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복사…1년뒤 이혼소송서 유리 증거로
자동차수색죄 기소… "존재·위치 확인도 수색"
[서울=뉴스핌] 윤준보 기자 = 사이가 좋지 않아 별거하게 된 부인의 승용차에 들어가 블랙박스 동영상 파일을 복사해간 치과의사가 법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1-2부(소병석 부장판사)은 자동차수색 혐의로 기소된 치과의사 A(50)씨의 2심 선고공판을 지난달 12일 열고 형 선고를 유예했다. 앞서 같은 법원 형사9단독(조국인 판사)은 지난해 7월 A씨에게 징역 2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심 판결은 확정됐다.
A씨의 부인인 방송인 B씨는 A씨와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모 아파트에 거주하던 중 지난 2017년 8월 22일 A씨에게 별거를 통보하고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으로 거주를 옮겼다. 자신의 벤츠 승용차도 새로 거주하게 된 동에서 가까운 주차장소로 옮겼다.
그 해 8월 말과 9월 초 A씨는 각각 1회씩 B씨의 차량 문을 열고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꺼내 저장된 동영상 파일을 백업·열람했다. 차 문은 A씨가 갖고 있던 여분의 열쇠를 이용해 열었다. 복사해간 파일은 이후 2018년 6월 말 개시된 A씨와 B씨의 이혼·재산분할 소송에서 A씨에게 유리한 증거로 제출됐다.
[서울=뉴스핌] 윤준보 기자 =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 전경 2022.04.20 yoonjb@newspim.com |
A씨 측은 그 존재와 위치를 알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꺼낸 것은 수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2심 재판부는 "'수색'이란 일응 그 존재와 위치를 아는 것의 실제의 존재와 위치를 확인하는 행위까지 포함할 수 있는 개념"이라며 "통상 자동차 블랙박스의 메모리카드는 블랙박스 기기에 꽂혀 있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고, 실제로 메모리카드가 블랙박스에 꽂혀 있는지는 직접 블랙박스 해당 부분을 확인해봐야 알 수 있다"고 판시했다.
A씨 측은 평소 그 차량을 공동으로 관리해왔다며 A씨가 블랙박스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B씨도 받아들이고 있었으므로 B씨의 양해 또는 승낙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별거로써 피고인의 승용차 사용·관리에 관한 양해나 승낙을 철회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별거를 통보받고 현관 비밀번호를 변경한 피고인도 이를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도 "이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의 혼인생활은 사실상 파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A씨는 차량에서 사고 흔적을 발견해 그 경위를 확인하려고 블랙박스에서 메모리카드를 꺼냈다고도 주장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거지가 아닌 다른 동 지하주차장에서, 집을 나간 피해자가 이용하는 이 사건 승용차를 발견하고, 위 승용차에 사고 흔적이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후 그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취거해 확인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2심 재판 중 B씨는 A씨와 이혼하고 합의해 A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재판부에 표명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사실관계를 대체로 인정하고 있는 점,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또 그 밖에 범행에 이른 동기, A씨와 B씨 사이의 분쟁경위와 전개과정 등을 종합해 판결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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