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사법사상 처음으로 변론중 법정구속 당한 인권변호사 1세대
"사법살인에 동조하느니, 피고인들과 같이 피고인석에 앉겠다"
악법에 대한 저항권 행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중대한 판례 남겨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지난 7월 31일 강신옥(姜信玉) 변호사가 타계했다. 향년 85세.
경북 영주 출신인 강신옥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 고등고시 행정과(10회), 사법과(11회) 양 과를 합격하고, 1962년에 판사로 임용되었다. 판사 생활을 1년 3개월 쯤 하다가 5.16 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당시 박정희 최고위원시절 정치적 이유로 경주지원으로 좌천되는 인사를 당해 사법권 독립이 되지않았다고 보고 이에 대한 항의의 의사 표시로 판사직을 사임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1964년 1월 13일 <법률신문>에 실린 그의 '퇴관(退官)의 변(辯)'의 내용 일부를 보자.
"하나의 인격체인 인간이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수단으로 취급받았을 때의 불쾌감은 비길 데가 없는 것이다. 불쾌한 허사(虛事)에 대한 나의 응수가 나의 장래를 그르친 경박한 것인지 아니면 겸손의 미덕을 모르고 한 행동이었는지는 시간을 두고 판단할 것이다. 이젠 나 자신이 나의 군주이니 나 자신에게 성실할 것이고, 나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리라. 자유는 마음껏 즐겨보는 대신 그 결과는 운명으로 감수하고 책임질 각오나 단단히 가져야겠다. 끝으로 부디 앞으로는 대법원의 인사행정에 확고한 불문률이라도 세워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인사행정을 바랄 뿐이고, 나의 문제를 내가 말하게 된 용렬함을 독자제현은 용서하시기를."
이후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인민혁명당 사건(1965),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3.1 민주구국선언 사건(1976), 10.26 사건(1979), YWCA 위장결혼식 사건(1979) 등을, 5공 당시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1986) 등의 피고인들을 변호한 대표적인 1세대 인권 변호사로 거듭났다. 1974년 4월에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 변론을 하다가는 세계 사법사상 처음으로 변론중인 변호사가 법정구속되는 사태를 겪었다. 또한 박정희 전대통령을 살해한 10. 26 이후 김수환 추기경의 부탁으로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을 변호했다.
나는 강신옥 변호사가 대통령긴급조치 위반과 법정모욕으로 피소된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은 88년 3월 4일 직후 강변호사를 만나 취재한 적이 있다. 기자가 된 지 갓 일 년여가 지난 애송이 기자 때였다. 역시 전두환 일당의 서슬퍼런 군부독재 치하에서 사법부는 굴종의 침묵을, 검찰은 쿠데타 세력의 앞잡이를 하고 있었던 시절이었으므로, 강변호사의 일거수일투족은 비상한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나는 취재에 참조하라고 강변호사로부터 판결문 복사본을 전해받았는데, 이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사진).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강신옥 변호사에게 무죄판결을 한 판결문. 2021.08.04 digibobos@newspim.com |
이 판결문에는 인간 강신옥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발언을 통해 너무 잘 나타나 있다. 그 일부를 인용해본다.
"이러한 사건(민청학련의 긴급조치 위반)에 관계할 때마다 법률 공부를 한 것을 후회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본 변호인이 학교에 다닐 때 법이 권력의 시녀, 정치의 시녀,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이번 학생들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법은 정치의 시녀, 권력의 시녀라고 단정하게 되었다. 지금 검찰관들은 나라 일을 걱정하는 애국학생들을 내란죄니, 국가보안법위반, 반공법위반, 대통령긴급조치위반 등을 걸어 빨갱이로 몰아치고 사형이니 무기니 하는 형을 구형하고 있으니 이는 법을 악용하여 저지르는 사법살인 행위라 아니할 수 없고, 본 변호인은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그리고 직업상 이 자리에서 변호를 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피고인들과 같이 피고인석에 앉아있겠다."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좋으며 악법과 정당하지 못한 법에 대하여는 저항할 수도 있고, 투쟁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학생들은 악법에 저항하여 일어난 것이며, 이러한 애국학생들인 피고인들에게 그 악법을 적용하여 다루는 것은 역사적으로 후일에 문제가 될 것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판결문 내용 일부. 2021.08.04 digibobos@newspim.com |
과연 사법부는 권력과 금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특권층과 있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서민과 없는 자들에게는 잔혹할만큼 서슬퍼렇다는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원성이 여전히 강한 작금의 세태에서 강신옥 변호사, 그리고 그에 대해 무죄판결을 한 판사들이야말로 참 법조인의 사표라 하겠다
아울러 당시 판사 최공웅(재판장), 임승균, 손평업의 판결문 내용도 두고두고 인용될 가치가 충분하다. 판결문 내용의 일부는 이렇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고이념으로 하는 우리 헌법은 기본권 보호를 위하여 형사소송에 있어서의 피고인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하고 '당사자주의'를 택하여 국가권력을 배경으로 경험과 법률 전문지식을 가지고 유죄판결을 얻으려는 검찰에 대하여 피고인의 방어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무기 평등을 기하기 위하여 변호인의 조력을 얻을 권리를 보장한다.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이며 변호인의 자유로운 변호활동에 기한 변호권 또한 피고인의 헌법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이 보장하는 절대권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는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법치주의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현대에 이르러 법의 배후에 있는 힘을 공공연하게 승인하여 권력자는 어떠한 악법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며 얼마든지 독재를 할 수 있다는 법실증주의의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정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자연법론적인 법철학 입장에서 변호인이 법정에서 악법에 대한 저항투쟁으로서 저항권 행사의 주장을 하였다하여 재판을 방해하거나 위협할 목적으로 법정을 모욕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음이 또한 명백하다."
마지막으로, "악법도 법이다"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후세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악법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특히 일제가 한반도 강점과 억압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과장해 꾸며낸 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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