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일제에 남편을 빼앗긴 한을 안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며 평생을 싸워 온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 유족회장이 오랜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102세.
이 회장은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초대 회장을 맡아 30여년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한길을 걸어왔다.
결혼 후 남편은 2년 만인 1942년 11월 일본 해군 군무원으로 남태평양으로 끌려가 1943년 11월 25일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미군의 대규모 상륙작전 전투 중 사망했다.
이금주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유족회 [사진=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2021.12.13 kh10890@newspim.com |
이 일을 계기로 1990년대부터는 피해자들을 결집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본격적인 소송에 나섰다.
1992년 원고 1273명이 참여한 광주천인 소송을 시작으로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소송, 일본군 '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등이 원고로 참여한 관부재판 소송, B‧C급 포로감시원 소송,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일본 외무성을 상대로 한 한일회담 문서공개 소송 등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지금까지 7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본 사법부에 제기했다.
그동안 소송을 뒷받침하느라 증인출석, 시민단체와의 연대 활동 등 노구를 이끌고 일본을 오간 것만 80여 차례가 넘는다. 하지만 결과는 번번이 패소뿐이었다. 일본 법정에서 기각당한 것만도 17차례에 이른다.
이 회장은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한일회담 문서 공개 소송'에도 직접 원고로 나서는 등 '강제동원 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다. 특히 2003년 12월 19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법사위 위원들에게 집적 유서를 써 보내기도 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한 데 이어, 40년 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한일회담' 문서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해 정부 최초로 피해자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나서기까지 광주유족회를 이끌어 오며 주도적 역할을 해 왔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은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비록 패소했지만, 양금덕 할머니 등 일본 소송 원고들이 2012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는데 중요한 발판이 됐다.
하나밖에 없는 자부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 속에 2012년 광주 생활을 청산하고 순천으로 거처를 옮겨 지금까지 순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외롭게 투병해 왔다.
이 회장은 일제 피해자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9 대한민국 인권상'(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빈소는 광주 천지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월 15일, 장지는 순천시립공원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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