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준형 기자 = 경찰과 검찰이 영장 청구 문제를 놓고 또 한 번 충돌했다. 모 제약회사 리베이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최근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가 현직 검사로부터 수사상 비밀을 알게 된 것으로 의심되는 녹취파일을 발견했다. 경찰은 현직 검사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수사를 위해 녹취파일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이유로 반려했다. 영장이 반려되자 경찰은 영장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하지만 영장심의위도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올해 초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서울고검에 신설된 영장심의위는 심의위원을 고검장이 정하고, 위원 명단과 심의 내용을 비공개로 하고 있다. 경찰은 검찰이 독점한 영장청구권과 영장심의위로 수사가 가로막혔다며 반발했다.
박준형 사건팀장 |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단행된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이전보다 많은 권한을 갖게 됐다. 형사소송법 등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 개정으로 경찰은 검찰 수사지휘에서 벗어나고 자체 수사종결이 가능해졌다. 경찰이 마침내 검찰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경찰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보완수사 요구나 재수사 요청 등 경찰에 대한 검사의 통제장치가 사라지지 않은데다, 영장청구권을 여전히 검찰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권 조정에서 영장청구권이 제외된 이유는 개헌 사항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16조는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는 헌법 제12조도 있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문구로 반드시 검사만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검찰이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갖게 된 것은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5차 개헌에서 '체포·구금·수색·압수에 있어 검찰관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검사의 영장청구권이 헌법 차원으로 격상됐다. 다수의 문헌에 따르면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검사를 통해 수사기관 전체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검찰은 군사정권에 적극 협력, 주요 사건을 처리하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헌법에서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명시하게 된 배경이다.
이후 60년이 지나도록 경찰이 신청한 영장은 검찰 단계에서 반려되는 경우가 잦았다. 특히 검사가 연루된 사건의 경우 검찰은 경찰의 압수수색·체포·구속 영장 신청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제 식구 감싸기' 비판이 나왔지만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검사의 금품수수 정황이 나오면 경찰 사건을 가로채고, 검사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은 다른 곳으로 쫓겨난다"는 소문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검찰은 영장청구권 보유가 경찰 강제수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도 영장청구권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헌법에서 검사의 영장청구권 규정을 둔 취지 등에 비춰볼 때 공수처 검사의 영장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공수처 검사에게 영장청구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하지만 영장청구권이 권력기관 사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주요 근거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검찰의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무엇보다도 영장 발부 여부는 법원의 영역이다. 경찰 강제수사에 문제가 있다면 여전히 정치검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사가 아니라 법원이 판단하면 될 일이다.
얼마 전 경찰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모 부장검사에 대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 경찰이 현직 검사에 대해 신청한 영장을 검찰 단계에서 반려 없이 청구돼 집행까지 한 것은 이번 사례가 처음이라고 한다. 검찰은 청와대에 대해서도, 국회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한 적이 있으면서 경찰이 검사를 압수수색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간 검찰이 얼마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는지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강제수사는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주요 수사기법이다. 압수수색을 통한 대물(對物)에 대한 증거 확보, 체포를 통한 대인(對人)에 대한 증거 확보가 중요한데 영장청구권이 없으면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한 고위급 경찰 관계자는 "사냥꾼이 사냥을 가는데 도구가 없는 상태에서 매번 도구를 빌려야 하는 것"이라며 "이미 영장 신청 단계에서 경찰은 검찰에 종속되는 구조"라고 말한다.
권력은 균형을 이뤄야 정의롭게 운영될 수 있다. 권력이 한쪽에 집중되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 검찰과 경찰, 검찰과 공수처가 수평적 관계에서 상호 견제 및 감시할 수 있어야 권력기관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을 분산한 것은 눈치 보지 말고 온전히 수사에 전념하라는 취지다. 그 취지에 맞으려면 사냥꾼에게 사냥도구를 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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