내린 셈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수처 검사들의 업무부담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그들이 수사했을 때 결과에 책임을 지고 마무리할 수 있는 사건을 선택하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어야 공수처 검사들의 추가 이탈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