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이 이머시브(관객참여형) 공연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전에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던 새로운 경험이 극장을 가득 채운다.
브로드웨이에서 극찬받은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이 현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톨스토이의 걸작 소설 '전쟁과 평화' 중 일부 스토리를 기반으로 만든 성스루(sung-throgh, 대사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뮤지컬로 2012년 오프 브로드웨이 초연, 2016년 정식 초연을 거쳐 국내에 상륙했다. 이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파격적인 음악과 형식을 취하면서도, 소설 속 다양한 인간군상을 캐릭터에 녹여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21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공연 장면 [사진=쇼노트] 2021.04.01 jyyang@newspim.com |
◆ 장르·형식·역할 모두 파괴…빛나는 액터-뮤지션 활약
1812년 러시아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부유하지만 권태로움에 빠진 귀족 피에르(케이윌), 어리고 매력적인 나타샤(이해나), 바람둥이 미남 장교 아나톨(박강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순수한 처녀였던 나타샤는 퇴폐적인 러시아 사교계에서 아나톨을 만나 약혼자 안드레아를 배신하게 된다. 전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서도 사건은 일어나고, 모든 인간성과 감정들은 살아숨쉰다.
공연 시작 전부터, 각종 악기를 든 액터뮤지션들과 앙상블이 객석 곳곳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휴대폰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경고부터 공연 주의사항을 출연자가 직접 안내한다. 톨스토이의 방대한 소설 속 인물로 변신한 배우들은 인물관계도를 보지 않으면 아리송할 정도의 캐릭터 관계성을 '성스루' 형식의 가사와 대사, 연기로 표현해낸다.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직접 연주하는 피에르 역, 바이올린을 켜는 아나톨 배우의 장기자랑도 즐길 거리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21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공연 장면 [사진=쇼노트] 2021.04.01 jyyang@newspim.com |
피에르 역의 케이윌은 배가 나오고 집에만 틀어박힌 한물 간 귀족 피에르로 변신해 마치 배경의 일부처럼 무대를 지킨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그가 노래를 시작할 때마다 든든한 감정이 찾아온다. 나타샤 역의 해나는 철없고 해맑은, 사랑에 빠진 소녀를 실감나는 연기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전달한다. 박강현의 아나톨은 자신밖에 모르는 냉정한 카사노바다. 치명적인 나쁜남자의 매력으로 나타샤는 물론 객석의 여심을 모두 훔친다.
◆ 성스루 뮤지컬의 양면…참신한 모든 시도에 박수를
'전쟁과 평화'의 방대한 텍스트 중 일부만을 가져왔음에도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탓에 관계성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이 공연은 '성스루' 형식을 빌려 대부분의 넘버 가사가 인물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고 상황과 이야기를 직접적인 표현으로 전달한다. "나타샤는 어려" "아나톨은 핫해" "마리야는 엄해" 등의 가사가 반복되는 식이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21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공연 장면 [사진=쇼노트] 2021.04.01 jyyang@newspim.com |
다만 번역된 가사가 조금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도하게 쓰인 사자성어의 효과가 공감이나 몰입에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극중 캐릭터들의 관계와 특징을 이해하는 데는 효과적이나, 그 인물의 감정에 깊이 빠져들 여지를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피에르, 아나톨, 나타샤의 주요 사건이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연출적 효과가 극대화될 때만 깊은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 전통 음악, 클래식, 록, EDM 등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을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신선함의 극치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거의 없는 만큼 다가와서 박수를 유도하는 배우들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배우들은 객석에서는 대사를 하지 않고, 객석의 환호도 금지했지만 박수만큼은 마음껏 칠 수 있다. 마지막 순간에 피에르에게 비로소 다가온 생기의 빛처럼, 코로나19를 극복한 공연계에 위대한 혜성같은 공연이 될 만한 뮤지컬이다. 오는 5월 30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
jyyang@newspim.com