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조선통신사를 자처하는 45인의 일본 분석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져선 안돼"
다른 경기에서 전패해도 한일전을 이기면 국가적 경사가 되고, 어떤 비인기 스포츠더라도 일본과 붙으면 시청률이 올라간다. 한국인이 일본에 갖는 이 '미운' 감정은 최근 역사 문제와 결합돼 '노노재팬' 운동으로 번졌다. 인기를 끌던 일본산 맥주의 한국 매출은 곤두박질을 쳤다.
재미있는 건 동시에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불매운동이 거셀 무렵 한국에선 일본게임 '모여라 동물의 숲'이 돌풍을 일으켰고,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한국 넷플릭스 상위권이다. 일본의 장인 문화, 질서의식을 동경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이런 감정을 애증 외의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문제는 애증의 감정이 한일관계를 더 꼬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감정에서 비롯된 선입견을 통해 상대를 보는 순간 왜곡이 발생하고 오해나 환상이 싹튼다. 상대와의 소통도 자연히 어려워진다.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는 애증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책이다. 이 책의 공저자인 이경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는 말한다.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국에도 이익"이라고 말이다. 좋은 싫든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에서 일본을 무조건 비하하는 것도, 일본에 동경을 품고 한국을 비하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다루기 위해 역사, 문학, 관광, 식문화, 생활, 사회문제, 경영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특기할 점은 각각의 내용이 객관적이면서도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어, 이 책이 그려내는 일본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입체적 접근의 비결은 '집단 지성'이다. 한 명이 모든 것을 깊이있게 다룰 수는 없지만, 여러명의 '일본 덕후'가 모인다면 다채로운 일본을 조망할 수 있다. 이경수 교수를 비롯한 45명의 저자가 그런 믿음 하에 모였다.
'21세기 조선통신사'를 자처한 저자들의 직업은 일본을 전공한 교수부터 양국 간 무역을 해온 기업인, 통번역가, 전문기자 등 다양하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 역시 참여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각각의 주제도 흥미를 끌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았다. 방극철 순천대 교수 등이 들려주는 일본어 표현에 대한 이야기, 오영상 전문기자가 설명하는 일본의 종교 이야기는 놓치기 쉬운 일본 문화의 섬세한 단면을 보여준다. 조선통신사의 시각에서 본 에도시대 여성상에 대해 다룬 문희진 교수의 글은 읽기 쉽게 쓰여졌으나 다른 대중서에서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전문적인 내용이다.
이론적인 내용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체험에서 나온 생생한 경험도 가득하다. 양국을 오가며 사업을 전개한 김형기 맥스텔 대표와 양재근 제이씨하모니 대표의 비즈니스 이야기는 비즈니스 경험을 통해 양국 문화 차이를 설명해 준다. 정우리 빈집 연구가 등이 작성한 고령화 내용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도 주의깊게 읽어볼 만 하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