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300가구 임대주택 계획…"여의도 금융중심지 육성과 맞지 않아"
재건축 허가없이 임대주택 공급은 '모순'…"주민들 동의부터 받아야"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여의도 주민들은 그동안 정부와 서울시 규제로 재건축 길이 막혀서 반백년이 지난 아파트에 안전을 위협받으며 힘겹게 살아왔어요. 주민들하고 소통도 없이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하는 정부에 심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여의도 주민협의회 LH 청원 관련 진행자)
국토교통부가 작년 발표한 8·4 부동산 대책이 1년 지난 현재 '공중분해'될 위기를 겪고 있다. 과천정부청사, 노원구 태릉골프장, 마포구 상암동 DMC, 용산역 철도정비창 등에 이어 여의도에서도 주민들이 '공급계획 철회'를 요구해 서울 내 주택공급 효과를 전혀 가져오지 못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임대주택을 짓기에 앞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사업을 시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측은 당초 정부가 발표한 방향으로 추진하되, 주민들 목소리를 듣고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여의도 삼익아파트에 '재건축은 틀어막고 닭장임대 졸속추진, 여의주민 무시하냐'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김은빈 기자] 2021.07.09 kebjun@newspim.com |
◆ LH, 300가구 임대주택 계획…"여의도 금융중심지 육성과 맞지 않아"
1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여의도 주민들은 정부가 8·4 대책을 통해 여의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유 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에 대해 집단 반발 중이다.
해당 부지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1-2번지 일대(면적 8264㎡)다.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옆에 있으며 이전에 학교용지로 지정됐지만 40년간 공터로 남아있었다. 교육청에서 여의도에 더 이상 학교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1-2번지 일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유 부지 위치도 [자료=구글 지도 캡처] 2021.07.09 sungsoo@newspim.com |
부지는 용도지역이 제2종 일반주거지역(7층이하)이지만 현재 서울시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묶여있다. 지구단위계획은 아파트 단지들이 재건축 정비사업 계획을 수립하기 전 마련하는 상위 계획이다. 토지를 보다 합리적으로 이용하고 해당 지역을 체계적·계획적으로 관리하는 게 목적이다.
서울시가 작년 6월 25일 고시한 도시관리계획(지구단위계획구역) 결정 및 지형도면을 보면 여의도동 61-1, 61-2번지는 중심지체계의 영등포·여의도 도심, 여의도 금융중심육성 등에 부합하도록 계획적·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결정됐다. 원래 목적은 '여의도 금융 중심지 육성'이었다는 뜻이다.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여의도동 61-1·2번지 도시관리계획(지구단위계획구역) 결정 및 지형도면 고시 [자료=서울시] 2021.07.09 sungsoo@newspim.com |
그런데 정부는 이곳에 약 300가구를 위한 일자리 연계형 공공임대주택을 건립할 계획이다. 최근 LH 측은 여의도 행복주택 복합개발사업 관련 수요조사 등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부지 인근에 거주하는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삼익아파트 주민들은 '여의도 LH 부지 공공주택 사업에 관한 청원'을 진행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금융특구라는 여의도의 도시적 특성에 맞지 않는데다, 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의도 주민협의회 LH 청원 관련 진행자는 "여의도 금융중심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해당 부지는 국제금융중심지에 포함된다"며 "해당 위치에 300가구 임대주택을 건설한다는 계획은 서울시의 기존 계획에 심각하게 배치되는 것은 물론, 여의도를 국제금융도시로 발전시키려는 계획의 방향성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1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주민이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금년 사업승인을 목표로 진행돼 왔다"면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생략했을 뿐 아니라 기존에 제시된 개발계획과 배치되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주택단지별로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반대 서명을 받고 청원서를 작성해 국토부와 영등포구청, 서울시청, 김민석 국회의원 사무실 등에 제출할 계획이다.
◆ 재건축 허가없이 임대주택 공급은 '모순'…"주민들 동의부터 받아야"
특히 여의도 주민들은 재건축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임대아파트가 들어온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서울시가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여의도를 '통개발'하겠다면서 단지별 재건축을 불허하고 있어서다.
현재 여의도에서는 ▲공작 ▲광장 ▲대교 ▲목화 ▲미성 ▲삼부 ▲삼익 ▲서울 ▲수정 ▲시범 ▲은하 ▲장미 ▲진주 ▲초원 ▲한양 ▲화랑의 16개 아파트가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 은하, 미성은 정밀안전진단 용역을 진행 중이며 광장(여의도동 38-1번지)는 정밀 안전진단에서 C등급을 받아 재건축에서 제외됐고 광장(여의도동 28번지)는 D등급을 받았다.
앞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지난 2018년 7월 "여의도를 통으로 재개발할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여의도 집값이 폭등하자 한 달 뒤인 8월 돌연 여의도 개발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이후 서울시는 '부동산 시장 불안정'이라는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사유로 여의도 지구단위계획 수립 절차를 계속 보류했다.
지난 4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되자 여의도 주민들은 재건축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졌다. 하지만 국토부가 재건축 규제완화에 대해 완고한 만큼 사업은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3월 15일 '여의도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 수립 관련 교통영향평가 용역'을 공고했다. 지구단위계획을 확정하기 위한 막바지 용역이다. 과업 기간은 오는 12월 31일까지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주민들은 50년이 넘어 녹물 나오는 아파트에 살고 있어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한 상태"며 "정부가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어 단지별 재건축을 못 하게 막아놓으면서, 공급이 부족하다고 임대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한 여의도 주민은 "오 시장이 당선됐지만 서울시의회 의원이 대부분 민주당이다 보니 (재건축 관련) 협의가 안 되는 것 같다"며 "그럼 주민들은 무작정 기다리기만 해야 하니 정책에 도무지 예측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여의도 지역 외에도 정부의 8·4 대책에 포함된 신규 주택공급지인 ▲노원구 태릉골프장 일대(1만여가구) ▲과천정부청사(4000가구) ▲마포구 상암동 DMC(2000가구) ▲용산역 철도정비창(1만가구) 모두 임대주택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이 중 과천정부청사 부지 개발은 주민 반발로 사실상 백지화됐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임대주택을 짓기에 앞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은형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여의도 재건축을 막아놓은 상태에서 공급 부족을 이유로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하니 주민들 반발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개별 지자체와의 합의를 건너뛰고 무리하게 추진했더니 정책에 진전이 없었던 만큼 주민들 동의를 얻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LH 관계자는 이에 대해 "8·4 대책에서 정부 정책으로 발표된 사업인 만큼 해당 사업을 원활하게 이행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며 "당초 정부가 발표한 방향으로 추진하되, 주민들 목소리를 듣고 조율하며 국토부·서울시와 협의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