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통과 예정이던 법안...재개발·재건축 단지 주민 반발에 막혀
강남·잠실·여의도 주요 재건축 사업 추진 제동
투기억제·조합원 재산권 침해 사이서 균형 잡아야
[서울=뉴스핌] 박우진 기자 = 투기수요 억제를 위해 재개발·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이 사업지 주민들의 반발로 시행까지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서울시가 빠른 재건축을 위해 제안한 방안으로 정부와 여야 모두 큰 이견이 없었지만 조합원들은 지위권 양도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걸리는 점을 근거로 격렬하게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사업 부담금을 낼 여력이 안되는 조합원들에 대해 예외조건을 확대해 조합원 지위 행사 제약에 따른 피해를 막는 보완책 마련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정부·여야 이견 없었지만...주민 반대에 부딪친 조합원 지위 양도제한 강화
15일 국회에 따르면 투기수요 억제를 위해 재개발·재건축 조합원의 지위 양도 시기를 앞당기는 법안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심사가 미뤄졌다.
이 법안은 지난 6월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으로 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인가 이후로 돼 있는 조합원 지위 양도제한 시기를 각각 안전진단통과와 정비구역지정 이후로 개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법안 발의에 앞서 서울시가 재건축 사업 추진에 따른 투기수요 유입과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방안으로 제안한 내용으로 정부와 여당에서도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아 법안은 이달 중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법안은 지난 6월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됐지만 논의의 진척을 보이지 못했고 최근에는 논의 안건으로 당분간 상정하지 않기로 하면서 법안 처리가 연기됐다.
법안 처리 논의가 미뤄진 것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지 주민들의 반발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 지위 양도기한을 앞당길 경우 조합원들의 주택 거래가 사실상 어려워져 재산권 행사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해당지역 주민들은 법안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이후 조합원 지위 양도시기 제한 강화를 일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시·도지사가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투기 수요 유입과 비정상적인 집값 상승 등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 후 양도 시기 제한일을 정하기로 했다. 지역 주민들의 불만을 의식한 것으로 경제력이 취약한 조합원이 많은 구역 등에서 조합원들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해 정비사업 추진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반영됐다. 단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예외없이 지위권 양도 제한 시기를 앞당겨 적용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재개발·재건축 사업지 주민들은 지역구 의원을 향해 집단 민원을 넣는 등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법안 관련 논의의 속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주요 재개발·재건축 사업지의 주민들 중심으로 법안에 대한 민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며 "법안에서 일부 내용에 대한 미세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와 논의를 연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 강남·여의도 주요 재건축 연기 불가피...조합원 재산권 행사 퇴로 열어야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서울시가 내세웠던 재개발·재건축의 빠른 진행에는 제동이 걸리게 됐다. 법안의 이달 통과는 사실상 어려워졌고 국정감사 등의 일정을 고려했을 때 다음 논의는 11월 이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재건축 사업 추진 기대감이 컸던 강남구 은마아파트·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여의도 주요 아파트 단지는 사업 추진의 불확실성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사업 초기 단계인 다른 재건축 단지들도 일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서울시가 투기 억제와 집값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등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서울시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과 조합원 지위양도 제한을 방안으로 내세웠는데 지위양도 제한 시행이 늦어지면서 재건축 규제 완화 논의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투기 억제를 내세우는 정부·서울시와 재산권 침해를 막으려는 조합원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 자격 획득 시점이 앞당겨지면 부득이한 사정으로 재건축 주택이나 재개발 부지를 팔아야 하는 개인은 이를 팔지 못하는 시기가 기존보다 늘어날 수 있다. 양도 조건을 강화하되, 조합원들이 필요한 경우 지위권을 양도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조합원 자격 획득 후 토지나 주택 매매에 있어 제약이 강화되는만큼 이로 인한 피해도 우려되므로 보완책도 필요하다"며 "부득이한 경우에만 조합원 지위 양도를 허용하는 폭을 확대하고 국가나 공공기관이 시세에 준하는 가격으로 이를 사들여 공공분양이나 임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조합원 지위 제한 강화는 투기를 예방하고 원주민들의 입주율을 높일 수 있지만 조합원들의 재산권 침해 등 피해도 우려됐었다"면서 "법안 심사과정에서 기존 조합원 중에서 부득이하게 지위권 양도가 필요한 경우 이를 허용할 수 있는 조건과 방안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rawj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